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선 비행기에 불붙고 땅에선 온수관 터지고···고장난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하늘과 땅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서방의 제재로 각종 물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지나친 방위비 부담으로 기반시설 수리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서는 항공기가 10만회 비행할 때 9.9회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4.5회, 2022년 5회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전 세계 항공기 사고를 추적하는 독일 항공사고조사국(JADAC)도 지난해 러시아 국내선에서 73회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2022년 36회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1월 안토노프 An-25 화물기는 이륙 직후 화물칸 문이 열려 화물이 쏟아지면서 비상착륙했다. 2월에는 수호이 슈퍼제트 여객기도 엔진 덮개가 비행 중 느슨해지면서 모스크바 공항으로 회항했다. 12월에는 러시아 최대 민간항공사 S7이 보유한 보잉 737 기종 항공기가 엔진 두 개에 불이 붙으면서 시베리아 공항으로 회항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러시아에서는 착륙중 바퀴에 펑크가 나거나 플랩(날개에 달려 있는 양력 발생 장치) 작동에 이상이 생기는 등의 사고가 빈발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 일주일 사이에 3대의 항공기가 착륙 중 활주로에서 미끄러지거나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WSJ는 이 같은 사고들은 서방 제재로 인해 항공기 정비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사용 중인 서방 항공기 제조업체에 대한 접근, 부품 공급 및 유지보수가 차단되고 핵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항공기들의 안전도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석수가 19석 이상인 러시아 항공기 1031대 중 약 3분의 2가 에어버스와 보잉 등 외국 항공기 제조업체들에 의해 제작됐다. 수호이 슈퍼제트는 러시아가 자체 제작한 기종이지만 프랑스 기업이 제작한 엔진을 쓰고 있다.
항공전문가 올렉산드르 라네츠키이는 “러시아 항공사에 부과된 제재 때문에 안전한 비행을 위한 유지보수 능력과 기술적 조건들이 크게 나빠졌다”면서 “이런 문제들이 누적되면서 안전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운행하는 항공편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컨설팅기업 올리버와이만은 러시아의 운항 가능 항공편이 2026년까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땅에서도 한겨울에 수도관이 터지고 난방이 중단되는 등 노후화된 기반시설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4일 모스크바 인근 클리몹스크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수십가구의 난방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달 10일에는 남부 사라토브와 볼고그라드에서 온수관이 터져 빌딩 수백채의 난방이 끊겼다.
다음날인 지난달 11일에는 영하 30도에 이르는 한파 속에서 극동 지역 노보시비르스크의 지하 온수관이 터지면서 병원과 학교를 포함해 건물 237채가 밀집한 구역이 물에 잠기고 난방이 끊어졌다. 주민 10여명은 화상을 입었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이후에도 온수관 파열 사고가 잇따르면서 지난달 19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쏟아붓는 돈이 늘어나면서 구소련 시절 지어진 노후 기반시설을 정비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유틸리티 네트워크(전기·수도·가스 등)의 45~60%는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극동 지역 추코츠키의 경우에는 보수가 필요한 비율이 90%에 이른다.
러시아 건설부에 따르면 난방·전기·가스·수도·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현대화하려면 2030년까지 9조루블(약 133조원)이 필요하다. 이는 올해 예산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지난해 러시아 전체 예산에서 국방 예산이 약 3분의 1을 차지한 반면 기반시설 예산은 전체의 2.2%에 불과했다.
야권 정치인 보리스 나데즈딘은 텔레그램을 통해 “도시가 얼어붙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라면서 “특별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된 엄청난 규모의 자금으로 동료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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