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선 한달 앞 푸틴 경쟁후보들 '허수아비' 논란
전문가들 "푸틴, 장기집권 정당화하려 선거 절차 악용"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 차기 대통령 선거가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의 임기 연장을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전원 투옥되거나 해외로 망명한 까닭에 푸틴 대통령 찬양에만 열을 올리는 '들러리' 후보들로만 투표용지가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푸틴을 상대로 출마한 후보들은 한 가지 확신하는 게 있다. 그들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란 것"이라고 4일(현지시간) 전했다.
실제, 이 매체와 인터뷰를 한 러시아 대선주자들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라고는 보기 힘든 발언들을 쏟아냈다.
러시아 자유민주당(LDPR) 대표로 작년 12월 출마선언을 한 레오니트 슬루츠키는 "푸틴을 이길 것이라는 꿈을 꾸지는 않는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심지어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가 철회한 자유정의당 안드레이 보그다노프는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물론 아니다. 내가 멍청이 같아 보이냐"는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 정부의 승인을 받은 주요 정당이 배출한 대선주자들은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만연한 패배주의에 일부 야당은 후보를 내는 것조차 포기했다.
작년 12월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후보 등록을 거부해 대선 출마가 좌절된 언론인 출신의 반정부 성향 정치인 예카테리나 둔초바는 자유주의 성향 정당 야블로코의 문을 두드렸으나 역시 문전박대를 당했다.
1990년대 러시아의 자유시장경제 전환에 관여했고 이후 2018년까지 3차례 대선에 도전했던 야블로코 창립자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는 출마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야블린스키는 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치가 쇠퇴하고 억눌러졌지만 (예전에는) 중요한 뭔가를 말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선택지는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푸틴 대통령의 권좌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진 다른 인사들은 더욱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운동가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 온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0년 독살 시도에서도 살아남았으나 이후 불법 금품 취득, 극단주의 활동, 사기 등 각종 혐의로 기소돼 러시아 최북단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2018년 러시아 대선에서 의외의 선전으로 한때 푸틴 대통령을 위협했던 공산당 소속 정치인 파벨 그루디닌도 연이은 검찰 수사 끝에 총선 출마 자격이 박탈되는 등 불이익을 겪었고 2024년 대선 출마 역시 불발됐다.
최근 러시아에선 반전(反戰) 성향의 야권 정치인 보리스 나데즈딘을 그나마 유일한 대항마로 보고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한 지지서명에 나서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역시 선관위 문턱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나발니의 측근으로 현재는 유럽에서 활동 중인 야권 인사 레오니트 볼코프는 "이것들은 선거가 아니다"라면서 "이건 푸틴의 홍보용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이 '투표'라는 절차를 계속 유지하는 건 장기집권을 정당화하는데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푸틴 대통령의 임기는 6년이 추가돼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뛰어넘는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우게 된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야나 스타노바야 선임 연구원은 "그는 국민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걸 재확인하길 원하며 여전히 전 사회적으로 큰 지지를 받는다는 걸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풀이했다.
둔초바는 대선 출마를 허락받은 인사들은 자신들이 체스게임의 말 중 하나일 뿐이란 걸 잘 안다면서 "예전에는 최소한 승리하길 원한다고 말하곤 했으나 이제는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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