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숄츠…경기부진·극우득세에 독일연정 휘청

농민도 대기업도 신뢰 '뚝'…에너지정책도 뭇매
전통적 지지기반 노동계층 얇아지고 '우향우'
숄츠 인기도 급락…"건조하고 결단력 없는 모습에 실망"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독일 '신호등' 연립정부가 경기 부진과 극우 세력 확장, 전통적 지지기반 약화, 연정 내부 잡음 속에 흔들리고 있다.

지난 25년간 단 4년을 제외하고 쭉 연정에 참여해온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과 1919년 이후 8번째 사민당 소속 총리인 숄츠 총리의 인기가 2021년 신호등 연정 출범 이후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4일(현지시간) 진단했다.

2021년 독일 연방 총선에서 25.7%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여론조사에서 투표 의향이 최고 28%였던 사민당은 현재 이 비율이 15%까지 떨어졌다.

워낙 급격하고도 꾸준하게 지지율이 떨어지는 터라 사민당은 오는 6월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나 9월 구동독 3개주 선거에서 참패가 점쳐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많은 독일인이 사회복지나 노동권 보호, 진보성, 유럽연합(EU)과의 결속성 등 가치를 사민당과 공유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세를 넓히고 있는 극우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반대하는 시위에 수십만 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블루칼라' 계층의 지지기반 약화부터 경기 부진, 글로벌 환경 악화, 연정내 의견충돌까지 사민당을 짓누르고 있다.

이에 더해 대담한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는 숄츠 총리의 무미건조한 스타일도 정권에는 악재가 되고 있다.

숄츠 총리는 16년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뒤를 이을 때만 하더라도 편안하고 무난한 선택이 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집권 후 행보에 여론은 실망한 모습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숄츠 총리가 집권 당시 투영했던 이미지는 '인기있고 굳건한 메르켈의 차분하고 편안한 복제판'이었다면서 "하지만 집권 후에는 개방적이고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대신 냉담하고 결단력 없는 모습을 비쳐 왔다"고 꼬집었다.

언론 등 대중적 접촉을 꺼리고, 장관들이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너무 늦게 개입하는 등 소극적이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한 당내 인사는 "숄츠 총리는 이길 수 있는 싸움에만 끼어들고 나머지 일은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식"이라며 장관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방식이겠지만, 위기에 처한 유럽 중심국가를 이끄는 총리로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도이칠란트트렌트가 한 여론 조사에서 숄츠 총리의 지지율은 20%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이 기관이 1997년 기록을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총리 지지율이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도로를 점거하며 벌이고 있는 시위도 연정의 위기를 보여준다. 면세 혜택을 철폐하려는 정부 계획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는 여론 조사에서 독일인 4분의 3 이상의 동조를 얻고 있다.

라이너 둘거 독일경영자총연합회(BDA) 회장이 최근 경영자들이 점점 더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대기업들도 불만이 커지고 있다.

독일은 제조업 부문 부진 등으로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에너지 위기 속에서 연정이 3개 원전을 해체하기로 하고, 연정을 구성하는 녹색당이 주택 소유자들에게 값비싼 열펌프를 설치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산업 및 인구구조의 변화도 사민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을 흔들었다.

노동자 계층이 얇아지고 일자리가 점차 화이트칼라 중심으로 바뀌었다. 쇠퇴한 산업 지역과 구동독 지역 기존 사회주의자들의 '우향우'도 이어졌다. 2000년 이후 사민당 당원은 거의 반 토막이 났고 지난해 기준 당원의 57%가 60대 이상이다.

지난달 초 여론조사기관 인사(INSA) 조사에서 응답자의 64.3％가 숄츠 총리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에게 총리직을 넘기길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치연구기관 포르사가 한 다른 조사에서는 피스토리우스 장관이 올릴 수 있는 사민당 득표율은 3%포인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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