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세대 정전"…미국 덮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그래미에도 비바람

김종훈 기자 2024. 2. 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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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겨울 우기 만드는 '대기의 강' 연달아 덮치면서 수해 극심…90만 세대 정전
4일(현지시간) 미국 해양대기국 기상관측위성으로 촬영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사진. 거대한 수증기 구름이 미국 서부 해안에 접근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로이터=뉴스1

미국 캘리포니아에 폭우가 내려 90만 세대 이상이 정전되는 등 현지인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번 폭우는 태평양을 건너며 머금은 습기를 북미 서부에 한번에 뿌리는 대기의 강, '파인애플 익스프레스'가 원인이다. 학계는 기후변화로 인해 캘리포니아 폭우가 해마다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 폭우로 비상사태 선포…그래미는 그대로 진행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캘리포니아에 강풍, 폭우가 몰아쳐 90만 세대가 정전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북부 전력 공급업체 퍼시픽 가스앤일렉트릭은 100만 세대 이상이 정전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비바람으로 인해 복구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산타바바라 등 일부 지역 학교는 이날 휴교를 결정했다.

현지 기상청은 빅서 등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에 허리케인급 강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강풍 경보를 발령했다. 기상청 관측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 최고 풍속은 시속 128킬로미터에 달했다. 산타 바바라, 산 루이스 오비스포 등 카운티에는 돌발 홍수 경보가 발령됐다. 기상청은 SNS에 "대피 명령이 나오면 신속히 따라달라"는 글을 게시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수해 복구 인력이 강풍에 쓰러진 가로수를 치우고 있다./로이터=뉴스1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총 200만 명이 거주 중인 8개 카운티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카렌 바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강풍과 뇌우, 토네이도를 동반한 기록적인 태풍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주 대도시는 이미 침수됐으며 7일쯤이면 다른 도시에서도 수해가 본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래미 시상식이 진행 중인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아레나 인근에도 비바람이 불고 있으나, 시상식 일정을 바꿔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뉴욕타임즈(NYT)는 보도했다.

캘리포니아 우기 만드는 수증기 덩어리
이번 폭우의 원인은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로 불리는 대기의 강이다. 대기의 강은 태평양 열대 지역 상공에서 형성돼 400~600km 넓이로 퍼진 거대한 수증기 덩어리를 가리킨다.

이 덩어리가 머금고 있는 수증기는 평균적으로 미시시피 강 하구에 흐르는 수량과 맞먹는다. 덩어리가 크게 형성될 때는 수증기 양이 평소의 15배까지 불어난다고 한다. 대기의 강이 하와이 제도 상공에서 형성되면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라고 불린다.

이 수증기 덩어리가 겨울 북미 서부까지 날아와 육지에 올라서면 우기가 시작된다. 캘리포니아는 보통 11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인데, 미국 기상청에 따르면 일일 강수량이 5인치(127mm)까지도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지난 12월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공항에 일일 강수량 2.6인치(66mm)의 비가 내려 1945년에 기록된 최고치(2.51인치, 63mm)를 갈아치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치는 상당한 양이다.

기후변화 못 막으면 수해 이재민 수백만, 경제손실 1조 달러
파인애플 익스프레스가 접근 중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볼리나스 만 인근에서 한 여성이 길을 걷고 있다./로이터=뉴스1
가디언에 따르면 대기의 강 현상은 캘리포니아 연 강수량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 자연재해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처럼 수일간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잇따를 경우 대규모 수해가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디언은 지난번 캘리포니아 겨울 우기 폭우로 인해 22명이 사망했고, 스탠퍼드 대학 연구결과 재산피해가 30억 달러 이상으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캘리포니아 폭우가 해마다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것. 지구온난화로 인해 건기와 우기의 강수량 격차가 더 심해지고, 우기에 대기의 강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대학 소속 기상학자 다니엘 스웨인 박사는 2022년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공동연구논문에서 캘리포니아에서 200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의 대홍수가 발생할 확률이 향후 683%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구 탄소배출량이 2060년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된다고 가정한 결과다. 이로 인해 수백만 이재민이 발생하고, 인프라가 붕괴해 1조 달러(1333조원)의 경제손실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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