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위험도전형 R&D 프로젝트, '알키미스트' 도전기

2024. 2. 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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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에는 '2등 전략'(Fast second)이 있다. 험난한 1등보다 편안한 2등이 낫다는 말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신시장에 뛰어들면 1등을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실패해 사라질 수 있다. 반면, 1등을 흉내 내며 위험을 피해 가는 2등 기업은 생존할 수 있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그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선진경제권을 뒤쫓는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기술발달이 가속화하며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오늘의 세계 경제에서 2등 전략은 한계를 맞고 있다. 1등 기업(First mover)의 '승자독식'이 만연해지고, 개발도상국의 추격 때문에 더 이상 2등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미지의 영역에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기술개발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과 정부가 위험을 분담하며, 범국가차원의 도전형 연구개발(R&D)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을 이겨내고 세계 경제를 주도할 초격차 기술개발을 이끌어야 한다.

이 같은 철학을 담아 산업통상자원부가 설계하고,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운영하는 위험도전형 R&D의 대표 사업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금속을 황금으로 만들려던 연금술사(알키미스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근대 과학의 발전을 끌어냈던 것처럼,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미래를 향한 과감한 도전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혁신을 도모한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KEIT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도출한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국내외 문헌조사, 전문가 수요조사 및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으로 후보 테마를 발굴한다. 자연과학, 인문사회학 및 미래학 분야의 최고석학으로 구성된 그랜드챌린지위원회에서 후보 테마를 검토하고, 신규 연구 테마를 제안한다.

신규 테마는 개념연구와 선행연구의 1·2단계 경쟁을 뚫어야 3단계 본 연구에 진입할 수 있다. 5년간 총 200억원을 지원받는다. 현재 본 연구 과제는 4개다.

첫 번째는 아티피셜 에코푸드(Artificial eco-food)로 불리는 '배양육'이다. 가축의 줄기세포를 증식해 공장에서 고기를 생산하는 세포공학 기술이다. 세포주, 배양액, 지지체, 대량배육, 식육화 등 5대 제조 공정개발을 연계하여 R&D와 사업화를 동시에 도모하고 있다. 돼지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배양육을 생산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이미 개발했고, 가격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배양 돈육과 우육의 시장 출시는 2026년을 목표로 한다. 배양육이 본격화되어 세포농업 시대가 열리게 되면 우리의 식량주권은 확고해질 것이다.

둘째는 '인공지능(AI) 기반 초임계 소재'다. 여러 소재의 성능 사이에 발생하는 상충관계를 AI로 극복하고 융복합 신소재를 개발한다. 전 공정의 종합적 예측이 가능한 '통합 AI 플랫폼'으로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용 강판의 최고 강도는 1.8기가파스칼(GPa)급이지만, 2.4GPa급 개발을 목표로 한다. 연구는 빠르게 진행돼 상용 자동차 도어의 시험생산에 개발 소재를 적용하는 성과를 거뒀다. 초임계 소재는 무인비행체(UAM)와 같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할 핵심소재가 될 것이다.

셋째는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소프트 임플란트'다. 3차원(D) 프린팅 기술로 인체 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이식용 인공장기를 개발한다. 연구팀은 인체조직의 계층 구조를 모사하여 모듈 형태로 조립함으로써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인공장기 원천기술 확보에 성공했다. 아울러, 3차원 세포응집체의 균일한 생산을 위한 원천기술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면역회피 세포의 대량생산 가능성을 밝혀주고 있다. 특히, 이식 대기자가 많은 간과 발병 시 매우 치명적인 췌장을 연구 목표로 하고 있다. 소프트 임플란트 기술은 장기 이식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은 텔레파시처럼 뇌에서 생각만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브레인 투 엑스(Brain to X)'다. 뇌에 이식할 전극과 집적회로를 개발하고, 사람 뇌 신호를 음성으로 전환해 상대에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최근 뇌파 신호를 정확히 검출하기 위해 그래핀 소재를 활용한 유연 전극 개발에 성공했다. 영장류 실험을 통해 완전이식형 무선통신 칩을 이용한 연구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향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음성의사소통 뇌파 해독을 위한 인체시험을 시행할 예정이다. 성공 시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이 밖에도 인류의 건강 수명을 늘리는 '노화역전', 친환경 '비욘드 플라스틱' 프로젝트 등이 선행 또는 본 연구를 진행한다. 아울러, 제조플랫폼, 휴모노이드로봇, 우주반도체, 우주농업, 차세대보안 등 미래유망분야에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될 것이다.

어렵고 위험한 테마에 공격적으로 도전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가 창의적인 연구 풍토를 조성하고 혁신적인 사업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통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나아가는 우리나라 경제의 전환동력으로 작용하고, 위험도전형 R&D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와 같은 도전형 연구가 미래 혁신기술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한 사회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경쟁형·후불형 연구, 투자연계형 연구 등 지원방식의 다양화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구자에게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돌려주며, 실패를 용인하는 R&D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도전혁신형 기술개발이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art@keit.re.kr

〈필자〉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해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을 거쳤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2022년 9월 R&D 전문기관 KEIT 원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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