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6〉모방은 창의의 적인가, 동지인가

2024. 2. 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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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모방은 사람·사물의 모양,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하는 행위다. 학습의 일종으로 전통과 문화 발전을 이끄는 공동체 원동력이다. 곤충 나뭇잎나비와 물고기 리프피시에게 모방은 곧 생존이다. 나뭇잎처럼 몸을 꾸며 천적에게서 자신을 지킨다. 모방은 좋기만 한 걸까. 타인의 창작을 베끼면 저작권침해 등 불법행위다.

모방에서 창의를 찾을 수 있을까. 남미 작가 보르헤스의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를 보자. 피에르 메나르의 1900년대 작품은 세르반테스의 1605년 작품 돈키호테 1부의 9장, 38장, 22장에서 언어, 문장 등 표현을 그대로 베꼈다. 펠리페 2세, 종교재판소의 이교도 처형 등 시대에 맞지 않은 내용은 제외했다. 보르헤스의 평가는 어땠을까. 300년의 시차를 이용해 '독자마다 새롭고 다양한 감흥을 주어 독서를 풍부하게' 했다며 새로운 창작으로 인정했다. 마르셀 뒤샹은 1917년 상점에서 구입한 평범한 남성 소변기 귀퉁이에 제조업자 R.Mutt를 적어 넣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발표했다. 변기의 일상적 용도와 가치를 버리고 '샘'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변기를 모방한 작품 '샘'은 창의일까.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2019년 작품 '코미디언'은 어떤가. 전시회장 벽면에 바나나 1개를 공업용 테이프로 붙여놓은 작품이다. 바나나는 시간이 지나면 썩는다. 관객이 떼어 먹기도 했다. 때가 되면 바나나를 교체한다. 무슨 의미일까. 바나나는 상품 생산, 유통, 소비 등 국제 무역을 상징한다. 썩고, 먹히고, 교체되는 것은 바나나 농장의 노동착취, 살충제로 인한 건강악화, 자연파괴와 개선 없는 반복을 뜻한다. 바나나를 모방한 작품 '코미디언'은 창의일까.

그림작가 이소연 作

모방은 재현을 벗어나야 창의가 될 수 있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의견을 들어보자. 회화의 본질은 감각의 전달이다. 사람·사물을 재현하는데 그칠 수 없다. 재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추상이 있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형형색색의 선과 면으로 표현하는 기하학적 추상이다. 너무 학문적, 지성적이기에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감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잭슨 폴록의 그림은 물감 흩뿌리기 등 액션 페인팅을 통해 표현하는 서정적 추상이다. 지나치게 무질서해 대상의 감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추상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스토리'를 따로 입혀야 관객이 호응한다. 정답은 어디에 있을까.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있다. 사람·사물을 비슷하게 재현하지만 별도의 '핵심 추출과 극적 변형'을 거쳐 대상의 감각을 드러낸다. 추상과 다른 형상이다. 잘린 고깃덩이 같은 얼굴과 몸속 근육을 격렬하게 뒤틀어 드러냄으로써 창조와 생성의 단계로 진입했다.

그렇다. 그대로 베끼는 단순 모방에선 창의를 찾을 길이 없다. 작가, 미술 마케터의 구구절절한 해석과 그럴듯한 '스토리'를 덧대어도 한계가 있다. 모방에서 창의를 찾으려면 대상에서 핵심을 추출하고 그것을 극적으로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 추출과 극적 변형에서 나오는 특유의 감각과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모방은 더 이상 모방이 아니다. 틀을 깨고 나와 창의가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평론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시대는 무한복제가 일어나 가짜가 판치고 진짜의 아우라가 죽는다고 했다. 창의 없는 모방에 오염된 세상이 그런 곳이다. 그러나 모방과 같은 가짜라도 가치를 더하고 신뢰를 얻으면 진짜를 뛰어넘는 아우라를 가질 수 있다. 3M의 포스트잇은 강한 접착제를 모방했지만 실패했다. 대신에 약한 접착력과 뗐다 붙였다 하는 지속성을 핵심으로 추출했다. 종이와의 결합이라는 극적 변형을 더해 창의가 되었다.

모방에서 창의는 모래에 숨은 진주처럼 쉽게 찾을 수 없다. 단순 모방을 넘어 핵심 추출과 극적 변형의 반복 훈련만이 대한민국의 창의를 드러내고 세계시장에 우뚝 서는 길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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