만삭에 1형 당뇨 '날벼락'…"살 좀 빼지" 비수 꽂는 말에 위축

정심교 기자 2024. 2. 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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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에 대한 부담감·두려움, 5점 중 3.58점으로 높아
비난·차별에 대한 '사회적 낙인' 스트레스, 청소년보다 커
4년 전 만 30세 때 1형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은 이성희 씨가 식사 전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손가락에서 채혈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 1990년생인 이성희(만 34세) 씨는 4년 전, 첫 아이를 배고 만삭(37주차)일 때 1형 당뇨병이 처음 발병했다. 어릴 때 또래처럼 콜라를 즐겨 마셔도 아무 문제 없었고, 임신성 당뇨도 없던 그에겐 뜻밖의 일이었다. 주변에 1형 당뇨병 진단 사실을 알리자 "단것 많이 먹어서 그래", "살 좀 빼지 그랬어"란 화살 같은 반응이 비수를 꽂기도 여러 번이었다. 이 씨는 "그나마 '1형 당뇨병'이란 병명을 들어봤다는 사람들조차도 이 병이 '소아 당뇨병'이라고 알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성인 1형 당뇨인 가운데 주변에 병을 알리지 않고, 인슐린 주사도 숨어 맞는 사람이 적잖다"고 토로했다.

국내 1형 당뇨병 환자 수는 4만4552명(2022년 기준). 이들 중 91.2%는 19세 이상의 '성인'이다. △소아 때 처음 발병해 성인이 된 후에도 1형 당뇨병을 달고 사는 경우 △성인이 된 후 1형 당뇨병이 갑자기 발병한 경우 모두 성인 1형 당뇨병 환자들이다. 하지만 '1형 당뇨병=소아 당뇨병'이란 인식이 널리 깔려있다. 1형 당뇨병이 5~7세 어린이와 사춘기 연령에서 처음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성인 1형 당뇨병 환자들을 더 괴롭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5일 헬스케어 전문 PR회사 엔자임헬스의 김동석 대표는 '질병의 사회적 낙인과 사회적 지지가 낙인 관리 커뮤니케이션과 환자 역할 행동에 미치는 영향(지도교수 서강대 유현재 교수)'이라는 주제의 논문에서 성인과 청소년 1형 당뇨병 환자 262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낙인을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를 5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성인 1형 당뇨병 환자의 정체성 문제가 청소년 환자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료=김동석 대표

조사 결과 '정체성 문제'(성인 3.58점, 청소년 3.07점), '비난과 판단'(성인 3.5점, 청소년 2.61점), '차별 대우'(성인 2.42점, 청소년 1.83점) 등 모든 항목에서 성인 1형 당뇨병 환자가 청소년 환자보다 사회적 낙인 인식이 더 높았다.

특히 성인 1형 당뇨병 환자는 '정체성 문제'에서 수치가 가장 높았다. 1형 당뇨병 환자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컸다는 의미다. 이런 인식은 환자가 1형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거나, 공공장소에서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는 행동을 꺼리게 만들어 혈당 관리에도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조사를 진행한 김동석 대표는 "1형 당뇨병은 전 연령층에서 발병할 수 있는데도 '소아 당뇨병'으로 잘못 불리는 등 성인 1형 당뇨인은 사회적 관심 밖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성인 1형 당뇨인이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질병에 대해 공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고 분석했다.

/자료=김동석 대표

사회적 지지와 관련한 연구에서는 가족 지지(성인 4.16점, 청소년 4.5점), 친구 지지(성인 3.74점, 청소년 3.76점), 의료진 및 동료 환자 지지(성인 3.38점, 청소년 3.29점) 등 청소년과 성인 모두 높은 수치를 보였다. 청소년 1형 당뇨인의 경우 '사회적 지지'가 당뇨병의 자가 관리 등 건강 행동에 긍정적 영향을 준 반면, 성인 1형 당뇨인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는 사회적 지지에는 긍정적 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영향을 주는 '문제적 지지'도 존재할 수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과도한 연락 및 정서 표현', '불필요한 조언', '비현실적 정보', '통제를 시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도움' 등과 같은 문제적 지지는 그 선의와 관계없이 때로는 환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성인에 있어서는 질병 및 환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지의 질적 측면이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1형 당뇨인들이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1형 당뇨병이 소아당뇨병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함께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받는 등 정교하고 실질적인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1형 당뇨병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돼 인슐린을 아예 분비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평생 관리가 필요한 '성인 당뇨병' 혹은 '2형 당뇨병'은 흔히 비만 때문에, 단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활 습관에 문제가 있어서 발병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1형 당뇨병'은 유전적·면역적·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되고 인슐린 분비가 되지 않을 때 발병한다. 이에 따라 몸 안의 혈당이 급하게 오르는 현상이 수시로 나타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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