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최초 연임 대통령 탄생…“독재국가” 우려도
“범죄 해결사” VS “독재자” 양면적 평가
‘연임 금지’ 헌법 무력화 비판도
‘세계에서 가장 멋있는 독재자’라고 스스로를 칭했던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헌법상 연임 금지라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했지만, 엘살바도르가 독재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국민의 1%를 잡아가둔 그의 인권침해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변은 없었다”…압도적 승리로 재선 성공
중남미 매체 인포바에 등에 따르면 부켈레 대통령은 이날 선거 당국의 공식적인 개표 현황이 발표되기 전부터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투표 종료 후 약 2시간 뒤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우리 당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저는) 대선에서 85% 이상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고선거재판소(TSE)의 초반 개표 결과 부켈레 대통령은 약 83%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TSE나 미주기구(OAS) 선거감시단은 아직까지 그의 승리에 대한 공식적인 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이날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도 여당인 ‘새로운 생각(NI)’이 압승을 거둔 것으로 관측된다. 부켈레 대통령은 “총선에서도 60석 중 최소 58석을 차지했다”면서 “엘살바도르 민주주의 하에서 (사실상) 단일 정당 체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행정부와 함께 입법부 권력까지 장악한 부켈레 대통령은 앞으로도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부켈레의 승리는 사실상 예견된 결과였다. 이번 대선에는 5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나 그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켈레 대통령의 경쟁자가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공식 선거 결과 발표 전부터 과테말라·온두라스·멕시코 등 이웃 국가들로부터 축하 인사가 전해졌다.
이날 투표에 나선 60대 시민 빅토르 로페스는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긍정적인 변화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며 “이전의 부패한 사람들이 다시 권력을 갖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시민 다비드 로바토는 뉴욕타임스에 “대다수 국민은 부켈레가 대통령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면서 “그는 국가를 변화시켰다”고 밝혔다.
부켈레의 양면성…범죄 감소로 압도적 지지에도 ‘독재·인권침해’ 우려
2019년 대선에서 중도우파 성향 제3당 후보로 출마한 부켈레 대통령은 30년간 이어진 양당 체제를 깨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였던 엘살바도르에서 그는 강력한 ‘갱단과의 전쟁’을 추진하며 임기 내내 지지율 80% 이상의 높은 인기를 끌어왔다. 실제 2015년 인구 10만명당 105.2건에 달했던 엘살바도르 살인율은 지난해 2.4건으로 급감했다. 이는 치안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에콰도르와 온두라스 등 이웃 국가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교도소를 짓고, 고문·구타·대량 구금 등으로 대규모 단속을 펼친 부켈레 대통령은 각종 인권 침해 논란으로 국제 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2022년 3월 비상사태 선포로 갱단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인구 630만여명인 이 나라에서 현재까지 7만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1%, 성인의 2% 가량이 구금된 셈인데, 현지 인권단체인 ‘크리스토살’은 이들 중 실제 갱단과 연관된 사람이 30%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한다.
게다가 부켈레 대통령이 대통령 연임 금지 조항을 깨고 재선에 출마한 것도 엘살바도르가 독재 국가로 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2021년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대법관들을 친여 성향 인물들로 교체했고, 이후 대법원이 헌법 조항을 우회하는 새로운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그가 다시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때문에 야당은 물론 미국 정부를 비롯한 국제 사회의 공개적인 규탄이 이어졌는데, 부켈레 대통령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멋있는 독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유권자들이 갱단의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면 민주주의의 일부 요소를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선거에서) 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한 일부 중남미 국가들에서 그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독재자가 출현하곤 했다.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높은 인기를 끈 뒤 점차 헌법을 고치고 언론을 탄압하며 장기집권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미주 담당 연구원인 타일러 마티아스는 부켈레 대통령이 구가하고 있는 높은 인기에 대해 “엘살바도르 뿐 아니라 중남미 전역에서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이것이 늘어나는 폭력의 유일한 해결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 원칙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으며, 이런 개념이 실패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지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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