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기술로 ‘이이제이’…암세포가 항암제 만든다

곽노필 기자 2024. 2. 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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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제조에 쓰인 메신저RNA 이용
암 세포 안에서 면역세포 유인 단백질 생산
암세포(파란색, 가운데)를 둘러싸고 있는 킬러 T 세포(녹색 및 빨간색). 위키미디어 코먼스

코로나19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운 메신저RNA가 암 치료 분야에서도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메신저RNA란 세포에 특정한 단백질을 만드는 지침을 전달하는 유전물질을 말한다. 코로나19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지침을 담은 메신저RNA로 이뤄져 있다. 백신이 주입된 팔 근육 세포 안에서 이 단백질이 만들어지면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이를 바이러스로 인식해, 이에 맞설 항체를 생성한다.

코로나19를 통해 메신저RNA의 엄청난 잠재력에 주목한 세계 제약업계는 현재 예방을 넘어 치료제로 이 물질을 활용하려는 연구에 한창이다. 가장 중요한 표적 가운데 하나가 암이다.

암 치료에서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약물을 치료가 필요한 부위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에선 메신저RNA를 지질 나노입자에 씌워 세포로 안전하게 운반하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암 치료제는 표적을 벗어난 조직에서는 엄청나게 독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정교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메신저RNA 암 치료제가 처음으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개발업체인 미국 보스턴의 생명공학기업 스트랜드 테라퓨틱스는 올 봄부터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위한 환자 등록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방법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를 하듯, 메신저RNA를 특정한 세포에 정해진 양만 전달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암 세포는 면역 체계를 회피하는 특성이 있어 잘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발견하기 힘든 암 세포를 직접 겨냥하는 대신 면역계에 암세포의 존재를 알려주는 신호, 즉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다.

메신저RNA 치료법도 바로 이 방식을 사용한다. 메신저RNA를 이용해 인터루킨-12(IL-12)라는 염증성 단백질(사이토카인)을 만들면, 이 단백질을 감지한 면역세포(T세포, NK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게 된다. 이 회사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제이크 베크래프트는 기술미디어 ‘와이어드’에 “메신저RNA가 하는 일은 종양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그 세포가 해당 단백질을 분비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양 세포를 약물 공장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가서 사냥꾼을 유인하는 깃발을 흔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코로나19 퇴치에 큰 공을 세운 백신의 주성분인 메신저RNA가 암 치료에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특정 세포만 공격하는 정교한 치료 가능

인터루킨-12는 오래 전부터 잠재적인 암 치료제로 주목한 물질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시행한 초기 임상시험에서 환자들이 독성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이 단백질이 혈류를 타고 몸 전체에 심각한 염증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후 부작용을 개선한 약물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이 잇따라 이에 기반한 암 치료제 개발을 중단했다.

스트랜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양 세포 환경에서만 염증성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일련의 지침을 메신저RNA에 추가했다.

‘유전자 회로’로 명명된 이 지침은 세포 안에 있는 마이크로RNA 분자를 감지하도록 설계됐다. 메신저RNA와 결합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마이크로RNA는 암세포와 건강한 세포에서 서로 다른 신호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의 RNA가 수천개의 뉴클레오타이드(‘인산-5탄당-염기’로 이뤄져 있는 핵산의 기본 단위)로 구성돼 있는 것과 달리, 마이크로RNA는 20여개의 뉴클레오타이드로 구성된 작은 RNA 분자다.

이 유전자 회로에는 또 의도한 표적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메신저RNA가 스스로 파괴되도록 하는 지침도 들어 있다.

이 회사는 우선 이번 임상시험에서 흑색종과 유방암 등 접근하기 쉬운 종양을 표적으로 삼아 이 치료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알아볼 계획이다. 종양 세포에 직접 메신저RNA를 주입한 다음 실제로 종양세포에 국한해 효과를 내는지 살펴본다. 특정 세포나 조직에서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이 치료법의 기본 개념이다.

이 회사 공동설립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론 와이스(생물공학)는 그러나 “컴퓨터 회로와 마찬가지로 유전자 회로도 때때로 실수를 할 수 있다”며 “만약 유전자 회로의 실수가 10번 중 한 번이면 치료법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겠지만 백만번 중 한 번으로 나타나면 꽤 괜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DNA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유전자 회로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와이스 교수는 2013년 당시 대학원생 베크래프트와 함께 메신저RNA를 위한 유전자 회로를 연구했다.

와이스 교수는 와이어드에 이번 임상시험에 대해 “유전자 회로가 생물학의 근본적인 복잡성에 대응하는 정교한 치료법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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