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달라졌다…전쟁할 결심? 헤어질 결심?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북한 문제 권위자들인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11일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 공동 기고에서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한국전쟁 직전 상황과 현재를 빗댔다.
칼린 연구원과 헤커 박사는 “너무 극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면서도 “우리는 김정은은 그의 할아버지가 1950년에 그랬듯 전쟁을 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이 언제, 어떻게 방아쇠를 당길지 모른다”면서도 전쟁의 위험은 미국과 한국 등이 일상적으로 밝혀온 경고를 훨씬 넘어서는 정도라고 진단했다. (한겨레·1월14일)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북한의 전쟁 개시 가능성을 경고한 가운데 미국 정부 쪽에서도 북한이 몇달 안에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북한이 몇달 안에 한국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고 25일 보도했다. 이 관계자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발언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발사는 한국을 압박해온 기존의 패턴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전면전이 임박했다는 신호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겨레·1월26일)
Q. 나 요즘 정말 걱정돼. 북한은 허구한 날 미사일 쏘고, 한국 정부는 ‘즉강끝’(즉각 강력하게 끝까지) 보복하겠대.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미국 전문가들도 1950년 5월 이후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며?
A. 심각하지. 뭣보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이 전례 없이 요란해. 서해 해안포 사격(1월5·6·7일), 극초음속탄도미사일 발사(1월14일), 전술핵 탑재 수중 핵 어뢰 ‘해일’ 실험(1월19일), 불화살-3-31형과 화살-2형 순항미사일 발사(1월24·28·30일·2월2일)….
올해만 짚어봐도 이 정도고, 지난해에도 북한은 중단거리 각종 미사일 발사뿐만 아니라 5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어. 특히 고체연료를 쓰는 화성-18형을 세 번 쐈는데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이래. 11월엔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도 쏘아 올렸잖아.
여기에 적대행위를 하지 말자는 9·19 남북군사합의도 휴짓조각됐으니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사라졌잖아.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하면 전쟁의 불꽃이 당겨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Q. 그런데 미국 전문가들이 말하는 건 단순히 핵무기개발 등 무력 증강과는 다른 차원 아니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쟁을 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거잖아.
A. 응. 김 위원장의 동생이자 대변인격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지난해 7월 조선중앙통신에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표현해서 관심을 모았지. 그러더니 결국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교전 중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해버렸어. 1월15일엔 북한 의회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헌법에 명기하자고 한 거야. 김정은이 ‘전쟁할 결심’을 했다는 해석이 나온 배경이야.
Q. 김정은이 정말 ‘전쟁할 결심’을 했다고 생각해?
A. 일단 말만 보면 그래. “핵위기 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고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 “대한민국 족속들은 우리의 주적” 등 무시무시한 표현을 써.
그런데 이 문장 좀 다시 읽어봐. 잘 보면 ‘여지’가 있어. “대한민국이 우리를 상대로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그러한 기회가 온다면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리겠다” “우리는 결코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 적어도 자기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진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간단히 정리해볼게. 남북은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될 관계가 아니다→남북은 적대적 국가관계다→남쪽 등 적들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진 않는다→만약 먼저 도발하면 전쟁을 피할 생각 없다→전쟁하면 무조건 이기겠다.
북한에 적대적인 한국 정부나 서방 당국자, 관측통들은 김정은의 ‘전쟁할 결심’만을 부각하는 것 같아. 하지만 잘 봐. 분명한 건, 김정은은 앞으로는 남한과 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겠다는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전쟁할 결심도 불사하겠다, 이거야.
Q. ‘전쟁할 결심’에 앞서 일단은 ‘헤어질 결심’이라니 조금 안심이 되네.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작은 분쟁이라도 벌어지면 전쟁으로 판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야.
A. 합리적 우려야. 그런데 한국의 강경파 발언에도 뭔가 여지가 있어.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있잖아. 입만 열면 ‘즉강끝 보복’ 쏟아내던 사람. 신 장관이 16일 저녁 라디오에 나왔는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지나친 과장”이라고 하더라. 평소 신원식이라면 더 목소리를 높일 것 같았는데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북한의 심리전에 말려들지 말라”고 했어.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준비한다면 전쟁에 꼭 필요한 포탄을 러시아에 수출하겠냐고 반문하더라고.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로버트 칼린, 지그프리드 헤커의 기고도 잘 살펴보면, 방점이 다른 데 있어. “한-미는 철통 같은 억제력을 강조하는 등 김정은 위원장이 현상 파괴를 시도하지 못하게 하면서 북한 정권의 완전한 파괴를 공언하지만, 그런 믿음은 치명적일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한-미가 승리하더라도 결과는 무의미하다” “헐벗고 무한한 잔해는 눈이 볼 수 있는 한 끝까지 뻗어 있을 것이다” 즉, 북한이 이제 핵무기를 보유한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한-미의 억지력은 의미 없다는 점을 강조한 거야.
두 사람은 평소 북한과의 핵 협상을 주장한 쪽이야.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으로 이제 협상·타협이 물 건너간 상황을 개탄하는 거지. 역설적으로는 북한을 그냥 이렇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다시 한국과 미국이 타협의 궤도로 북한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런 의미일 거야.
보수적 입장의 북한 연구자인 수미 테리도 지난달 30일 포린 어페어즈에 ‘북한의 도발에 대한 과잉대응의 위험성’이라는 글을 실었어. 한마디로, 북한에 ‘오버’ 반응하면 정세를 격화시킬 것이라는 경고야.
정리해보자. 미국의 진보적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의 변화, 전쟁할 결심을 강조하고 있어. 북한에 개입해 현 상황을 개선해보자는 뜻이야. 보수적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전처럼 내버려두자는 거지.
Q. 2017년에도 트럼프랑 김정은이 엄청난 말폭탄을 쏟아냈잖아.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달라?
A. 트럼프 취임 첫해였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니까 트럼프가 막말을 퍼붓고, 그러자 김정은이 더 세게 막말을 해댔지. “병든 강아지” “노망난 늙은이” 등 국가 지도자 사이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면서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 했는데 극적인 화해로 돌아섰어. 다음 해 북-미정상회담까지 했고.
당시 북미 대결은 실제로 전쟁까지 이어질 분위기였어. 트럼프가 주한 미국인 소개령까지 내리려고 했잖아. 북한도 괌에 핵 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했고. 그러다 2018년 새해 들어 반전이 일어났지.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핵 무력 완성 선언을 하고는 남북 및 대외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어. 2월 평창겨울올림픽에 북한팀이 참가하고, 3월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로부터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약속받았지.
트럼프는 대외정책에서 이전 미국 대통령들이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북한 지도자와 회담을 성사시켜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어. 북한 역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트럼프의 과시적 욕망을 낚아챈 거지. 즉 대외적으로는 ‘전쟁할 결심’을 공언하면서도, 남한과의 통일·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염두에 둔 공갈이었던 셈이야. 하지만 지금은 한국, 미국과 타협할 생각을 완전히 접은 것으로 보여.
Q. 하지만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과 완전히 관계를 끊고 살 수 있어? 계속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순 없잖아?
A. 북한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자구책으로 핵 개발을 하면서 이를 담보로 미국 및 일본과 수교해 고립을 타개하는 외교전략을 펼쳐왔어.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아무것도 못 받고 돌아갔지. 김 위원장으로선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잖아. 외교전략을 수정해야 했지. 2019년 8월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라는 무례한 발언을 한 것은 미국과 타협을 포기했다는 신호였어. 이후 쉼 없이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어.
2022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은 북한의 노선 수정에 결정적 계기로 작동했지.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고강도 경제제재를 가했으나 러시아는 버텨내면서 중국 및 비서방 국가와 관계를 확대했어. 러시아와 중국 중심의 다극화 체제가 갖춰지기 시작한 거지.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다시 한 번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았어. 우크라이나와의 싸움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가 특히 적극적으로 나서며 북한과 전략적 관계를 복원했어. 지난해 9월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떠올려봐. ‘지각 대장’으로 악명 높은 푸틴이 회담 장소인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30분 먼저 와서 기다렸잖아. 미국과 한국은 러시아가 북한의 재고 무기를 받으려고 밀착하고 있다고 비판하지.
그러나 북-러 관계는 단순히 그런 차원 이상이야. 미국·한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포기한 북한은 이제 러시아·중국과 새롭게 격상된 관계를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는 중이지. 러시아와 중국이 구축하는 다극화 체제에서 서방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거야.
Q. 북한이 계속 도발 강도를 높이면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A. 미국으로서는 전략자산 배치, 한미 연합군사훈련 강화 등으로 대응하고 있어. 현상적으론 강력해 보이지만 고민이 깊어. 한반도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 긴장을 높이면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밀착 강도를 높이게 되잖아. 미국은 관리 모드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어?
미 국무부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해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정 박 대북고위관리가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직접적인 군사 행동을 하려고 한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당연히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한국과 일본을 위험으로부터 방비하고 있다”고 말했어. 북한의 군사행동 징후를 부인했지만 그의 포인트는 북-러 밀착이었어. “이전과 다른 점들이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다.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는 바람에 북한 문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해졌다.”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이제 완전히 바뀌었어. 북미정상회담 실패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남북관계엔 거시적 변화가 일어났어. 이제 북한은 우리가 알던 북한이 아니야. 정세 변화를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채, 상대가 거칠게 나오니 우리도 미국과 손잡고 강경하게 나가자, 그러면 절대 안 돼.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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