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사는 애플' 비싸도 질렀는데…"이걸로 뭘 하죠?" 콘텐츠가 없다

배한님 기자, 변휘 기자, 황국상 기자 2024. 2.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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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공간컴퓨팅' 혁명 (下)
[편집자주] 애플의 새로운 헤드셋 기기 '비전프로'가 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공식 출시됐다. 과거 구글이 실험했던 '구글 글래스', 메타가 상용화 한 '퀘스트3'에 이어 삼성전자도 MR(혼합현실) 기기를 준비하면서 현실과 디지털 세상의 소통 방식을 재정의하는 빅테크의 '공간컴퓨팅 기기' 경쟁이 뜨거워지는 흐름이다. PC와 스마트폰에 이어 디지털 디바이스 혁신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공간컴퓨팅 혁명의 현 주소와 가능성을 짚어본다.
'비전 프로' 후기 쏟아낸 외신..."낯선UI·배터리팩·비싼가격 문제"

WSJ의 비전 프로 사용 후기. /사진=WSJ 갈무리
"애플 헤드셋(비전 프로)은 1세대 제품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다. 크고, 무겁고, 배터리 수명도 형편없이 짧고, 좋은 앱도 거의 없으며 버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상 과학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집과 사무실 곳곳에 앱을 설치할 수 있고, 여러 개의 가상 타이머를 가스레인지 위에 붙일 수 있다."(월스트리트저널)

애플의 MR(혼합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 출시 직전 많은 외신이 장문의 사용 후기를 쏟아냈다. IT 전문지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CNBC·WP(워싱턴포스트)·WSJ(월스트리트저널) 등 경제지나 주요 외신들까지도 24시간 이상 체험기를 작성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30분 넘는 영상과 GIF 이미지까지 동원됐다. 공간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기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대중의 이해를 최대한 돕기 위함이다. AR(증강현실)처럼 바깥 모습을 볼 수 있는 '패스스루'나 손·시선 트래킹(추적) 기능 등 신기술에 대한 놀라움은 있었다. 하지만 대중화되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외신들이 호평한 것은 '공간 컴퓨팅'의 핵심인 '패스스루(AR 기능)'와 '손·시선 추적' 등 신기술이었다. 미 IT 전문지 더버지는 "마치 초능력 같다"고 말했다. 현실 공간에 앱과 화면을 띄워놓고 손과 시선만으로 이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WSJ은 "패스스루 카메라는 왜곡이 거의 없다"고 했다.

화면 해상도 등 디스플레이에 대한 호평도 쏟아졌다. 미 IT 전문지 씨넷은 "비전 프로의 킬러 앱은 영화관 수준의 몰입도를 제공하는 영상 재생 앱이다"고 극찬했다. CNBC도 "영화를 보는 게 정말 좋았다"며 "특히 NBA(미 프로농구) 앱으로 한 번에 4개의 경기를 감상했는데, 메인 경기는 가운데 놓고 다른 경기는 양옆에 두고 번갈아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낯선 UI 등 아직 부족한 부분이 더 많다고 외신들은 입을 모았다. 씨넷은 손·시선 추적 기술이 직관적이라면서도 "아이콘이나 버튼을 바라보면 커지거나 빛이 나고, 손가락으로 클릭하거나 집으면 선택되는데 어색했다"며 "컨트롤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더버지도 "화면이나 버튼 등 사용하려는 대상 하나만 계속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기 꽤 힘들다"고 했다. 더버지는 "어두운 곳에서 패스스루를 사용하면 노이즈가 심해 글씨를 읽기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무게·발열·배터리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 특히 부정적인 평이 많았다. 특히 선으로 연결된 외부 배터리 팩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WP는 아이폰보다 무거운 배터리를 별도로 연결해 사용해야 하는데, 이 배터리 지속시간이 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버지는 "비전 프로 하나가 12.9인치짜리 아이패드 프로와 무게가 맞먹는다"며 "내장 배터리를 포함한 메타의 퀘스트3보다도 훨씬 무겁다"고 했다.

부족한 콘텐츠도 문제다. CNBC는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뿐만 아니라 우버이츠·도어대시·아마존·구글 앱도 없고, 디아블로 이모탈·원신 등 인기 게임이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도 없다"고 했다. 더버지는 비전 프로의 생태계가 "외롭다"고 까지 표현했다.

비전 프로 대중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싸다"는 씨넷의 평가처럼 비전 프로는 아직 3500달러(약 460만원)의 가치를 주지 못한다는 게 외신의 최종 평가다. WSJ은 "비전 프로를 쓰면 3D 영화에서처럼 생생하게 하와이 화산 입구를 볼 수 있다"면서도 "앱 개발자나 애플의 열성팬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하와이 화산에 직접 여행을 가는데 3500달러를 쓸 것"이라고 평했다.

비전프로, '너무 이른' 혁신?…콘텐츠 부족, 디지털 중독 위험까지

/사진=팀쿡 트위터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새로운 헤드셋 기기 '비전프로(Vision Pro)'의 출시를 알리며 "NBA의 비전프로용 앱이 출시됐다. 농구 팬들을 위한 진정한 게임체인저"라고 적었다. 미 프로농구의 경기를 비전프로의 경계 없는 화면에서 제공, 비전프로로 구현할 수 있는 공간컴퓨팅(Spatial Computing) 경험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분간 비전프로에서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는 크게 제한적일 전망이다. 당초 애플은 100만개의 애플리케이션(앱)을 비전프로 맞춤형으로 제공할 것이라 자신했지만, 실제 NBA를 포함해 600개의 앱만 준비됐기 때문이다.

팀 쿡 CEO는 "개발자들의 창의성은 놀랍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덧붙였지만, 개발자들은 여전히 비전프로 전용 앱의 제작을 주저하는 표정이다. PC와 스마트폰에 이어 비전프로를 새로운 컴퓨팅 디바이스의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애플의 야심은 킬러 콘텐츠의 부재로 초반부터 암초에 부닥친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글의 유튜브는 "애플 비전 프로용 새로운 앱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세계 1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글로벌 최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마저 '비전 프로를 위한 앱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비전프로가 제공하는 공간컴퓨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우선 분야가 영화·드라마·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였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악재다. 메타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대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비전프로 전용 앱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 빅테크의 비전프로용 앱 출시 거부는 경쟁사인 애플에 득이 될 일은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애플 생태계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는 비전프로의 흥행을 견제해야 하고, 더욱이 구글은 삼성과의 협업을 통해 MR(혼합현실 기기)을 개발 중이다. 메타는 '오큘러스'와 '퀘스트3'로 먼저 헤드셋 기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만큼 미래의 경쟁자를 도울 이유가 전혀 없다는 분석이다.

높은 앱 개발 난이도 역시 개발자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팀 쿡 CEO는 1일 애플의 실적발표에서 "비전프로에는 엄청난 양의 기술이 담겨있다"면서 "손 추적과 공간 매핑 등 모든 것이 AI(인공지능)에 의해 구동된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비전프로의 고난도 조작 방식을 모두 만족하는 앱을 만들기까지 현실적으로 개발자들에게 난관이 많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애플의 제한적인 초기 생산량도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다. 비전프로의 사전예약 판매량은 열흘 만에 2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지만, 생산 지연으로 수많은 예약자가 실제 제품을 손에 쥐기까지 1개월 넘도록 소요될 전망이다. 앞서 시장분석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비전프로 출하량이 6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스트셀러'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다.

일각에선 비전프로의 흥행으로 공간컴퓨팅이 대중화한다면 '디지털 과몰입'이라는 새로운 부작용이 대두될 것으로 예상했다. ABC뉴스는 "사람들이 헤드셋이나 고글을 통해 보는 삶이 더 흥미롭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기술의 불안한 측면을 드러낼 수 있다"며 "이는 아이폰 출시 이후 발생한 고질적인 화면 중독을 더욱 악화시키고, 디지털 의존성의 심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IPO 테마는 공간 컴퓨팅, 상장 노크 잇따른다

올해 연초부터 IT·SW(소프트웨어) 기업들 중에서도 유독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 관련 종목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어떤 산업과 기업이 주목을 받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증시다. 이미 공간 컴퓨팅 기술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상당 수준 올라왔음을 짐작케 한다.

올들어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IT·SW 기업은 디지털트윈 솔루션 기업 '이안'과 메타버스 플랫폼 기업 '케이쓰리아이' 2개사다. 이들 기업은 모두 공간컴퓨팅 솔루션 기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초까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진행한 '이에이트' 역시 디지털트윈 플랫폼 전문기업으로 넓은 의미의 공간 컴퓨팅 기업으로 분류된다.

공간 컴퓨팅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컴퓨터와 현실 또는 가상의 물리적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컴퓨팅을 의미한다. 한 때 증시에 테마로 떴던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MR(혼합현실) 등 메타버스 기술을 비롯해 이안, 이에이트 등 기업의 주 사업인 디지털트윈 플랫폼 등을 아우른다. 디지털트윈(Digital Twin)이란 단어 그대로 현실 속의 특정 공간이나 사물을 마치 쌍둥이처럼 가상공간에 본떠서 구현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가상공간 속에 구현된 쌍둥이 공간인 만큼 현실 공간에서는 감히 시도하지 못한 다양한 변수를 적용해 실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 메타버스 테마주로 분류됐던 기업들의 사업이 대개 게임 등 제한된 영역에만 국한됐던 것과 달리 최근 공간 컴퓨팅 기업들은 현실 공간과 밀접한 영역에서 사업을 펼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안은 산업용 디지털트윈 플랫폼 'DT디자이너', 3D 모델의 시각화 플랫폼인 'O·마스터', BIM(컴퓨터 기반 도면설계·시공) 기술을 활용한 현장설계 및 배관설계 솔루션 'C·마스터' 'P·마스터' 등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이안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이 적용됐다. 이에이트는 디지털트윈 기술을 바탕으로 메디컬트윈(혈류정보 가상화) 시티트윈(스마트시티) 팩토리트윈(스마트팩토리) 워터리소스트윈(강우 및 수자원관리) 에어로트윈(항공엔진 등 가상화) 등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종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디지털트윈 플랫폼에도 이에이트의 기술이 쓰인다. 케이쓰리아이의 메타버스 기술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달 탐사 가상현실 솔루션, 서울특별시 송파일대 역사문화 체험 VR, 한국기술교육대의 가상훈련 콘텐츠, 국방부의 정신전력교육 실감형 디지털 교재 및 '6·25 그날, VR체험' 등이 콘텐츠에 반영됐다.

공간 컴퓨팅 종목의 출현은 IPO 시장에서도 주력군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규 상장을 시도한 IT·SW기업들은 주로 AI(인공지능)을 활용한 보안, 교육, 마케팅 등 솔루션 기업들이었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다. 올해 초 코스피 상장사 롯데정보통신이 CES(미국 소비자가전 전시회)에서 자회사 칼리버스의 초실감형 메타버스 플랫폼을 소개한 것도 공간 컴퓨팅 업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2만9300원이던 롯데정보통신의 주가는 1월 한 때 5만2900원(+80.55%)까지 치솟았다. 현재 다소 조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4만원대 상단에 위치하며 올해 한달만에 40%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관건은 이들 기업에 대한 기대감이 실적으로 이어질 것인지다. 이안, 케이쓰리아이 등 2개사는 2022년에 각각 306억원, 107억원의 매출에 순이익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에이트는 적자 지속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상장한 17개 IT·SW 기업들의 경우 다수가 적자 상태임에도 기술특례 혜택을 받아 상장에 성공했으나 실적 가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가가 고꾸라진 바 있다. 올해 또는 내년 초 상장을 준비 중인 한 공간 컴퓨팅 회사의 임원은 "공간 컴퓨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 우호적인 밸류에이션을 기대할 만하다"면서도 "결국은 실적으로 그간의 기대감이 적절했다는 것을 시장에서 증명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배한님 기자 bhn25@mt.co.kr 변휘 기자 hynews@mt.co.kr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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