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권과 맞바꾼 위성정당[김지현의 정치언락]

김지현 기자 2024. 2. 5. 11: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오전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 유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칼을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월 5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자리에서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 유지 입장을 밝히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총선을 고작 2달 남겨놓고 이제야 선거제 입장을 밝힌 겁니다.

선거제를 바꾸려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키는 원내 1당인 민주당이 쥐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이날 발표로 21대 총선 때 적용됐던 선거제가 그대로 유지될 전망입니다. 4년 전과 똑같은 ‘위성정당 난립 사태’가 반복될 거란 의미입니다.

● 돌고 돌아 또 위성정당

“위성정당을 금지시키라는 국민적 요구에 따라, 민주당은 위성정당 금지 입법에 노력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실패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일단 국민의힘 탓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한걸음’입니다. 과거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습니다”라며 ‘정신 승리’를 하더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인정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DJ 정신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위성정당의 정당성은 ‘정권심판론’에서 찾았습니다. 이 대표는 “정권 심판과 역사의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준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준비하겠다”라며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을 구축하여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이끌겠다. 민주개혁세력의 맏형으로서,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말이 좋아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이지, 결국 위성정당입니다. 윤석열 정부 심판에 함께할 세력은 다 같이 힘을 합쳐 일단 총선에서 이기고 보자는 겁니다. 본인 스스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준(準) 위성정당’이라 표현하며 “결국 준(準) 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사과드린다”고 하더군요.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 선거제 관련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병립형과 준연동형 사이에서 오락가락 갈팡질팡해왔습니다. 애초 연동형 비례제는 거대 양당의 독식을 막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늘리자는 명분으로 민주당과 정의당이 주도해 2020년 21대 총선 때 처음 도입된 제도입니다. 거대 정당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비례 의석에선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보니 선거가 임박해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띄웠습니다. 그러자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뒤늦게 ‘전(全) 당원 투표’까지 동원해가며 똑같이 위성정당을 만들었고요.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등장하면서 결국 소수정당 배려라는 제도의 원 취지는 무색해졌고 양당 제도만 공고화됐죠.

21대 총선을 13일 앞두고 2020년 4월 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21대 총선 중앙선대위 합동 출정식. 동아일보 DB
이 때문에 이번 국회 들어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위성정당 방지법’이 수두룩하게 발의됐습니다만, 민주당은 국민의힘 탓을 하며 이를 끝내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법안은 잘도 밀어붙이는 거대 야당이 위성정당 방지법은 외면한 거죠.

결국 이번 총선 때도 선거법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거대 양당의 ‘쌍둥이 버스’와 선거운동 점퍼 뒤집어 입기 등 온갖 추태가 반복될 예정입니다. 국민의힘은 이미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될 경우를 대비해 지난 1월 31일 ‘국민의 미래’라는 위성정당 창당 발기인 대회까지 마친 상태죠. 지난 총선보다 위성정당 준비 시점이 오히려 더 앞당겨졌으니 이번엔 더 다양한 꼼수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 文 “대선에서도 전화위복”

갈팡질팡하던 이 대표가 결국 준연동형 유지를 선택한 건 결국 앞으로 펼칠 자신의 정치 여정에 있어 ‘야권 연합’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계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실 그는 지난해 11월에만 해도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 방침을 시사했었죠. 그 직후 야권에선 거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김부겸 정세균 전 총리 등을 비롯한 원로들이 연이어 그를 만나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촉구했고, 이탄희 의원 등 당내 계파를 뛰어넘은 현역 의원 80여 명도 최근까지 여러 차례 연동형 비례제의 당론 채택을 요구해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가운데) 등이 1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개혁진보대연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병립형 퇴행은 윤석열 심판 민심을 분열시키는 악수 중의 악수”라며 “비례 몇 석 더 얻으려다 지역구에서 손해 보는 소탐대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앞줄 왼쪽부터)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상임고문,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1월 29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균형발전 2.0 시대를 향해’ 국가균형발전선언 2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뉴스1
이들의 눈치를 보며 잠시 준연동형 유지 방침으로 돌아서는 듯하던 이 대표는 올해 초 습격당한 후엔 총선 목표로 “151석 단독 원내 1당”을 강조했습니다. 야권 도움 없이 민주당 자력으로 원내 1당이 돼야 한다, 즉 병립형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였을 겁니다. 당시 당 관계자는 “용혜인부터 조국, 송영길까지 위성정당을 자청하고 나섰는데 벌써 감당이 안 되는 지경”이라며 “이대로 선거에 이긴다 한들, 원내 입성 후 계속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이렇게 계속 선거 유불리만 따지다 보니 당 지도부 의견도 팽팽하게 갈렸습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2월 2일 3시간여에 걸쳐 ‘선거제 끝장 토론’을 벌였지만 결국 결론을 못 내리고 관련 당론 선택 권한을 이 대표에게 위임했죠. 5일 긴급 기자회견 당일 오전까지도 당 대표실은 이 대표에게 병립형과 준연동형 두 가지 버전의 회견문을 줬다고 합니다. 결국 선택은 오롯이 이 대표 몫이었던 거죠.

밤새 이뤄진 이 대표의 결단 배경엔 전날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양산 사저에서 이 대표와 오찬을 함께 하며 “민주당의 힘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조금 우호적인 제3의 세력들까지도 다 한데 모아서 상생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정치를 바꾸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대선에서도 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합니다. 문 전 대통령 특유의 ‘고구마 화법’을 고려하면 상당히 직설적으로 “차기 대선에서 이기려면 야권 연합을 해야 않겠느냐”고 압박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문 전 대통령의 당부도 (이날 준연동형 유지 결정의) 연장선에 있다”며 “문 전 대통령 말씀도 잘 들어야 하고, 김부겸 정세균 전 총리 등 과거 민주당 주류였던 분들의 생각도 그 흐름이었기 때문에, 이를 이 대표가 되돌리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 대표는 4개월 가까이 질질 끌다가 결국 막판에 자기 향후 정치 행보까지 계산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쪽으로 결정한 겁니다. 사실상 ‘이재명 대권’과 맞바꾼 위성정당인 셈이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기자들과 만나 “5000만 명이 큰 영향을 받을 선거의 선거제를 이재명이라는 한 사람 기분에 맞춰서 정한다는 게 정말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 선거에서 자기를 방탄해야 하는 대단히 큰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며 “이게 민주주의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도 하더군요.

참고로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땐 “위성정당 없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통한 다당제 구현”을 공약하며 “다당제를 위한 선거 개혁과 비례대표제 강화는 평생의 꿈”이라고까지 했었습니다. 차기 대선을 위해 너무 쉽게 포기한 듯한 ‘평생의 꿈’이 그의 향후 그의 정치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두고볼 일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