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최악의 화재로 최소 112명 사망…이상 기후가 피해 키웠다

손우성 기자 2024. 2. 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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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는 200명 넘어…주택 6000채 피해
보리치 대통령 “5·6일 국가 애도 기간 지정”
일부 화재는 방화 가능성 제기…당국 수사
칠레 발파라이소주에서 3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흘째 이어진 칠레 중부 대형 산불 여파로 4일(현지시간)까지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약 200명이 실종됐다. 525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0년 2월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14년 만에 발생한 칠레 최악의 재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칠레 당국은 동시다발로 터진 화재 일부에 대해선 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칠레 국가재난예방대응청은 지난 2일 칠레 중부 발파리아소주 페뉴엘라 호수 보호구역 인근에서 시작된 산불로 지금까지 최소 112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중태가 많고, 정확한 실종자 규모도 파악되지 않아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화재가 발생한 지역엔 산비탈이 많아 이곳에 거주하는 많은 고령자가 탈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약 1600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이틀 전 시작된 이번 화재는 강풍과 건조한 날씨 등의 영향으로 삽시간에 주변으로 번졌다. 특히 3일엔 최대 시속 60㎞의 강한 바람이 불어 피해를 키웠다. 라테르세라 등 현지 언론은 칠레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비냐델마르를 비롯해 킬푸에·비야알레마나·리마셰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전했다. 공단 지역인 엘살토에선 페인트 공장이 불길에 휩싸여 인화성 물질로 인한 폭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재산 피해도 상당했다. 현재까지 불에 탄 면적은 경기 수원시 크기와 비슷한 110㎢에 달하며 주택도 최대 6000채가 무너져 내렸다. 칠레가 자랑하는 73년 역사의 비냐델마르 국영 식물원도 90% 이상이 불타 사라졌다. 국가재난예방대응청은 불길이 번질 위험이 있는 30여개 도시 주민에게 대피 알람을 보냈다. 비냐델마르 등 4개 도시엔 야간 통행 금지령도 내려졌다.

최악의 산불이 덮친 칠레 발파라이소주의 한 마을이 전소돼 잿더미가 됐다. AFP연합뉴스

칠레 당국은 불길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화재 지역이 워낙 광범위해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알바로 호르마사발 국가재난예방대응청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칠레 전역에서 161건의 화재가 발생했다”며 “현재 102건은 진압을 완료했고 나머지 40건은 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9건은 관찰 단계”라고 설명했다.

칠레 당국은 접수된 161건 화재 가운데 비냐델마르 라스타블라스 지역은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전날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불을 냈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CNN은 “경찰이 남성 1명을 붙잡았다”고 보도했는데, 칠레 중부 탈카시에 있는 집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 인근 초원에 불똥이 튄 것으로 전해졌다.

최악의 참사에 칠레 전역은 슬픔에 잠겼다. 보리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525명이 사망한 2010년 2월 규모 8.8 강진과 쓰나미를 언급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2010년 참사 이후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희생차 추모를 위해 5일과 6일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화재 피해 지역에 살고 있는 카스트로 바스케스는 NYT에 “핵폭탄이 터지는 줄 알았다”며 “집을 포함해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기후 변화가 이번 화재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디언은 “이번 산불은 칠레 중부 지역에서 기록적인 고온 현상이 일주일째 계속되는 와중에 발생했다”고 전했다. NYT도 “엘니뇨로 알려진 이상 기후로 남아메리카 대륙이 뜨겁게 달아올라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며 “칠레뿐 아니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도 산불과 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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