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박혜상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세이킬로스 비문에 치유"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 테니'(세이킬로스의 비문)
"코로나 때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잃었고, 가슴 속에 의심이 생겼죠.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라는…."
소프라노 박혜상(36)이 4년 만에 새 앨범 'BREATHE(숨)'을 발매했다. 그녀가 팬데믹 동안 고뇌한 죽음과 삶에 대한 실존적 고민과 해답을 담은 콘셉트 앨범이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는 내용을 담은 고대 그리스 세이킬로스의 비문에서 영감을 받았다.
박혜상은 서울대, 줄리어드 음악원 졸업 후 몬트리올 국제음악콩쿠르 준우승,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콩쿠르 자르주엘라(스페니쉬 아리아) 여성 부문 2위를 수상했다. 2020년 도이치그라모폰과 아시아 소프라노 최초로 전속계약을 체결, 'I AM HERA'를 발매했다.
박혜상은 5일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처음에는 이번 앨범에 죽음을 대하는 사람이 겪는 7가지 단계를 담을 생각이었다"며 "하지만 앨범을 준비하며 저 스스로 너무 동굴로 들어갔고, 이렇게 어두운 곡을 들려드리는 게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만났다"고 설명했다.
"비문을 접하고 순간적으로 치유가 됐어요. 1~2세기를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좋았죠. 그래서 앨범의 모든 주제를 '살아가는 동안 빛나자'로 정했습니다."
박혜상은 현대 음악 작곡가 루크 하워드에게 기존 작품에 세이킬로스 비문을 넣은 'While You Live(당신이 살아있는 동안)'를 의뢰해 앨범의 첫 곡으로 담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베르디, 레피체의 곡들도 담았다. 한국 작곡가 우효원의 작품 '어이 가리'도 앨범에 담겼다. 한국 전통 현악기 아쟁 연주에 목소리를 얹어 상례악 어이가리를 레퀴엠에 연결했다.
박혜상은 오는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고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국내 클래식팬들에게 직접 들려준다.
그는 "세이킬로스의 마음을 생각하며 리사이틀 레퍼토리를 정했다"며 "1부에서 세이킬로스와 아내의 사랑, 행복한 시간, 아이 등을 연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2부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세이킬로스의 시선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박혜상은 세이킬로스가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는 철학을 얻기 전의 고통을 담아내기 위해 '가시리', '어이가리', '새야새야', '사랑가' 등 한국가곡을 선택했다.
박혜상은 "한국 가곡을 부를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며 "최근 외국인 친구가 앨범에 사용된 악기가 뭐냐고 물어봐 '아쟁'이라고 답해줬는데, 조금이나마 제 뿌리를 알릴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박혜상은 이 앨범을 준비하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앨범 자켓을 위해 태국에서 프리다이빙을 배워 수중 촬영을 했다.
"앨범 작업이 저에게는 정말 어려워요. 감정적 소비가 많은 편이거든요. 레퍼토리를 짜기 위해 고민하던 중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2022년 8월에 산티아고로 떠났어요. 25일 동안 하루에 20~30km씩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이 거저 주는 선물을 누렸어요. 살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구나. 사람이라는 존재가 회복력도, 의지도 대단하구나 느꼈습니다. 잠깐 내려놨을 때 세상이 주는 평안함, 감사함도 느꼈어요."
박혜상은 "이번 앨범을 내며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개인적 이야기라 아무도 안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하지만 한편으로는 2년여간 모든 것을 쏟은 이 앨범으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고 설명했다.
앨범 제목 '숨'은 박혜상이 앨범을 준비하며 꾼 자각몽(꿈을 꾸고 있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꾸는 꿈)에서 나왔다.
박혜상은 "꿈 속에서 신비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만났고, '라 트라비아타' 속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르며 산을 내려왔다"며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제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꿈이 총천연색으로 바뀌며 사람들이 파티를 했고, 저는 물 속에서 숨 쉬며 그 모든 것을 봤다"고 설명했다.
"가장 두려운 순간, 물 속에서 가장 살아있는 경험을 느꼈습니다. 그때 앨범 제목을 '숨'이라고 하자고 결정했죠. 앨범재킷을 수중촬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마술피리'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중간중간 태국에서 프리다이빙 수업을 들으며 촬영을 준비했어요."
박혜상은 최근 7년간 일정한 거주지 없이 살았다. 자신을 '선택적 홈리스'라고 부르며 트렁크 두 개를 들고 전세계를 다니며 연주했다. 최근에야 모친의 권유로 한국에 집을 마련했다.
박혜상은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집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집이 필요 없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저만의 침대가 생기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며 "사람은 자꾸 변하는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30대 중반, 박혜상은 한 뼘 더 성장했다. "지금까지 '행복해야 해', '잘해야 돼', '잘할 수 있어'라는 중압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꼭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지는구나'를 배웠습니다. 배부름은 배고프지 않고서는 알 수 없고, 음악은 고요함 없이는 알 수 없고, 부유함도 가난함 없이는 모르는 거잖아요. 겸손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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