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창간 45주년 특집 남한땅 7정맥 ②금강정맥 | 구간종주 프로] 금강정맥 최고봉을 지키는 일곱 청년의 시험에 빠지다
옛날 운장산 깊은 골짜기에 작은 절이 있었다. 절에는 한 스님이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곱 명의 청년이 찾아왔다. 이들은 망태를 둘러메고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수려하게 잘생겼으며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청년들은 스님에게 배가 고프다며 요기시켜 달라고 했다. 스님은 "나 먹을 밥도 없다"고 냉정히 거절했다.
이들은 절을 떠나 산을 올라 어느 암자에 이르렀다. 암자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선비에게 밥을 달라고 간청했다. 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는 "불공을 올린 다음 밥을 줄 테니 기다리라"며 불공을 올리려 했다. 그러자 일곱 명의 청년들은 화를 내며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무슨 벼슬을 하겠냐"며 밥상을 지팡이로 내리쳤다. 선비가 놀라 쳐다보니 그들은 사라지고 공부하던 책도 없어졌다고 한다.
청년들은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었으며 스님과 선비를 시험하기 위해 내려왔다가 실망해 하늘로 올라갔다. 그 후 선비는 자신의 모자람을 깨닫고 벼슬의 꿈을 버린 채 수도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암자가 있던 곳을 칠성대라 부르게 되었다. 운장산 서봉에 얽힌 전설이다.
금강정맥의 백미 구간으로 운장산을 꼽았다. 이곳 산줄기에서 1,000m 넘는 높이의 운장산에 비하면 나머지 산들은 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피암목재에서 산행을 시작해 정맥을 따라 운장산 서봉과 연석산, 675.4m봉을 지나 보룡고개까지 갈 계획이다. 특히 금강정맥 최고의 전망대인 운장산 서봉에서 비박하며 일출을 담을 계획이다.
나라를 흔든 책략가 송익필
북두칠성은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며칠 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일정을 당겨 산행에 나섰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금강정맥 피암목재에서 산에 든다. 산이 써내려간 녹색 활자를 발로 읽는다. 도시에서 가져온 경직된 마음과 근육이 슬그머니 풀어진다. 세파에 지친 산꾼을 늙은 산줄기가 도닥인다. 무장해제하듯 몸도 마음도 알싸한 숲 향에 익숙해진다.
하산하는 등산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행여 자연을 망가뜨린다고 한 소리 할까봐 얼른 지나친다. 하지만 비박은 산과 인간이 가까워지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 한 왕조가 막을 내리는 것 같은 거대한 일몰과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깊은 밤, 기적처럼 신비로운 일출을 하룻밤에 다 겪는 것. 당일산행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산의 진면모를 만나러 간다.
공용장비를 나눠 멘 이는 김영선 본지 객원기자와 안명선(대산련 대외협력위원)씨와 최은경씨다. 김영선 기자는 원래 사진기자지만 이번 산행에는 산꾼으로 동행했다. 산에 대한 열정과 경험은 여간한 베테랑 산꾼보다 낫다. 게다가 기자와 오랫동안 산을 다녀 호흡이 잘 맞아 든든하다. 정맥 산행은 장거리를 계속 오르내리며 길을 찾아야 하기에 일행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최은경씨는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로 은퇴 후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현역시절 훈련으로 힘들게 산을 오른 기억 때문에 산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녀는 예외다.
부드럽게 고도를 올리나 싶던 능선은 간간이 거친 이빨을 드러내며 긴장을 풀지 말라고 조언한다. 서봉이 점점 가까워올수록 숨도 가빠온다. 신갈나무가 있던 자리를 소나무와 조릿대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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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동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는 활목재 삼거리를 지나자 능선은 급격히 치솟으며 잡념을 싹 지워버린다. 디딜 곳을 찾는 눈동자와 숨소리만 남아, 능선의 흐름과 의식의 흐름이 하나가 된다. 무아지경의 경지에 이르고서야 일곱 성군은 정상을 허락한다.
"캬" 하는 감탄이 날 수밖에 없는 비범한 봉우리 운장산 서봉이다. 푸근한 육산의 몸을 하고선 정상은 조각 미남이다. 깎아지른 빼어난 바위 전망대가 널렸다. '칠성대'라 적힌 표지석이 있는 정확한 정상 위에 서면 녹색 왕국의 정점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노라마로 열려 있어 오래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다. 저만치 보이는 운장산 정상은 나무로 뒤덮여 경치는 칠성대가 한 수 위다.
운장산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송익필의 자(字)에서 유래했다. 그는 서봉 부근의 오성대에서 은거해 지냈다고 한다. 뛰어난 지략으로 '서인의 모주'라 불렸지만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차이가 있다. 중상모략으로 동인 1,000명을 숙청해 피비린내 나는 당쟁의 원인을 제공한 원흉이라는 비판적인 시선은 늘 따라다닌다. 그러나 노비의 핏줄이라는 신분의 비천함을 존경으로 바꿀 정도로 그는 명석했고 뛰어난 책략가이자 문장가였다. 세간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나라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비범한 사내였다.
운장이 손님맞이를 한다. 짙은 구름이 몰려와 흘러가기를 반복한다. 배낭을 풀어 하룻밤 묵을 채비를 한다. 램프로 불을 밝히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는다. 산 아래였다면 가난하기 그지없는 밥상이지만,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달콤한 만찬이다. 단순히 음식만 먹지 않는다. 달궈진 근육과 땀방울이 식을 때의 기분 좋은 허기, 녹색의 깨끗한 공기, 순도 높은 고요함과 어둠, 사람 사이의 동료 의식을 버무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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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칠성대
일곱 성군이 시험하는 걸까? 운장이 계략을 쓰는 걸까? 빗방울에 잠을 깼다. 타프를 쳤지만 집요한 비바람이 옆에서 들이친다. 새벽 3시, 타프를 단단히 고정하고 방수 채비를 하고 선잠을 잔다. 아침이 되어도 시원한 비는 오지 않는다. 어중간한 비다. 그러나 바람이 심상찮다. 보이지 않는 거인이 앞에서 입김을 부는 것 마냥 막강하다. 저녁까지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믿기로 한다. 밤새 잠을 못 자 컨디션이 떨어진 최은경, 안명선씨를 내려 보내고 사내 셋이 남은 금강정맥을 이어간다.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하고 쫓기듯 짐을 싸서 연석산으로 향한다. 1,113m의 고도가 만항치에서 773m로 떨어진다. 다시 고도 200여 m를 올려야 한다. 잠에서 덜 깬 몸을 다독이며 연석산을 오른다. 곳곳에 바위 더미가 나타나 걸음을 더디게 하지만 위험한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감사하여, 바위를 올라선 곳에서 되돌아보면 운장산이 엄청난 몸집으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남쪽으론 만항치에서 쭉 뻗은 계곡이 장관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변하는 궁항리 풍경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기분 좋은 착각을 누린다.
연석산 정상에 닿자 우리의 배고픔도 절정에 닿았다. 마침 비도 그치고 터도 좋아 요기할 겸 배낭을 내려놓는다. 한참 식사를 준비하는데 일곱 사내가 버럭 화를 낸다. 이건 뭐 소나기가 아닌 태풍 수준이다. 비바람의 힘이 장사다. 허겁지겁 배낭에 짐을 쑤셔 넣고 출발한다. 행동식으로 요기를 하며 남은 구간을 돌파하기로 한다.
고도는 600m대로 떨어지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연석산에서 보룡고개로 이어진 능선은 정맥꾼들의 영역이다. 정맥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찾지 않는 동네뒷산 같은 허름한 산줄기다. 사람의 흔적이 줄어드는 만큼 길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궁항저수지를 왼쪽 아래에 두고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오로지 걷기만 할 뿐 일행은 말이 없다. 그럴 수도 없는 것이 바람 소리가 거인의 괴성처럼 산을 지배하고 있다. 독수리가 하강해 먹이를 낚아채듯 비바람이 몰아친다. 일기예보를 욕하던 시간도 다 지나고 이젠 그저 받아들인다.
황새목재에 닿자 과수원이 나타나며 모처럼 시야가 트인다. 기다렸다는 듯 폭풍은 험악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비바람의 절정이다. 675m봉 가는 길, 오르막도 절정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탈출은 생각할 수 없다. 묵묵히 가야 한다. 산행 경력이 오래지 않은 김종연 기자가 쳐진다. 모질었던 675m봉을 넘어 골인 지점인 보룡고개로 속도를 낸다. 2m 높이의 조릿대가 빽빽해 산행이 만만찮다.
"악!" 하는 소리, 김종연 기자가 벌에 쏘였다. 벌이 등산화 속으로 들어와 발을 쏘고 날아갔다. 말벌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고 물로 닦아 양말을 갈아 신고 남은 정맥을 간다. 정맥이 아니었다면 진작 코스를 바꿔 하산했겠지만, 정맥이기에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다. 희미한 산길을 헤쳐 진안과 완주의 경계인 보룡고개에 닿자, '홍삼 한방의 고장 진안에 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가 보인다. 거짓말처럼 쨍쨍하게 햇살이 비친다.
산행길잡이
연석산까지는 국립공원급 이후로는 야산
피암목재(느린마을양조장 주차장)~2.4km~
운장산 칠성대~2km~만항치~0.7km~연석산~5km~
황새목재~1.2km~675m봉(삼각점)~1.7km~
보룡고개 <총 13km, 8시간 소요>
거리에 비해 오르내림이 많아 산행이 쉽지는 않다. 피암목재에서 남진할 경우 대표적인 깔딱고개는 활목재에서 칠성대 구간과 만항치에서 연석산 구간, 보룡고개에서 675m봉 구간이다. 정맥길치곤 전반적으로 길찾기는 수월하다. 다만 675m봉 지나 능선이 보룡고개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알바에 주의해야 한다. 오른쪽 능선이 주능선처럼 뚜렷하고 왼쪽 정맥 능선이 하산길처럼 보인다. 675m봉은 삼각점만 있고 봉우리다운 맛이 없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피암목재에서 연석산까지는 국립공원에 비할 정도로 경치가 좋지만 이후로는 야산 수준의 평범한 정맥길이다.
교통
피암목재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불편하다. 금산에서 진안군 주천면으로 버스를 타고 와서, 내처사행 버스를 타고 내처사동 삼거리(외처사)에서 하차해 2km 정도 걸어야 피암목재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금산에서 주천행 버스 1일 6회(08:00, 10:30, 13:40, 14:40, 16:30, 17:22) 운행. 주천에서 내처사행 버스 1일 6회(06:45, 08:40, 10:00, 12:15, 14:25, 17:45) 운행.
보룡고개에는 진안군 부귀면과 전주를 오가는 버스가 운행하지만 하루 두 번 운행하며, 정류장이 진안 방면은 1.7km, 완주 방면은 5km 정도 떨어져 있다. 보룡고개에서 진안 방면으로 걸어가면 봉암교차로 인근에 소태정 버스정류소가 있다. 여기서 전주행 버스가 1일 3회, 진안행 버스가 1일 2회 운행한다. 택시를 탈 경우 진안까지 2만 원 정도 나온다. 문의 부귀개인택시 063-433-4050.
숙식(지역번호 063)
날머리인 보룡고개 인근의 맛집으로 원조화심두부식당(243-8952)이 있다. 보룡고개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완주군 소양면에 있다. 50년 역사의 맛집이며 순두부(6,500원), 고기순두부(6,500원), 버섯순두부(7,500원), 굴순두부(9,500원), 두부탕수육(대 1만6,000원), 두부등심돈까스(7,500원), 두부해물전골(대 3만9,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들머리인 피암목재 인근에는 주천면 대불리의 송어전문점 운장산송어장식당(432-7272)이 있다.
숙소는 주천면 대불리의 휴랜드펜션(432-0150)이 피암목재에서 가장 가깝다. 관광지인 운일암반일암 인근에 식당과 숙소가 많다. 날머리인 보룡고개 인근에는 숙소가 드물어 전주로 나가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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