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증시 생존 조건]③ “제품 일류인데, 기업 밸류는 삼류… 상속세 인하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주주 위해 일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
그 이후 상속세 인하 논의가 순서 맞아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명목 GDP는 1조6733억달러다. 수치로만 보면 전 세계 13위에 해당하는 경제 대국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대국’과 다소 거리가 먼 모습이다. 우리나라 증시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기업은 짠물 배당에 익숙하고, 소액주주는 늘 찬밥 신세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벤치마킹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받는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최근 ‘저PBR 테마’를 타고 반등하긴 했지만, 새해 코스피 지수는 부진한 편이다. 1월 한 달간 코스피 지수는 5.95% 떨어졌는데 이는 주요 20개국(G20) 중 꼴찌다. 코스피 지수가 지지부진한 건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 매수세가 늘어나면서 3000포인트를 돌파했지만, 일시적이었다. 미국, 일본 등의 주요 지수가 최근 10년간 우상향 곡선을 그릴 때 코스피 지수는 횡보했다.
지난해 일본은 도쿄증권거래소가 나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인 상장사에 자본 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도출하라고 압박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장폐지를 시킬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우리 정부도 상장사의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로그램의 효용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메릴린치 아시아태평양본부 총괄과 노무라증권 아시아고객관리 총괄대표를 거쳐 올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취임한 이남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를 만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과 해법을 들어봤다.
─멀쩡한 외국인 투자자라면 한국 시장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정도다.
“1990년대 해외 뮤추얼펀드에선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PM)를 국가별로 지정해 업무를 분할했다. 당시에 한국 PM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기업이 돈을 못 벌 때이기도 했지만, 정부 정책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헤지펀드에선 정치가 경제를 완전히 지배하는 터키 PM이 한국까지 담당했다. 한국은 그 정도 수준이었다.
작년까지도 우리나라는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장이었다. 산업 경쟁력은 선진국이고 만드는 제품은 초일류지만, 자본시장은 중국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제품을 만듦과 동시에 자본시장에서 평가를 받는다. 국내 간판 기업을 보면 자본시장에서 이류, 삼류로 평가받는다. 우리 기업들에 대한 산업 경쟁력과 자본시장의 평가가 완전히 극과 극인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기업의 공통점은 과도하게 제품 경쟁력과 연구개발(R&D)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야마지 히로미 일본거래소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총대를 메고 기업들에 좋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는 것에서 나아가 노는 현금이 있는지, 쓸데없는 부동산 자산은 없는지 보라고 했다. 그 덕분에 일본(닛케이225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4배까지 상승했다. 금융 리더십이 이렇게 중요하다.”
─일본은 거래소가 나서 PBR이 낮은 기업을 정리하겠다고 엄포를 놨는데, 이를 두고 정부 내지는 준정부차원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게 맞냐는 반론도 있다.
“학생이 공부를 못 하면 학부모가 과외를 시키는 게 맞지 않나. PBR이 1배 미만인 상장사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없다. 청산하는 게 낫다. 10년째 혹은 그 이상 PBR이 1배 미만이면 회사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어야 했다. 이사회가 그렇지 못하니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화두를 던진 것이다.
별개로 일본거래소의 정책은 모두 자율 규제다. 우리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강제성은 없다.”
─정부가 저PBR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에 대해 외국의 반응은 어떤가.
“최근 들어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았다. ‘Is this real?’이라고 많이 물었다. 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맥락에서다. 정부가 과연 얼마나 소신 있게 해당 정책을 추진하고, 기업이 얼마나 호응해 변화하겠냐는 뜻이다.
그런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과거엔 세 걸음 앞으로 갔다가 두 걸음을 후퇴했는데, 이번엔 세 걸음을 앞으로 갔다가 한 걸음 반 정도를 뒤로 물러서는 것’이라고 했다. 분명 전보다는 자본시장이 조금 나아질 것이다. 이것 역시 진전은 진전이다. 하지만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기엔 불확실성이 많다.”
─기업이 배당에 인색한 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기업이 배당을 등한시하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경영진이 주주에게 배당금을 나눠주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가령 상장회사 대주주 지분이 20%이고 일반 주주가 80%라면 회사 재산 20%만 대주주의 것인데,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 지분율 이상의 회사 재산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견기업의 오너는 회사가 다 본인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경영진이 잘못됐으면 이사회가 이를 막아야 하는데 한국 기업의 이사회는 독립적이지 않다. 글로벌화도 더디다. 수출이 매출의 대부분인 회사는 글로벌한 보드(이사회)가 필요하다.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의 이사회는 메사추세츠공대(MIT) 총장 등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어 경영진이 이들로부터 잔소리를 듣는다. 정리하자면 경영진이 자기 지분 이상으로 회사 재산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이걸 이사회가 견제하지 못해서다.
개인적으로 기업에 투자할 때 실적도 중요하지만 이사회 멤버를 더 본다. 검찰과 국세청, 공정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권력기관 출신이 이사회에 많으면 그 회사는 이사회를 도구로 활용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사들을 많이 모신 회사가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금융위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는데, 이 외에 또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나.
“거버넌스 리포트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관련 내용이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들어가 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정말 아무도 안 본다.
자기자본이익률(ROE) 목표, 회사의 자본 비용, 투자 자본 수익률을 위해 회사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내용을 담은 거버넌스 리포트를 PDF로 만들어서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자마자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보고서에 이사회 멤버 이름을 모두 적도록 해야 한다.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라는 의미에서 월급을 받는 거다.”
─우리 증시가 상승하려면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는 얘기도 한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높긴 하다. 세율이 너무 높으면 창업가 정신을 기대할 수 없어서 낮추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와의 연결성은 다르게 봐야 한다. 증시 상승을 위해 상속세율을 낮추자는 건 순서가 틀린 얘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유가 징벌적 상속세 때문만은 아니다. 상속세가 과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유발된 측면은 있지만 그건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상속세를 낮추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냐. 그건 아니다.
세율을 낮춘다고 기업의 가치가 상승하지는 않는다. 기업이 스스로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사회도 함께 드라이브를 건다면 정부가 상속세율을 낮추는 걸 누가 반대하겠나. 그런 분석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이유는 기업이 주주를 위해 일하지 않아서다. 경영 성과는 뛰어나지만 재무상태표를 놓고 보면 노는 자산, 주주를 위해 작동하지 않는 자산이 많다.
이마트가 본업은 소홀히 하면서 본업과 무관한 와이너리를 3개 인수한 게 대표적 예다. 여기에만 수천억원이 들어갔다. 무리한 인수합병(M&A) 등으로 이마트의 이자지급성 부채는 13조원이다. 오죽했으면 정용진 이마트 부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등판했겠나.
대한민국 경제는 경기에 민감한 산업 구조다. 반도체만 봐도 알 수 있다. 올해는 경기순환적인 관점에서 주가가 오를 수 있는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잘 진행된다면 코스피지수 3000포인트는 금방 갈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최소한 3년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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