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리스크’ 털어낸 이재용···“이제 M&A 등 경영능력 보여줘야”

김상범 기자 2024. 2. 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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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4.2.5 성동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56)이 5일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경영 활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온 ‘총수 사법 리스크’가 일단락 됐다. 이 회장이 2022년 취임 이후 줄곧 유지해온 절제된 행보에서 벗어나 대규모 ‘빅딜’ 등 과감한 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아가 ‘뉴삼성 비전’ 등 이 회장만의 브랜드 구축에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무죄 선고로 이 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제일모직 합병으로부터 8년 5개월, 검찰이 이 회장 등을 기소한 지 3년 5개월 만에 불법승계 의혹에 따른 사법처리 문제를 일단 털어내게 됐다. 검찰 측 항소시 2·3심 결론까지는 3~4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1심 판결로 당장의 불확실성은 걷히게 됐다.

이로써 그동안 위축돼 있던 이 회장의 경영능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2022년 10월 회장 자리에 오른 이 회장의 지난 1년여간 활동을 요약하면 ‘저자세’다. 2014년 부친 이건희 선대회장(2020년 작고)의 급성 심근경색 후 경영 일선에 나선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 및 이번 부당합병 재판 등으로 법원·구치소를 수차례 드나들게 된 이후로는 ‘몸을 사리는’ 행보를 보여 왔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내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최소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삼성전자는 경쟁사들에 밀리며 숱한 과제에 맞닥뜨렸다. 지난 수십년간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선두를 지켜 온 메모리 반도체조차 2위 SK하이닉스와의 격차가 줄거나, 심지어 역전됐다. 인공지능(AI) 가속기용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에서는 적기를 놓치고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내걸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는 1위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적자에 빠져 있다. 반도체 매출액에서도 인텔에게 1위를 내줬다. 스마트폰 사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 순위에서 13년 만에 애플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주요 투자 및 경영적 결단도 미루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삼성의 대규모 인수합병(M&A)은 2017년 이 회장이 진두지휘한 전장·오디오업체 ‘하만’ 인수 이후 멈춰있다시피 하다.

2021년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5세대(G) 이동통신 등에서 3년 이내에 가시적인 M&A 성과를 낼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눈에 띄는 결과는 아직까지 나온 바 없다.

이번 판결로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설 단초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대형 인수·합병(M&A) 준비를 착실히 해왔으며 올해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것으로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만간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앞서 이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2018년 2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자 삼성은 6개월 뒤 180조원에 달하는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3년 뒤인 2021년 이 회장이 재수감됐다가 가석방된 뒤에는 3년간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에도 삼성이 총수의 가려운 부분인 승계 문제를 해결하자 통 큰 투자로 화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뉴 삼성’ 청사진이 나올지도 관심사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에도 삼성전자라는 거대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한 바 없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도 주요 경영진은 유임하는 등 ‘안정’에 방점을 뒀다.

또한 이 회장이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할지 주목된다. 이 회장은 부회장이던 2016년 10월 임시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으나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받으면서 2019년 10월 재선임 없이 임기가 만료, 지금까지 미등기임원 신분이다.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적극적인 ‘책임 경영’에 나서려면 등기 임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사법 리스크까지 털어낸 이 회장으로선 이제 본격적인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 리스크로 인한)위험 회피적인 경영으로 그동안 경영진을 교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이건희 전 회장처럼 큰 화두를 내걸며 조직을 바꾸는 등의 활동은 아직 보여준 적이 없다”며 “적극적으로 삼성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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