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를 ‘플라스틱 댐’에 가둔다면…빙하기 막을 수 있을까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기후위기 논란의 현장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이 출동합니다. 어지러운 숫자들로 뒤덮인 복잡한 자연-사회 현상을 엉망진창 조사반이 주제별로 조사해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조사반의 활동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사실과 의견은 취재와 논문, 보고서 등을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4회 ‘북극곰 미역 뜯어먹는 소리? 기후위기 전부터 맛있게 먹어 왔습니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26306.html)에서 이어집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실’(SEAL)이라고 한 제보자는 최근에 그린란드 바닷가에 인간들이 돌아다니며, 빙하 앞에 댐을 짓겠다며 물범들로부터 이주 각서에 도장을 받고 다닌다고 해요. 댐을 짓지 않으면, 영화 ‘투모로우’에 나온 것처럼 유럽과 미국에 냉혹한 빙하기가 닥칠 거라나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익적 사업이니까 퇴거하지 않으면 강제수용을 하겠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북극에 댐을 짓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어쨌든 눈으로 보기 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는 법이죠.
“왜 자꾸 북극에서 제보가 오는 거죠?”
“기후를 움직이는 핵심 엔진이기 때문 아닐까? 그린란드 빙하와 바다얼음이 녹을수록 지구의 바다와 대기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지금 기상이변도 생기는 거고.”
조사반은 짐을 챙겼습니다.
“근데, 어디로 가죠?”
“북극의 한파가 몰아친다고 하니까, 북극의 가장 안쪽, 도달불능점에 가보세나. 등허리로 팔을 뻗어 봐. 팔이 닿을랑 말랑한 그 지점이야.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는 곳.”
모든 육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도달불능 북극점(North pole of inaccessibility·PIA). 19세기 사람들은 알래스카와 러시아 추코트카 그리고 그린란드 세 축에서 가장 먼 이 곳을 중심으로 북극해의 얼음덩어리가 회전하기 때문에 배로 접근이 안 되고 개썰매를 타고 가기에도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서도 마찬가지였습죠. 탐험가 존 맥닐은 재측량을 통해 기존 지점에서 200㎞ 떨어진 것으로 확인된 북위 85.5도, 서경 176.9도의 도달불능점을 향해 여러 차례 탐험에 나섰지만, 거친 얼음 상태로 번번이 돌아오고 말았어요. 맥닐이 조직한 ‘아이스 워리어’(Ice warrior) 탐험대는 올해에도 재정 지원을 받아 출발할 계획이에요. 캐나다 이삭센 곶(Cape Isachsen)에서 1300㎞를 카누와 도보로 이동한다는데, 생각만 해도 으슬으슬 춥습니다.
도달불능 북극점을 지났더니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오면 되잖나!”
창밖으로 보던 조사반장이 으스대며 말했습니다.
도달불능점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저 하얗고 거칠고 딱딱한 바다의 껍질만 펼쳐져 있었죠. 착륙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북쪽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도달불능점까지 온 만큼 거리를 가야 육지가 나오겠죠.
몇 시간 뒤, 그린란드 남동부의 바닷가가 나타났어요. 육지의 빙하가 흘러 내려와 바다와 만나고 있었죠. 비행기는 해안가 자갈밭에 착륙했습니다. 빙하의 혀(glacier tounge)라고 불리는 빙하 끝자락에는 4~5분에 한 번씩 ‘우르릉 꽝’ 소리를 내며 얼음이 깨져 나갔어요. 그 옆에 빛바랜 입간판이 있었죠.
‘아무도 몰랐던 곳, 북극곰의 파라다이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때 멀리서 북극곰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거넸습니다.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죠?”
“도달불능 북극점에 갔다가 못 내려서 계속 왔더니 여기네요.”
“여기야말로 진짜 인간의 도달불능점이죠. 그래서 인간들은 우리의 존재도 몰랐어요. 2022년에야 유명한 학술지에 우리에 관한 논문이 출판됐다고 하던데. 그 뭐냐, 어니언스라던가?”
“아뇨. 사이언스요.”
북극곰은 바다얼음에 의존해 사냥을 합니다. 따라서 온난화에 따른 바다얼음의 감소는 북극곰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죠. 그런데, 바로 이곳, 그린란드 남동부, 그러니까 북극곰의 파라다이스에 기존 북극곰과 상반된 생태를 가지고 기후변화를 이겨낼 수 있는 북극곰이 발견된 거예요!
험준한 산악 지형인 그린란드 남동부는 인간이 발길이 닿지 않아 북극곰에 관한 연구도 많이 이뤄지지 못했어요. 내륙을 흐르던 빙하는 바다로 이어지는데, 빙하 끝자락에 담수 호수가 생겨 빙산이 떠다니곤 합니다. 파라다이스의 북극곰은 이곳 빙하와 담수 호수를 중심으로 살아가요.
“여기는 다른 북극곰 서식지와 달라요. 빙하가 녹아 잘게 부서진 슬러시 형태의 얼음 그리고 민물의 호수와 얼음 조각,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오. 다른 북극곰들처럼 우리는 바다얼음이 주 삶터가 아니오. 먼 바다로 나가서 물범을 잡는 건 기껏해야 넉 달밖에 안 되지. 대신 우리는 이곳에 삶터를 잡았어. 여기엔 물범도 산다오."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그린란드에서 기온이 많이 오르고 있는 곳 아닙니까?”
“맞소. 여기보다 추운 저 고위도의 북극이 이번 세기말이면 이런 모습이 될 거라고 하더군. 하지만 우리는 바다얼음에 나가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소. 여기서 다 해결되거든. 이곳은 기후변화의 피난처라오. 북극곰 셸터라고 할 수 있지.”
학술지 ‘어니언스’, 아니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보면, 현재 이곳에서 수십~수백 세대 고립되어 살아온 북극곰들이 현재에도 200~300마리 있고, 유전적으로도 다른 개체군과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이들의 나흘 동안 이동거리는 평균 10㎞ 정도로, 바다를 헤매는 그린란드 북동부 곰들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다고 해요. 몇 년 동안 한 곳의 피오르에만 머무는 북극곰도 있었다고 하네요. 말하자면 ‘정주형 북극곰’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멸종하지 않은 이유
지난 조사에서 세계 북극곰 개체군이 19개가 있다고 했는데, 연구팀은 이 집단을 20번째 개체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이 집단이 앞으로의 기후변화에도 북극곰이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고 썼지요. 북극곰도 따뜻한 환경에서 지형에 잘 적응하면 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인간을 본 적이 오래됐어. 스콜뒹엔(Skjoldungen)과 팅미아미트(Tingmiarmit)에 있던 인간 정주지도 1960년대 중반에 버려졌고, 몇몇 사냥꾼들도 1970년대 후반에 다 떠났다네. 그래서 우리가 알려지지 않은 거야.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멸종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게 된 이유일 수도 있지.”
“그런데, 혹시 이 근처에서 댐 짓는다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 사람들이 동물들한테 빙하랑 빙산 넘기고 빨리 나가라면서, 도장을 받고 다닌다고 하던데.”
“아, 저 피요르 너머 빙하에 사는 물범들 이야기일 거요. 거기로 가보시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설 연휴인 2월12일은 쉬고, 2월19일에 이어집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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