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비 카타르] 축구장에서 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베스트 일레븐=도하/카타르)
2023 AFC(아시아축구연맹) 카타르 아시안컵 현장에서 <베스트 일레븐> 공식 '말쟁이' 김유미 기자가 전하는 현지 에세이입니다. 일하다 힘들 때면 종종 찾아오겠습니다. 하비비는 이곳 말로 '내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한 달간 카타르와 사랑에 빠져보겠습니다. 함께 해요. <편집자 주>
경기장은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엔 항상 기쁨과 즐거움, 분노와 슬픔이 공존합니다. 선수들의 감정은 곧 팬과 미디어에까지 전염되지요.
경기장은 많은 이들의 일터이기도 합니다. 감독과 선수들, 스태프, 심판, 미디어 등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임무를 해냅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에 수많은 감정 교류가 일어나고는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업무, 즉 밥벌이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축구장에선 최대한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아시안컵 현장에서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든 순간들이 왕왕 있었습니다. 피치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영향을 덜 받는 편입니다. 기자석에서 거리가 멀기도 하고, 잔디 위 일들은 곧 기사 소재가 되기에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적기 때문입니다.
다만 기자석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곧 우리 모두의 일이 되는데요. 특히 외국 기자들의 눈물과 환희를 접할 때면, 곁에서 함께 울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이곳에선 기자들의 눈물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이틀 전 이란과 일본의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을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한국 기자 셋을 기준으로 양 옆, 그리고 앞뒤로 이란 기자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한참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주요 장면마다 괴성을 지르고,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며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너네, 여기 일하러 와서 뭐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란 기자들이 노트북이나 수첩 하나 없이 앉아 있고, 미리 새벽에 지정해 맡아둔 우리 자리까지 차지하는 통에 이미 화가 잔뜩 난 상태였습니다. 관중 소리에 더해 근거리에 자리한 기자들까지 소란을 피워대니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게다가 우리와는 크게 상관 없는(나중에 만날 수도 있지만) 남의 경기라 '아무나 이겨라'라는 배배 꼬인 못된 심보도 작용했지요.
일본과 이란은 1-1 동점으로 90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연장전에 돌입할 게 불보듯 뻔해 보였죠.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후반 45+6분, 이란의 공격수 알리레자 자한바크슈가 극적인 역전 골을 터트린 겁니다.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의 지축이 흔들리고, 기자석도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열일'하는 일본 기자들과 한국 기자들은 기사를 수정하거나 기록하기 바빴지만, 이란 기자들은 모두 기립해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했습니다.
골 장면을 노트북에 기록한 뒤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제야 두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주변 이란 기자들이 열에 아홉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눈물을 쏟고 있었거든요. 남이 울면 금세 따라 우는 F라서, 차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습니다.
잠시 후 종료 휘슬이 울렸습니다. 이란 선수들도, 기자들도 전부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속으론 '울지마 바보들아! 아직 안 끝났잖아'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맘이 뭉클해져 한참을 먼 곳만 바라봤습니다.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들쳐 맨 뒤, 소리치고 쿵쿵대던 이들에게 '결승에서 보자'고, 진심을 담아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일본 기자들을 보며 마냥 남의 일은 아닌 듯해 한숨이 나왔습니다.
저는 애국가를 들으면 그렇게 눈물이 납니다. 이 사실은 <베스트 일레븐> 매거진 기사에서도 한 차례 밝힌 적이 있는데요. 과거에 아주 몹쓸 짓을 한 매국노였든지, 아니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한몸 바친 독립운동가였던 듯합니다. 저와 감정선이 비슷한 J 선배 역시 애국가가 나올 때면 눈물을 차올라서 고갤 들고, 호두턱을 만들어 보입니다. 동지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희로애락이 가득한 경기장과 그곳의 사람들은 늘 제 '눈물 버튼'을 연타합니다. 이제 이곳 시간으로 한국과 요르단의 준결승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또 한 번 기쁨의 미소와 환희의 눈물을 지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 물론 결승전에서도요.
글=김유미 기자(ym425@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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