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과 부업 사이 경계인, 프리랜서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2.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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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설날 경부고속도로에 고향을 찾는 차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안나(가명)|교통방송 리포터

새벽 5시30분 알람이 울린다. 씻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나는 지방의 한 교통방송 리포터다. 이른 아침 방송국으로 가는 나에게 택시기사님이 넌지시 묻는다. “방송국에서 근무하세요? 멋진 일 하시네요. 저도 애청자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답하며 웃어 보인다.

아침 7시 방송국 도착. 7시15분 방송을 시작으로 15분·30분·45분. 매시간 15분 간격으로 교통정보와 기상정보를 전달한다. 낮 1시를 전후해 저녁 근무자와 교대하고 퇴근한다. 매달 새롭게 작성되는 근무표에 따라 휴무를 제외하고 한달에 20일을 출근해 꼬박 6시간가량을 근무한다. 휴무는 주말과 휴일 상관없이 근무표에 따른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방송국 지침도 늘 체크해야 한다. 이를테면, 업무 교대에 관한 지침과 기상정보에 추가할 내용, 방송 마무리 멘트 관련 지시사항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한달 일해서 손에 쥐는 급여는 13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 최저임금 수준이다. 2013년 입사 때나 문화체육관광부가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계약서를 쓰도록 한 2017년이나 그리고 2024년 지금이나 금액 수준은 큰 변함이 없다. 교통방송 리포터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더 있다. 입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정보 방송 말고 다른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맡아 진행할 기회가 생겼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송했지만 출연료는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차피 근무시간 중 추가로 방송하는 것이니 별도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는 회사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한번은 리포터 근무 기준과 방송 출연료 기준이 알고 싶어 요청했다. ‘등급별로 큰 차이가 없으니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문체부가 마련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추가로 방송할 경우 출연료를 따로 받게 되었지만, 교통 리포터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임금 총액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1년에 두차례 방송 개편을 앞두고 계약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임금 협상은 없다. 방송 경력이 반영되지도 않는다. 방송 1개월차도, 20년차도 출연료는 동일하다. 열심히 해서 경력을 쌓아 더 나은 방송인이 되어도 처우가 더 나아지지 않는 현실은 2~3년차 리포터들의 퇴사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교통방송 리포터 대다수는 여성이다. 그래서 결혼과 임신은 권고 퇴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10년 남짓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결혼 뒤 출산하고 방송국에 복귀한 리포터는 단 한명뿐이다. 당시 출산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게 될 리포터의 업무를 다른 리포터 10명이 대신하겠다고 회사를 설득해, 겨우 퇴사 아닌 한달 출산휴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후로 그런 요청이 다시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고, 결혼하고 임신한 리포터는 퇴사 권고에 울면서 방송국을 떠났다. 그렇게 결혼과 임신 뒤 퇴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 됐다.

방송국 정규직 직원들은 말한다. 잠깐 와서 방송하고 돈 벌 수 있어 좋겠다고. 하지만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동일한 출연료를 받고, 결혼하고 출산하면 퇴사 권유가 이어지고, 퇴직금도 정년 보장도 없는 하루살이 인생임을 안다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실시간 교통정보 방송 덕분에 지·정체 구간을 피해 목적지에 도착했다거나, 일하기 수월하다는 각종 업무 차량 기사님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면 보람도 느끼고 기쁘다. 하지만, 교통방송의 핵심 업무인 교통정보 전달을 담당하는 리포터로서의 존중도, 최소한의 권리도, 정당한 대가도 없는 프리랜서로서의 만족은 또 다른 문제다. 좋아하는 ‘일’과 ‘생계’ 사이의 고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리포터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다른 일을 병행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랜서는 경계인이다. 본업과 부업의 경계, 소속과 독립의 경계, 자유와 계약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한다. 경계인으로서가 아닌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나의 ‘직업’을 진정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의 ‘일’은 사랑하지만, 나의 ‘직업’을 사랑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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