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광풍 잠재우려 보유세 인상…그러나 ‘투기 괴물’이 다시
부동산 대란 상황 속에서 참여정부가 내놓은 첫 본격적 대응이 10·29대책이다. 보유세의 점진적 인상, 3주택 이상 보유자 양도세 중과, 임대주택 건설 확대 등을 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에 대한 최초의 올바른 접근이었다고 해도 좋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어느 정부도 이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보유세 인상은 문민정부 공약이었으나 공수표가 되었고, 국민의정부도 출범 초기 대통령 지시사항이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51화 참조).
이렇듯 거래세 중심인 데다 지나치게 낮은 보유세는 오랜 문제였지만, 조세저항 때문에 보유세를 일거에 높이기 어렵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그러니 보유세 인상을 예고하고 점진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는 임기 초 36% 수준에 불과했던 토지과표 현실화율을 매년 3%포인트씩 높여나가 임기 말에는 50% 수준으로 올릴 것을 예고했는데 이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되면 오랜 고질병인 부동산투기가 잠재워질 것이다. 이는 빈부격차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국가경쟁력 강화의 초석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추진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은 최초의 원칙주의적, 장기주의적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3년 8월19일(화) 3시 부동산 보유세에 관한 각 부처 1급 회의를 주재했다. 도합 20번째 회의다. 외부에서 김윤상 교수(경북대)와 김정훈 박사(조세연)가 참석했다. 하도 여러번 회의를 해왔으므로 거의 모든 사항에 합의했다. 토지과표 현실화율을 법령에 명시하느냐 또는 지자체 재량에 맡기느냐의 문제는 미정인데, 어쨌든 매년 3%포인트씩 인상해 가면 결과는 어느 쪽으로 가나 대동소이하다. 부동산 과다보유자는 합산 누진 과세하는 국세로 가되 세무행정은 지자체에 위탁하는 데도 합의했다.
김정훈 박사는 “지자체의 과표 현실화율이 기준에 미달할 때는 교부세를 지급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수도권은 어차피 교부세를 못 받으니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윤상 교수는 “서민들은 목표 세수치가 없으면 실망할 것이다. 시가의 1~2%(적어도 0.5%)로 국토보유세를 신설하자. 그러면 이중과세 문제가 대두할 텐데 그건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 건교부 1급 공무원(이름 미상)은 “과표 현실화율을 일거에 대폭 인상해야 한다. 미국은 재산세 세율이 평균 1% 정도 되고, 뉴욕시는 2%나 된다. 그런데 한국은 차 한대 세금이 40만원인데 6억원짜리 은마아파트 세금이 11만원에 불과하다. 두가지 세금을 동시에 고지서를 내보내 비교하게 하면 조세저항이 줄어들 것”이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회의를 마치고 정책실 김성진 비서관(뒤에 해수부 장관)이 감격해서 말했다. “내가 공무원 시작할 때 하던 이야기가 이제야 실현된다. 30년 만에 처음 보는 쾌거”라고 평했다. 이 안이 최종 통과되면 다시 모여 축배를 들기로 하고 헤어졌다.
10월23일(목) 오후 5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진표 부총리 주재 부동산 대책 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재경부가 제시한 은행담보비율 인하(50→40%)는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어 이정재 금감위원장과 내가 반대했으나 포함하기로 결정됐다. 투기지역 취득세, 등록세 실거래가 과세는 투기억제에 강력한 효과가 있겠으나 역시 선의의 피해자로부터 원망을 살 우려가 있고 애당초 좋은 세금이 아니어서 내가 반대했다. 보유세의 핵심인 종합부동산세 도입은 서울시와 경기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6년에서 2005년으로 한해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양도소득세율을 놓고 김 부총리와 나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 세율을 부총리는 60%, 나는 70%로 주장했고, 미등기전매 세율은 부총리가 70%, 나는 90%를 주장했다. 김 부총리는 원본 잠식 가능성 때문에 위헌결정이 날까 걱정했는데, 나는 선진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과거 80~90% 세율이 있어 괜찮다고 주장했다. 내가 투기과열지구 주택거래허가제 도입을 주장하니 부총리는 역시 위헌 소지로 반대했다. 두가지 문제는 결론을 유보하고 좀 더 검토하기로 했다.
사태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다음날 오후 4시 같은 장소에서 경제장관회의가 또 열렸다. 이 회의에서 △1가구 3주택 이상 양도세 최고 60%로 하되 필요하면 15% 탄력세율 추가 적용 △투기과열지구 주택거래허가제 도입 △부동산 소유 현황 파악을 위한 전산망 조기 완성 등에 합의했다.
10월28일(화) 7시 대통령 관저에서 부동산 회의가 열렸다. 다른 것은 거의 그대로인데, 최종찬 건교부 장관이 단기적으로 투기심리를 제압할 투기과열지구 주택거래허가제에 관해 변호사 자문 결과 위헌 소지가 있다면서 반대로 돌아섰다. 노 대통령도 세금 위주로 가는 게 좋겠다며 주택거래허가제에 부정적이었다. 내가 상황이 심각하니 세금만으론 부족하고 단기에 투기심리를 제압할 허가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노 대통령은 “어차피 효과 없을 것이다. 개인이 주택구입 신청하면 안 받아줄 수 없을 것이다”며 최 장관과 같은 의견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좀 더 검토하는 거로 결론이 났다. 안심이 안 됐다, 과연 이 정도로 요원의 불길 같은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을까.
10월29일(수) 오전 9시 제3차 경제민생점검회의에서 김 부총리가 오후에 발표할 부동산 대책을 보고했다(세종실). 박승 한은총재,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 이규방 국토연구원장,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의견을 말했다. 이규방 국토연구원장이 전체적으로 좋으나 이번 조치로 충분할지 의문이라고 하면서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투기과열지구에 주택거래허가제 대신 온건한 주택거래신고제를 해도 효과가 있을 거라고 주장하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회의 뒤 이규방 원장에게 달려가 주택거래신고제를 의논했다. 주택거래허가제의 무리를 피하면서 비슷한 효과를 거둘 천하의 묘수로 보였다. 급히 김 부총리에게 주택거래신고제 하자고 하니 반승락하면서 12시 열릴 경제장관회의에 함께 가자고 했다. 얼른 노 대통령에게도 주택거래신고제를 건의, 한번 의논해보라는 반승락을 받고 은행회관으로 갔다.
12시 은행회관에서 부동산 대책 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다른 건 이미 확정됐고, 최재덕 건교부 차관이 주택거래신고제에 난색을 표하다가 어딘가 전화를 걸어 의논하더니 세가지 장점이 있다고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에 한해 주택거래신고제를 도입키로 전격 결정됐다. 부동산 대란이 워낙 심각해 세금만으론 투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중론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좀 안심이 됐다. 마지막 순간에 장자방 같은 이규방 원장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김 부총리, 이정재 금감위원장, 최 차관, 김주현 행자부 차관, 이주성 국세청 차장이 10·29대책 기자회견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박봉흠 예산처 장관과 나는 퇴장해 사무실로 돌아왔다. 차에서 부총리의 기자회견 중계방송을 들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부동산 대책에 쏠린 하루였다. 재경부에서 파견 나온 정책실 비서관, 행정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부동산대책은 흔들리는 재경부를 정책실장이 끝까지 설득해낸 결과라고 평했다. 언론에서도 10·29 대책은 청와대 작품이라고 썼는데, 과천청사 공무원들이 출입기자들에게 청와대가 자꾸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요구해 힘들다고 거듭 하소연했기 때문이다. 10·29대책 이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으로 돌아서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부동산투기 괴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정부가 방심하는 사이 괴물은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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