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더 추운데"…K-배터리, '성과급' 놓고 노사 충돌
'트럭 시위'로까지 번졌다…LG엔솔 노사, 극한 갈등
처음 도입된 IRA 세액공제, 성과급 반영 여부 최대쟁점
삼성SDI도 성과급 줄어…'적자' SK온, 아예 '불투명'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배터리 업계 곳곳에서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잡음이 일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역대급 호실적을 기록하며 성과급 잔치를 벌였으나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기업들이 성과급 지급 규모를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단기간 내 급속도로 성장한 산업인 만큼 구체적인 지급 기준 등을 두고 노사 간 과도기적 갈등을 겪는 것으로 풀이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배터리 3사 중 성과급 내홍을 가장 크게 겪는 곳은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다. 일부 직원들이 사측에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며 트럭 시위에까지 나서면서 갈등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700여명은 익명 모금을 통해 이날부터 오는 29일까지 서울 여의도에서 3.5톤(t) 트럭 및 스피커를 이용한 1인 시위를 연다. 이 기간 트럭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LG에너지솔루션 본사가 있는 파크원을 중심으로 여의도 일대를 순회한다. 트럭 전광판에는 ‘경영 목표 명확하게 성과 보상 공정하게’, ‘피와 땀에 부합하는 성과체계 공개하라’ 등의 문구가 나오고 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29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올해 경영성과급을 기본급의 340∼380%, 전체 평균으로는 362%로 책정했다고 공지했다. 전년(870%) 대비 성과급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가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AMPC는 변동성이 크고 일시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성과급 기준이 되는 목표 수립 때부터 성과지표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직원들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IRA 보조금을 성과급 제원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회사 측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회사는 지난 2일 김동명 사장을 비롯해 주요 경영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타운홀 미팅을 열고 성과급을 비롯한 처우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김 사장은 “현행 성과급 산정 방식과 관련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직원들의 의견에 공감하며 많은 고민을 통해 1분기 내 합리적인 개선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경쟁사 대비 보상과 처우도 향후 총 보상 경쟁력을 더 높여 경쟁사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트럭 시위가 벌어지는 등 논란이 계속되자 회사 측은 이날 “구성원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성과에 걸맞은 대우를 통해 함께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며 “하지만 회사가 이미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성과급 기준, 경쟁사 대비 처우 등 동일한 내용을 익명 트럭 집회를 통해 또다시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과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밝혔다.
인재 확보 ‘당근’ 흔들던 배터리 업계 ‘한파’
최근 초과이익성과급(OPI) 규모를 발표한 삼성SDI(006400) 역시 전자재료 부문을 중심으로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연봉의 37~39% 수준이었던 OPI가 올해 18%로 절반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전지 부문 32%, 본사(지원 조직) 28%와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아직 영업 적자를 기록 중인 SK온은 성과급 지급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해의 경우 성과급이 아닌 격려금 형태로 연봉의 10%에 300만원을 더한 금액을 지급했다. 최근 이석희 SK온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흑자 달성 시까지 연봉의 20%를 자진 반납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안팎에서는 올해 성과급 지급 가능성을 더욱 낮게 보고 있다.
양극재 회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상·하반기 성과급을 나눠 지급하는 에코프로비엠(247540)은 지난해 상반기 일정 성과급을 지급했으나 하반기 성과급은 0%로 책정했다. 전년 대비 실적이 크게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오는 7일 실적발표를 앞둔 에코프로비엠의 지난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2923억원으로 전년(3807억원) 대비 23.2% 감소가 예상된다.
단기간 내 고성장한 배터리 업계에선 지난해까지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높은 성과급과 연봉, 복리후생 등을 앞세워 인재를 끌어모으는 데 주력했다. 1년 만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물가 상승과 고금리 여파로 전방산업인 전기차 수요가 크게 줄어든 데다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시장 진입으로 경쟁 상황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북미 등에 건설 중인 생산거점 확보를 위한 조 단위 투자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업계는 올해 한파가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IRA라는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되면서 성과 측정 기준점이 모호해 이런 갈등을 더욱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직원들과의 성과급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보상 기준이 명확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김은경 (abcd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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