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에르메스 백도 총알 배송해준다고?

정세영 기자 2024. 2. 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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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치 품은 쿠팡, 대박일까 쪽박일까?

당일, 늦어도 다음 날이면 명품 백이 내 집 앞으로 배달된다. 세상에 없던 초고속 배송 시스템, '로켓배송’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쿠팡이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세계 최대 규모 럭셔리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한 것. 쿠팡의 베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명품 업계의 큰 손 파페치로 덩치 키운 쿠팡

지난해 12월 파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쿠팡이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위해 설립한 쿠팡Inc가 5억 달러, 우리돈 약 6500억 원을 들여 파페치(Farfetch)를 인수한 것. 파페치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군림하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를 비롯해 약 1400곳의 명품 브랜드를 취급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파페치가 진출한 나라만 190개국이 넘으니 그 파급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또 단순 중개를 뛰어넘어 오프화이트, 언레이블프로젝트 등 10곳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뉴가즈 그룹’까지 소유하고 있다.

쿠팡은 이처럼 명품 업계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지닌 파페치를 인수했다. 생활용품, 가전, 식품 등을 넘어 패션, 명품까지 갖춘 글로벌 유통 기업의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범석 쿠팡Inc 창업자는 "파페치는 온라인 럭셔리가 명품 리테일의 미래임을 보여준 랜드마크 기업"이라며 "이번 인수로 명품 구매 경험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다양한 가능성을 점쳐보게 됐다. '명품을 싸게 살 수 있다면?’ '자기 전에 결제해 다음 날 아침 명품 백을 받아본다면?’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쿠팡은 자사의 촘촘한 물류 인프라를 십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간 6조 원 이상을 투자해 전국 30여 지역에 100여 개의 물류망을 갖춰놓았다. 덕분에 수도권을 넘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의 6대 광역시와 제주도에서 로켓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국내 인구의 70% 이상이 쿠팡 물류센터에서 10분 거리인 '쿠세권(쿠팡+역세권)’에 거주하는 데다 쿠팡은 계속해서 신규 물류센터를 짓고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이 명품 배송에 활용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현재 파페치에서 명품을 구입하면 한국까지 오는 데 최장 5일이 걸리지만, 쿠팡이 개입하면 배송 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고가의 명품을 과연 로켓배송 할 수 있을지 의아하지만, 현재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아이폰이나 맥북 등도 로켓배송 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부도 직전 파페치 650억에 인수

쿠팡은 이번 인수로 큰 승부수를 띄웠다. 2010년 창립해 2014년 로켓배송 사업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고 한때 누적 적자가 6조 원에 이르렀다. 내내 마이너스 운영을 면치 못했던 쿠팡이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178억2197만 달러(약 23조1767억 원)를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쿠팡은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올해 사상 처음 연간 흑자를 달성할 전망이다. 실제로 쿠팡은 2020년 13조9236억 원, 2021년 22조2164억 원, 2022년 26조5917억 원으로 꾸준히 매출액을 늘리며 '이커머스 공룡’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금융 전문 포털인 야후 파이낸스는 쿠팡의 지난해 매출액을 31조5750억 원으로 관측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7% 늘어난 수치다. 속된 말로 돈을 긁어모을 일만 남은 듯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서서히 국내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이커머스 시장이 확대되면서 매출 규모가 크게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상승세를 이어가려면 다른 대비가 필요하다. 이는 쿠팡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커머스 기업이 가진 고민이다. 쿠팡은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해외시장 개척 등에 투자하는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결국 문제를 타개하려면 새로운 고객 유입 또는 기존 고객들이 더 큰 지출을 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바로 명품시장에 대한 니즈가 발생했다. 1인당 구매 단가를 높여 큰 마진을 발생시키기에 명품만 한 아이템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글로벌 명품시장에서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소위 '명품이 잘 팔리는 나라’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약 40만4000원으로 미국 34만8000원, 중국 6만8000원 등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1인당 명품 소비액만 놓고 보면 전 세계 1위의 위엄을 달성했을 정도.

쿠팡이 지난해 7월 럭셔리 뷰티 브랜드 전용관 '로켓럭셔리’를 오픈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쿠팡은 로켓럭셔리를 통해 정품으로 확인된 명품 화장품을 새벽 배송하고 있다. 식품, 생활용품, 취미 등 강점을 가진 여러 카테고리처럼 명품, 패션 라인업을 강화하고픈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파페치라는 매력적인 매물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파페치는 왜 새 주인을 찾았을까?’

2007년 포르투갈의 사업가 주제 네베스란 인물에 의해 영국에서 설립된 파페치는 중국의 알리바바, 스위스 리치몬트 그룹 등으로부터 거액을 투자받은 전도유망한 기업이었다. 2018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2021년 초 약 30조 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을 자랑했지만 매해 엄청난 영업 손실을 기록하면서 점차 경영난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무리한 인수합병, 중국과 미국의 소비시장 침체, 공격적인 비용 지출 등 여러 요인이 가져온 위기였다. 급기야 2023년 11월에는 아예 3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곧 부도 위기가 닥쳤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쿠팡이 파페치를 인수한 것이다.

쿠팡은 한때 시가총액 30조 원에 달했던 파페치를 약 650억 원에 인수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득인 것 같지만 파페치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돈 먹는 하마가 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쿠팡 · SSG, 럭셔리 패션 시장서 격돌

쿠팡의 파페치 vs SSG의 네타포르테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에 출연해 쿠팡의 파페치 인수를 설명하던 파인드어스 이재용 회계사는 "파페치 사업이 실패하면 몇조 단위의 캐시를 까먹는 어마어마한 의사결정이 될 수 있다"면서도 "만일 파페치를 정상화하면 쿠팡의 글로벌 진출이 가능해지면서 장기적인 우상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쿠팡이 파페치를 어떻게 경영,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번 인수의 성패가 갈린다는 얘기다. 낙관하는 쪽에서는 쿠팡의 경험치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미 엄청난 적자를 극복하고 흑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크게 노하우를 다졌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대로 다 죽어가는 파페치를 살리기 위해 또다시 엄청난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관적인 시각도 있다. 한편 쿠팡이 적극적으로 파페치를 운영하며 K-패션의 위상을 드높이리란 기대감도 존재한다. 현재 파페치에는 우영미, 송지오, 김해김, 로우클래식, 스튜디오톰보이 등 내로라하는 국내 패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만일 쿠팡이 파페치에 국내 패션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킨다면 그 즉시 190여 개국의 해외시장에 진출한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여타 경쟁업체의 대비도 눈에 띈다. 이커머스 공룡 쿠팡이 명품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상 업계는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백화점을 계열사로 둔 이커머스 기업들은 쿠팡의 행보를 더욱 예의 주시하고 있다. 최근 SSG닷컴은 국내 최초로 글로벌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 '네타포르테(NET-A-PORTER)’의 해외 직구 공식 브랜드관을 선보이겠다고 나섰다. 네타포르테는 리치몬트 그룹 계열 이커머스 운영사인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 소속으로, 전 세계 170여 개국 600만 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800곳 이상의 여성 럭셔리 패션·뷰티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SSG닷컴은 네타포르테 독점으로 전개하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컬렉션, 국내 미발매 신상품, 한정판 제품 등으로 차별화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쿠팡의 파페치 vs SSG의 네타포르테 양강 구도 경쟁을 예견하기도 한다.
주문한 물품을 빠르게 배송하는 로켓배송과 가전, 타이어 등을 전문 기사가 직접 배송·설치해주는 '로켓설치’ 등 쿠팡은 그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전례가 있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일상화하면서 "쿠팡 없이 못 산다" "쿠팡 쓰고 마트를 안 간다"는 사람이 속출했듯, 이번 인수가 앞으로 우리들의 명품 소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더 이상 백화점 명품관이 아쉽지 않은 날이 올 수도, 역시 명품은 백화점이 진리라며 쿠팡을 외면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 과연 우리는 어떤 '쿠팡 라이프’를 맞이하게 될까?

#쿠팡 #파페치 #로켓배송 #여성동아

사진출처 쿠팡뉴스룸 파페치

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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