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없어요" 응급 환자도 '퇴짜'…소아과 붕괴, 내년이 더 문제다

정심교 기자 2024. 2.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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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레지던트 53명 지원, 전년보다 20명 늘어
하지만 정원은 205명으로 지원율 25.9%…'꼴찌'
정부 "지원자 증가에 주목" vs 아동병원들 "의미 없어"

소아청소년과 붕괴 속도가 빨라지면서 '어린이 환자 떠넘기기'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3차 병원인 상급종합병원(주로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중증 또는 응급상황의 소아 환자가 입원을 거부당해 2차 병원인 아동병원에 '거꾸로' 떠넘겨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이 줄줄이 퇴사하고, 전공의 '씨'가 마르면서다. 전국 120여 곳의 아동병원은 "정작 대학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소아 응급·중증 환자가 퇴짜 맞고 아동병원에 실려 오는 사례가 끊이질 않는다"며 "의료사고에 대한 위험·부담감이 큰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보상해줄까"라고 한숨을 깊게 내쉰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은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국립대병원의 소아 응급·중증 환자 의료 체계가 '작동 불능 상태'다. 주니어 스태프들(전임의·조교수·부교수 정도를 아우르는 말)이 다 관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 대학병원에서 한창 일할 시기인 젊은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그만두고 있다. 속된 말로 '껍질만 남은 상태'"라며 "국립대학병원 사정이 이렇다 되니 응급·중증 소아 환자가 아동병원에 떠넘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병원들 "생후 1개월 환아도 119가 실어와"
실제로 각 지역 아동병원의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다. 한 아동병원장은 "보낼 곳이 없는데 설상가상 119구급대가 아예 아동병원만 찾는다. 대학병원에서 소아 환자를 받아주지 않아서라고 한다"며 "어쩔 수 없이 부담감을 떠안은 채 사명감으로 소아 환자를 보고 있는데 겁이 많이 난다. 이러다 잘못되면 누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아동병원장은 "사명감으로만 버티기에는 너무 힘들다. 119가 아동병원에 소아 환자를 내려놓고 가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생후 16일, 18일, 1개월 된 환아도 대학병원에서 소아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로 받지 못해, 119구급대가 이들을 아동병원에 실어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그는 "아동병원은 대학병원 수준의 시설을 갖추지 못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그런 소아 환자를 치료하다 상태가 나빠지거나 잘못되면 법적으로 보호 받지도 못한다"며 "그냥 진료만 열심히 보고 싶은데 이딴 식으로 놓고 가면 우리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소아청소년과의 의사 수 부족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 걸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제출받은 과목별 전공의(1~4년 차) 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간(2014~2023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현원이 536명 줄어 5개 필수과목(소아청소년과·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중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필수과목 전공의는 2014년 2543명에서 2023년 1933명으로 610명(24% 감소) 줄었는데, 줄어든 인원 중 소아과 전공의가 무려 87.9%(536명)에 달한 것이다.

신현영 의원은 "지난 10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가 급감한 현상이 '소아과 오픈런' 등 진료 대란의 결과로 이어져 국민들께서 오롯이 그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역의료·필수의료 유인 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의대 정원 확대는 인기영합주의 유명무실한 정책으로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도 상반기 전공의(레지던트)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모집 정원 205명에 53명이 지원했는데, 1년 전인 2023년 상반기엔 모집 정원 203명 중 33명이 지원했다. 지원자 수만 놓고 보면 전년보다 지원자가 20명(9.6%) 많아지긴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증가한 건 소아 의료체계 강화를 위한 노력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원율'은 25.9%로 전체 과목 중 '꼴찌'였다. 이에 최용재 아동병원협회장은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약 10% 늘었다고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현재 소아 환자들에게 중요한 건 전공의 지원자 수보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의 인원"이라고 꼬집었다.
최용재(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 대한아동병원협회장은 소아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장기 대책을 제시했다. /사진=대한아동병원협회
현 전공의 졸업하면 중증·응급환아 치료 공백 현실화
들어오는 전공의는 크게 부족한데, 나가는 전공의는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분위기다. 최 회장에 따르면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상당수인 4년 차가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면서 전공의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면 3~4년 차 전공의가 다 같이 졸업한다는 것. 최 회장은 "현재 4년 차는 지원자가 꽤 많던 시기의 마지막 세대"라며 "지금 3년 차가 시작할 때 지원자가 크게 줄었고 그 이후(지금 1~2년 차)는 전공의가 아예 없는 병원이 속속 생겨났다"고 밝혔다. 대학병원에 소청과 전공의가 없으면 중증·응급 소아환자의 입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입원 환자 특성상 24시간 지켜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전공의가 당직 근무를 서야 해서다.

그러면서 "주니어 스태프들은 얼마나 무섭겠나? 자기들이 병원에 남아 있다가는 소아 중환자들이 들이닥쳤을 때 환자를 지켜줄 사람이 자기말고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그들에겐 지금이 도망쳐야 하는 순간일 수 있다. 그야말로 '소청과 레지던트 전무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소아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장기 대책을 제시했다. 단기 대책으로는 △전국 120여 곳 아동병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중증 환자, 경증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상급종합병원에 소청과 전공의(레지던트)가 부족해 응급실을 운영하기 어려운 곳에 인건비를 지원해 인력을 보충할 것 △응급시설을 늘리려 하지 말고 인력을 늘릴 것 등이다.

장기 대책으로는 △소청과 전문의들의 진료 수입을 보장할 것 △생명을 살리는 의사, 위험성이 큰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에 합당한 대우를 할 것 △근무 태만이나 고의가 아닌 의료 사고에 대해 국가적 보상시스템을 마련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을 제시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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