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완화되면 수도권 전월세 매물 많아질까?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제도를 손보는 방안이 21대 국회 폐회를 앞두고 여야 막판 협상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1월 정부가 주택 수요자 불편 해소와 거래 활성화를 위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무려 1년여 만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주택법 개정안)에 반대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을 현행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가능일로부터 3년 이내’로 변경하는 방안으로 2월 내 국회 본회의 처리를 추진하기로 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민주당 방안대로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이 바뀔 경우 당장 입주를 앞둔 계약자들이 전세를 주고 잔금을 치르는 게 가능해지면서, 해당 아파트 단지에서 전월세 물건이 나오는 등 시장에 끼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2대 국회 막판 여야 극적 합의?
그동안 정부·여당은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 폐지를 주장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반대하면서 여야 간 논의가 공전을 거듭해왔다.
야당 반대가 완강하자, 국민의힘은 지난해 말 ‘주택 매각 전까지만 실거주 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을 타협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입주 때부터 실거주해야 하는 의무를 없애는 대신 주택 매각 전 시기에 관계없이 실거주 의무를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방안이다. 이를 민주당 방안과 비교하면, 실거주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계약자가 최초 입주 가능일에 입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통점은 갖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는 2021년 2월19일 이후에 분양된 단지부터 적용됐다. 당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재도입하면서 실수요자를 보호하고 이른바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입)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제도다.
이후 실거주 의무가 적용돼 분양된 아파트 단지는 약 73곳, 4만8천여가구에 이른다. 이들 아파트 일반분양 계약자는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간 실거주를 해야 하며, 이를 어기고 실거주한 것처럼 속이다 적발되면 최대 징역 1년 또는 1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해당 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최초 분양가에 은행 이자만 합산한 가격으로 매각해야 한다.
올해 11월 입주 둔촌주공, 숨통 트이나?
올해 11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포레온)은 실거주 의무 개선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인 단지다. 정부가 지난해 ‘1·3 대책’을 통해 거주 의무 폐지 방침을 발표한 시점이 바로 둔촌주공 일반분양 계약일(1월3~17일) 첫날이어서 당시 시장에선 정부 조처가 레고랜드 사태 이후 미분양 위기에 놓인 ‘둔촌주공 살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정부 조처 덕분에 둔촌주공 계약률은 시장의 예상보다 높은 81.1%에 이르렀고, 3월에 실시된 잔여가구(전용면적 29~49㎡)에 대한 무순위 청약에선 899가구에 4만1540명이 청약을 해, 평균 경쟁률 46.2대 1을 기록했다.
둔촌주공의 경우, 청약 일정이 진행됐던 2022년 12월 당시에는 일반분양 청약자들이 실거주 의무를 인지하고 분양에 참여했다. 이같은 실수요자들은 올해 11월 입주 때 실거주 의무가 그대로 적용돼도 불이익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실거주 의무가 최초 입주가능일로부터 3년간 유예된다고 하면, 자금 마련 등이 어려운 계약자들이 전세를 놔 잔금을 치를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다.
이에 반해 정부 발표 뒤인 지난해 3월 둔촌주공 잔여가구를 무순위로 분양받은 소형주택(899가구) 계약자들은 실거주 의무가 폐지될 것으로 믿고 투자 목적으로 분양받은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사정이 좀 다르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이들은 민주당 방안대로 해도 입주 후 3년 내 소형주택에 직접 거주해야 하는 의무가 여전히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거주 3년 유예하면 전세 매물 나올까?
시장에서는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가 최초 입주가능일로터 3년간 유예된다면, 입주를 앞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전·월세 물건이 나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아파트 전월세 매물이 나오면 전·월세시장 안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이 달 말 입주 예정인 서울 강동구 ‘e편한세상 고덕강일 어반브릿지’는 최근 ‘실거주 3년 유예’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집주인들이 전세를 놓겠다는 급매물이 현지 중개사무소에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전세 수요가 많은 서울시내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선 통상 일반분양 물량보다 조합원에게 공급된 주택의 수가 더 많고, 조합원 주택은 실거주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전세물건 증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아파트 분양 당시 조정대상지역이었던 곳에서는 실거주 의무와 관계없이 집주인이 2년간 거주 요건을 채워야 ‘1세대 1주택 비과세’를 받을 수 있어, 통상 최초 입주 개시일로부터 2년간은 전세 물건이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방안대로 실거주 의무 3년간 유예가 적용돼 집주인이 입주 시점에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2년 뒤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려 할 경우 집주인과 마찰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집주인이 직접 주택에 거주하려고 하는 때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어, 2년간 임대를 내주었던 집주인이 임대차법 때문에 실거주 의무를 못지키는 상황은 빚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국회가 실거주 의무 폐지와 존속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 최초 입주가능일로부터 3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처리한다면, 입주를 앞둔 계약자들에게는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상황”이라며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경기권 공공택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세 매물이 늘어나는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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