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최남단까지 치겠다는 이스라엘···100만명 넘는 피란민 어디로 가나
인구 절반 이상 라파에 몰려…민간인 피해 우려
이스라엘군 ‘하마스 소탕’ 주장 북부서도 교전 재개
이스라엘군이 이집트 국경과 접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해서도 대규모 공세를 예고했다. 이스라엘군의 지상작전에 따라 북부에서 중부로, 중부에서 남부로 거듭 밀려났던 피란민들은 더 이상 대피할 곳조차 없는 상황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4일(현지시간) 내각회의에서 “하마스의 24개 전투 대대 중 17개 대대를 해체시켰다”며 “(파괴되지 않은) 나머지 대대는 이집트 접경 라파와 남쪽 지역에 있으며, 우리는 곧 그들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남부 최대도시 칸유니스에서 하마스를 격퇴했다며 곧 라파에서 작전을 이어가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최근 이스라엘군은 피란민 100만명 이상이 몰려 있는 라파에서 공격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여성과 어린이 등 최소 17명이 숨졌고, 그 이튿날에도 임시 피란민 시설로 쓰이고 있는 유치원과 차량 등이 공격 당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주변국들의 중재로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전역에 대한 공습과 육상·해상 포격을 강화해 3일에는 최소 107명이, 4일에는 최소 1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라파가 피란민들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북부 주민들이 대거 대피해있던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의 지상전이 강화되자 피란민들은 더 남쪽인 라파로 향했다. 현재 유엔은 가자지구 전체 인구 23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라파에 몰려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최근 위성사진을 분석해 라파의 임시 천막에서 피란민 최소 125만명이 생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파의 전쟁 전 인구는 25만명이었다. 한 주민은 로이터통신에 “가자지구는 (북쪽에서 남쪽까지 경계선인) 철조망부터 철조망까지 안전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도 라파에서의 대규모 지상전에 따른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옌스 라에르케 대변인은 라파를 “절망의 압력솥”에 빗대며 “이 다음에 일어날 일이 두렵다”고 말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100만명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집트 국경 쪽으로 이주해 왔다”면서 “그들(이스라엘)은 이곳이 ‘안전지대’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민간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끔찍한 폭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히샴 마나 대변인도 “군사작전이 라파까지 확대된다면 피란민 대다수가 갈 곳이 전혀 없게 될 것이란 우려가 널리 퍼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이미 전례 없는 비인간적 생활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 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라파에서 본격적인 지상전을 시작하면 현재 휴전 협상을 중재하고 있는 이집트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집트 정부는 피란민들이 국경을 넘어선 안 된다며 팔레스타인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120여일간 라파 국경은 외국인과 이중국적자, 일부 중환자를 제외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피란민들이 폭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이집트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한다면 이집트와의 갈등과 그에 따른 피란민들의 희생도 커질 수 있다. 2007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물자가 부족해지자, 라파 등 접경지역에는 땅굴이 생겨났고 밀수꾼들이 땅굴을 이용해 이집트를 오가며 물자를 가자지구로 들여 왔다. 이집트는 이런 밀수를 막겠다며 2015년 밀수꾼들이 사용하던 땅굴을 바닷물로 침수했고, 이후 인근 농민들이 경작지 피해를 입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스라엘군 한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라파 지역 ‘지상 청소’에 앞서 이집트와 협력해 피란민들을 북쪽으로 이동시킬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부분적으로 철수한 북부 지역에서도 최근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의 교전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4개월에 걸친 작전으로 북부에서 하마스 세력을 소탕했다는 이스라엘군 주장과 달리, 여전히 잔존 세력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북부에서 하마스 대원 7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빼앗았다고 밝혔다. 최근 갈란트 장관이 ‘하마스 격퇴’를 선언했던 남부 칸유니스에서도 시가전이 계속되고 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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