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흑역사가 묻는 이재명 책임[오승훈의 시론]

2024. 2. 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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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민주당 70년 전통의 민주세력
진영 분열史 반복 때마다 위기
李체제 당 변질이 원심력 작용
부패정당 불식 책임도 대표 몫
혁신 없이 정권 심판, 과반 요구
‘이재명당’ 목표 땐 더 큰 책임

DJ(김대중)가 1995년 정계 복귀 후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가장 아쉬워한 것은 당명이었다. 민주당이란 이름을 쓰지 못하는, 분열의 뼈아픈 대가였다. 1987년 대선에서 YS(김영삼)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때부터 이어진 정치사에서 분열의 책임에 짓눌려 왔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는 1997년 JP(김종필)와 DJP 연합을 이뤄 대권을 잡았다. YS가 야합이란 비판을 감내했던 3당 합당 정도의 파격이 아니면 공고한 지역 구도를 깰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분열 책임을 통합으로 갚았다.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은 정통 민주세력의 뿌리다. 그 이름을 다시 찾고 싶다”고 했던 DJ는 2000년에야 새천년민주당 창당으로 민주당 명칭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이름은 민주당(2005년)→민주통합당→열린우리당, 중도통합민주당, 중도개혁통합신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으로, 15년간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다 2015년부터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기간 민주당 진영은 5번의 대선에서 노무현·문재인 두 명의 대통령을 더 배출했고, 6번(제16∼21대)의 총선 중에 2번(17·21대) 과반의 제1당을 차지했다. 한 번은 노무현 탄핵 ‘역풍’, 다른 한 번은 박근혜 탄핵 ‘순풍’이 이어진 덕이었다. 보수 진영의 자중지란 와중에도 민주당 진영을 흔든 건 분열이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다시 분열 진통을 겪고 있다. 물론 탈당한 현역 의원이 4명(김종민 이원욱 조응천 이상민)에 불과하고, 이낙연 전 대표가 짊어진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이들의 제3지대 행보가 순조롭지 않아 파괴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하지만 한번 흔들린 당력과 지지층 정서의 원심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게 정치 생리다. 정세균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를 만나 “민주당에 분열이 일어나면 그건 당 대표인 당신 책임이다. 그것을 감당하고 치유해야 할 책임도 대표가 지는 것”이라고 고언을 했다. 그걸 외면할 정도로, 이 대표가 지난 1년 반 동안 끌어온 민주당은 ‘70년 전통 민주세력의 정당’과는 딴판의 정당이다.

갈등이 있어도 조정과 타협이 있고, 극단을 통제하며 공생 논리와 정체성을 지킨 정당. 몸싸움과 장외투쟁을 불사해도 마주 앉아 끝장을 보고, 정치 노선이 달라도 대의제의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했던 정당이 아니다. 법안의 단독·강행 처리를 마치 공적을 쌓은 듯이 으스대고, 방탄 동원과 팬덤을 앞세워 총재 시절보다 더한 사당(私黨) 식의 운영을 당연한 정치 수단으로 일삼는 정당이 됐다. 그러니 이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떤 선거보다 갈등, 분열 정도는 크지 않다”고 했을 것이다. 비명(비이재명)을 겨눈 공천학살 논란은 친문(친문재인)도 향하고 있다. 퇴임 후 ‘무탈’만 바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이 대표가 만났다고, 분열상이 통합으로 포장되진 않는다.

이 대표는 ‘부패 정당’ 오명에 대한 책임도 있다.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송영길 전 대표가 구속돼 있고, 여럿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송 전 대표는 자신이 대선 후보가 되도록 판을 깔아주고 지역구까지 물려준 인사다. 민주화에 헌신했다는 386 대표 주자가 부패의 화신이 됐다. 이 대표도 3개 재판을 받고 있고, 일부 사건에선 최측근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은 이제 틀린 말이다. 분열과 부패가 폭망의 길인 것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 시대다. 민주당 진영도 세 번의 집권기를 거치며 이미 기득권이 됐고, ‘조국 사태’로 그 민낯과 위선이 드러난 지 한참이다.

분열·부패 책임론에 붙들리면 정치적 부담과 제약이 커진다. 진영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책에서 “정당의 정체성 확립 자체가 무리고, 그래서 유권자를 움직이기 손쉬운 기제를 동원한다”고 했다. 이 대표의 주된 메시지는 윤석열 정부 공격이다. 익숙한 정권 심판 프레임이다. 혁신 의제는 구사하기 힘들다. 상대의 흠을 들춰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게 전부다. 과반 의석을 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나, 선거전략과 공천 과정을 놓고 보면 ‘이재명의 당’ 완성이 우선인 듯하다. 그게 전통의 민주당이 이 대표에게 묻는 더 큰 책임이 될 수도 있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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