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기술유출’ 시도에 정부는 대응 자제?···‘외교 문제·전투기 수출 차질 우려한 듯[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이현호 기자 2024. 2.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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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수출 승인(E/L)’ 관련 내용도 포함
미 교육통제국에 지난달 곧바로 신고
印尼 공동 개발·수출 때 악영향 우려
방산 정보전 비화 재부각 차단 의도도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기가 시험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방위사업청
[서울경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근무하던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관련 내부자료를 유출하려다가 적발됐다. 아직은 핵심 기술 유출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상당한 분량의 자료를 빼내려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 등에 따르면 경남 사천의 KAI 본사 정문 검색대에서 KF-21 개발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소속 연구원 A 씨가 개발 과정 등 다수의 자료가 담긴 미인가 이동식저장장치(USB)를여러 개를 갖고 외부로 나가려다가 지난달 17일 적발됐다. 유출하려고 했던 USB에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자료가 담겨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KAI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회사 밖으로 나갈 때 검색대에서 적발됐다”며 “국정원과 방사청, 방첩사 등에 통보했고 현재 조사기관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는 핵심 기술 등 국가 기밀이 유출된 정황은 없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과 국군방첩사령부, 방위사업청 등으로 구성된 합조사팀은 이들이 유출하려고 했던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해당 기술자는 현재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美 승인 자료 유출 정황···외교 문제 우려

방사청 관계자는 “KF-21 인도네시아 인원(기술자)에 의한 기술 유출 관련 정황에 대해서는 현재 국정원을 포함한 관계기관이 합동조사 중”이라며 “조사결과가 나와봐야 세부사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적발된 USB메모리 자료 중에는 KF-21 개발과 관련해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E/L)’ 관련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한미 간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적발된 USB메모리에 담긴 49종 자료 중 하나로 논란이 되는 이유는 KF-21 개발에는 미국으로부터 수출 승인을 받은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사의 기술 등이 적용됐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이를 인도네시아 정부와 공유하려면 미국으로부터 다시 별도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자료가 유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적발된 USB메모리 자료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미 정부가 우리에게 항의할 빌미가 된다.

지난해 10월 17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아덱스(ADEX) 2023’ 행사장에 국산 전투기 ‘KF-21’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정부가 과도한 대응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KAI 관계자는 “현재까지 군사기밀이나 방위산업기술보호법에 저촉되는 자료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일반자료가 다수인 것으로 안다”며 논란 확대에 선을 그었다.

정부의 한 소식통도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유출하려고 했던 자료 중) 전략 기술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용을 분석해서 심각한 자료가 있는지 다시 보는 단계”라고 답했다.

이처럼 정부가 기술유출 시도 논란 확대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건 이번 사건이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뿐 아니라 향후 전투기 개발 일정과 수출 등에 차질이 있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일이 한미 간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적발된 자료는 수출 승인 기술 관련 표지로 세부 내용이 담겼다. 주목할 점은 우리 정부는 이를 미 국무부 산하 국방교육통제국에 지난달 30일에 부랴부랴 신고했다. 미 정부에 알리지 않을 경우 미 정부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에서다.

정보당국, 고의 유출·내부 공모 여부 조사

이 사업이 추진되던 2015년 록히드마틴사 등 미 측은 이미 기술 이전에 난색을 표한 바 있다. 제 3국으로의 기술 유출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당시의 우려가 현실화 된 것이 아니라고 서둘러 수습해야 향후 미국으로부터의 전략무기 수출에 영향이 미치는 것을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보안에 가장 엄격해야 할 방산업체 내부에 미인가 USB메모리가 반입된 것 자체를 미국 측이 문제 삼을 가능성에 정부로서는 부담이 컸다는 후문이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된 자료에 미 정부의 수출 승인 관련 내용이 미 정부가 인도네시아에 공유하지 않도록 한 내용이라면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문제 보다는 미국의 눈치보기가 더 급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정보당국은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고의로 유출을 시도했는지, 내부 공모자가 있는 지에 대해서 확인 중으로 알려졌다.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지상테스트 중인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KF-21 시제 1호기. 사천=사진공동취재

앞으로 인도네시아와 공동 개발 사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 차원에서 과도한 대응은 자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방사청은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확보한 KF-21 기술 자료 중에 전투기의 눈에 해당하는 AESA 레이더 등 항전 장비가 포함됐다는 보도가 일부 매체에서 나오고 있는데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군 관계자도 “현재까지 군사기밀이나 방위산업기술보호법에 저촉될 만한 내용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기밀이라 할 만한 핵심 기술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분담금을 1조 원가량 연체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이번 일로 양국 협력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 이번 사건에 대해 군 당국이 쉬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 기술만 탈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반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역시 군사기밀 등에 해당하는 내용은 USB메모리에 없었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번 기술 유출 시도가 KF-21 사업 일정 즉, 공동 개발 무산과 향후 KF-21 수출 과정에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로키(low key) 모드’ 대응 분위기

방산 관련 정보전에서 발생한 외교적 비화가 다시 오르내리는 것을 차단하는 정부의 의지도 감지되고 있다. 13년 전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국정원 요원의 침입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도네시아는 형식적인 유감 표명을 했을 뿐, 자국에선 ‘별일 아닌 오해’라고 적극 진화하기도 했다. ‘T-50 수출 성사’를 위해 인도네시아 측 협상 정보를 빼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여섯째로 큰 교역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확전을 자제했다는 관측이 있었다. 결국 숙소 침입 사건 몇 달 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T-50 16대(4억달러) 수출을 최종 계약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우리 정부가 ‘로키(low key) 모드’ 대응으로 대처하는 분위기다.

KF-21은 총개발비 8조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2016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시제기 1대와 일부 기술을 이전받고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48대를 생산하는 조건으로 사업비의 약 20%인 약 1조7000억 원(이후 사업비 조정으로 1조6000억 원으로 감액)을 2026년까지 부담키로 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현재까지 분담금 1조원 가량을 내지 않은 상태다.

이현호 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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