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은 학벌이나 ‘빽’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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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피드백을 받긴 했지만 아버지께 뭔가 보여드리는 건 어릴 때도 지금도 어려워요. 대학 다닐 때 졸업영화 같은 것도 아버지께 의견을 직접 구하기보다는 비디오테이프를 티브이 앞에 슬쩍 갖다 놓곤 했죠."
7일 개봉하는 '데드맨'의 하준원 감독은 말하자면 한국 영화계의 '로열패밀리'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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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피드백을 받긴 했지만 아버지께 뭔가 보여드리는 건 어릴 때도 지금도 어려워요. 대학 다닐 때 졸업영화 같은 것도 아버지께 의견을 직접 구하기보다는 비디오테이프를 티브이 앞에 슬쩍 갖다 놓곤 했죠.”
7일 개봉하는 ‘데드맨’의 하준원 감독은 말하자면 한국 영화계의 ‘로열패밀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연기와 연출 두 분야에서 빼어난 족적을 남긴 하명중 배우 겸 감독이고, 어머니는 1970년대 한국 영화 대표작들을 만든 수입·제작사 화천공사 박연묵 설립자의 딸로 영화 제작과 예술영화 수입 배급을 해 온 박경애씨다. ‘바보들의 행진’을 만든 고 하길종 감독이 삼촌이고, 형 상원씨도 미국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한 영화인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하 감독은 “(개봉까지) 오래 걸린 시간만큼 감개무량하고 긴장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부친 하명중 등 영화계 로열패밀리
한예종 출신 ‘괴물’ 공동작가였지만
기획 엎어지며 입봉까지 18년 걸려
“아버지 ‘네 힘으로 살아남아야’ 말씀하셨죠”
한국적 ‘바지사장’ 착안 5년여 준비
“52시간 노동조건 덕 촬영 순조로워”
그는 중학교 때 부모님이 설립한 예술영화관 뤼미에르극장에서 개관 기념작 ‘토토의 천국’부터 모든 개봉 영화를 빠짐없이 보며 자라났지만 감독이 되는 꿈을 꾸진 않았다고 한다. “촬영 나가면 몇 개월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히 영화는 너무 힘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전공한 형이 대학원 때 찍어온 8㎜ 필름 조각들을 보면서 재밌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강사로 수업에 들어왔던 봉준호 감독과 인연을 맺으며 졸업 뒤 ‘괴물’ 시나리오의 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누가 봐도 꽃길이 보장된 듯한 출발이었지만, 그때부터 감독 데뷔까지 18년이 걸릴 줄은 하 감독 자신도 몰랐다.
“‘괴물’이 개봉된 뒤 연출 제안을 여러 번 받았어요. 하지만 내 색깔을 가진 기획으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기획했던 게 촬영 직전까지 갔다가 엎어지기도 했죠. 영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고 자라서 쉽게 풀릴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안 아픈 데 없을 정도로 몸 고생, 마음고생을 치렀어요.”
남들이 보면 부모가 모두 충무로의 유력자인데다 봉준호 감독 작품으로 충무로 데뷔를 한 하 감독이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안 갈 법하다. “영화는 학력 프리미엄이나 백그라운드 같은 게 존재할 수 없는 냉정한 세계예요. 아버지도 ‘얼마나 걸리든 네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죠. 그만큼 공정하기도 하고 많은 확신과 애정이 없으면 버텨낼 수 없는 곳이 영화판인 것 같아요.”
5년 넘게 준비한 ‘데드맨’은 “한국 사회의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이름값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하 감독의 오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이름값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다 이름을 빌려주고 사는 바지사장이라는 직업이 떠올랐어요.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는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다 이게 아주 한국적인 소재라는 걸 알게 돼 취재를 시작했죠.”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취재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만난 한 바지 사장님이 한번은 ‘쩐주’가 외국서 몇 년 지내다 오라고 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건 정말 안좋은 신호거든요. 그분한테 조심하시라고 당부했던 게 기억납니다.”
준비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촬영 현장은 신났고 순조로웠다. 하 감독은 “주변에서 부담이 될 거라고 말했던 주 52시간 노동조건도 진행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영화에 대한 부모님의 평가를 물었더니 아직 못 보셨다고 했다.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는 작업에 대해 단 한번도 말씀을 꺼내신 적 없어요. 제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그러셨나 봐요. 아마 영화 보시고 나서도 말없이 (수고했다고) 안아주실 거 같습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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