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작가’라 불리지 못했던 그 이름···상허 이태준 전집 나온다
“누가 맑지도 못한 목청으로, ‘사…케…와 나…미다까 다메이…끼…까….’를 부르며 큰길이 좁다는 듯이 휘적거리며 내려왔다. 보니까 수건이 같았다. 나는 ‘수건인가?’ 하고 아는 체하려다 그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휙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은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그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상허 이태준(1904~?)의 단편소설 ‘달밤’의 일부다. 험난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시민 ‘황수건’의 삶을 담은 ‘달밤’은 이태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태준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모은 전집이 열화당에서 출간됐다. 1차분으로 4권이 먼저 출간됐으며, 2028년까지 총 14권을 펴낼 예정이다.
1권은 그의 단편소설을 모두 수록한 <달밤>, 2권은 중편소설, 희곡, 시, 아동문학 작품을 엮은 <해방전후>이며, 3~10권은 장편소설이다. 11권은 상허의 모든 수필과 기행문을 모은 산문집 <무서록>, 12권은 문장론을 담은 <문장강화>, 14권은 <평론·설문·좌담·번역>, 14권은 그의 어휘들을 예문과 함께 정리한 <상허 어휘 풀이집>으로 나온다. 1권에는 처음 공개되는 단편소설 ‘동심예찬’도 수록됐다.
1925년 단편 ‘오몽녀’로 등단해 20년간 활발히 글을 쓴 이태준은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근대화와 식민지 현실에서 방황하는 인간상을 그리는 동시에 사람들의 순박한 성품과 연민을 담아내는 소설가였다. 그러나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한때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했다. 1946년 8월 월북 이후 1950년대 중반 숙청당한 뒤 행적이나 사망 연도도 알 수 없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이후로 몇몇 전집은 발행됐지만 아동문학·희곡·시·평론 등 그의 모든 작품을 망라한 전집은 없었다. 이번 전집에는 그가 월북 이전에 썼던 모든 작품들이 담겼다. 그의 사진 및 삽화 등 관련 자료는 전집이 완간될 시점까지 종합해 마지막 권에 공개된다.
전집을 기획한 이는 이태준의 조카인 김명열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그는 책머리에 “상허는 우리 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자손이 남한에는 한 명도 없게 되면서 그의 작품들조차 관리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며 “상허의 자손을 대신해서 그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책무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본문을 확정하는 것은 곧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므로 창작에 버금가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강하게 마음을 끌었다”며 “또 바르게 정리된 본문을 후세에 전하는 것, 또 그럼으로써 앞으로 모든 상허 작품에 관한 연구와 평론에 올바른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바라는 바이자 상허의 문학을 기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2015년부터 본격적인 원고 정리 작업에 착수했고 월북 전 상허의 글을 모두 모은다는 원칙을 정해 2017년 중반 1차 원고 정리를 마쳤다고 했다.
김 교수와 열화당 출판사는 월북 이전 마지막 판본을 원전으로 삼고 복원했다. 특히 지금 시대에도 ‘읽힐 수 있게’ 복간하려고 대화문은 모두 현행 표기법을 따르고 편지글, 인용문에서 드러나는 방언이나 당대의 표현, 등장인물의 독특한 입말 등은 그대로 살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권마다 주석이 적게는 500여개, 많게는 1400여개까지 달렸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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