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편지]뇌전증 방치하며 저출산 해결, 필수의료 지원 주장?
2024년 02월 05일ㆍ1608번째 편지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며칠 전부터 나오는 기사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신문에서는 오늘(2월 5일), 어떤 곳에서는 다음주 월요일(2월 12일)을 '세계 뇌전증의 날'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날이 모두 '뇌전증의 날'일 리는 없고···.
정확히는 12일입니다. 국제뇌전증협회와 국제뇌전증퇴치연맹 등이 2월 둘째 월요일을 '뇌전증의 날'로 정했는데, 언젠가 국내에서 2월 둘째 주 월요일로 잘못 알려지면서 혼선이 온 것입니다. 올해에는 12일이 설 연휴 마지막이어서 일부 병원과 단체에서는 오늘 행사를 벌이기도 합니다.
뇌전증은 한때 간질이라고 불렸던 병이죠? 간질(癎疾)은 '경련을 일으키는 병'이란 뜻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의서 《오십이병방》에 경련을 뜻하는 간(癎)에 대한 증세가 나오고, 송나라 의서들에서부터 간질(癎疾)이라는 병명이 보입니다. 이름 자체엔 나쁜 뜻이 없지만, 온갖 편견과 미신이 덧칠돼 있어 한국간질협회, 대한간질학회 등이 백방으로 노력해 이름을 바꿨지요.
뇌전증의 영어는 'Epilepsy'인데, '위에서 (영혼이) 사로잡히다'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우리의 새 용어는 '전기 흐름으로 기능을 하는 뇌에 장애가 왔다'는 뜻인데, 영어 이름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잘 지은 듯합니다. 부정맥이 심장 전기 시스템에 장애가 온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뇌전증에 대해선 아직도 편견 때문에 환자의 90%가 자신의 병을 숨기고 지내야만 합니다.
대표적 편견이 뇌전증은 가족내림 유전병이라는 것인데, 그런 경우도 있지만 분만 때의 뇌손상, 감염, 외상 등도 원인이고 성인이 돼서 뇌졸중, 뇌종양, 외상, 감염 등의 2차 증세로도 생깁니다. 서양에선 나폴레옹, 빈센트 반 고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블라디미르 레닌 등이 뇌전증이었으며 캐나다의 포크 가수 닐 영과 그의 딸, 미국 가수 프린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손녀 마고 헤밍웨이 등도 이 병과 싸웠다고 합니다. 뇌전증을 갖고도 충분히 중요한 업적을 낼 수 있는 반면, 뇌전증 환자에게 손가락질하던 그 누구도 뇌전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국내에선 환자가 약 36만~5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70%는 잘 치료받아 생활에 이상이 없으며, 발작이 심한 환자도 1년에 15분 정도를 넘지 않는데,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심근경색이나 부정맥은 자동 제세동기나 심폐소생술(CPR)의 보급으로 희생자를 줄이고 있는데, 뇌전증 환자가 발작했을 때 도와주는 방법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깜깜이'입니다. 주위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옆으로 눕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입에 무엇을 물리거나 CPR을 해서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뇌전증 환자와 가족에겐 지금이 위기입니다. 고가의 신약은 보험에 제한을 받고 있거나 아예 시판되지도 못합니다. 심지어 국내 제약사 SK바이오팜이 개발한 약도 외국에서는 호평 속에서 팔리고 있는데, 국내에선 시판이 하세월입니다. 거꾸로 기존의 치료제는 지나치게 저가여서 제약회사들이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최근엔 뇌내시경수술로 좋은 효과를 보고 있는데 장비 회사들이 한국에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뇌전증 치료를 담당하는 소아신경과, 신경과, 신경외과 의사가 격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뇌전증협회와 대한뇌전증학회 등은 몇 년 전부터 뇌전증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병으로 규정한 세계보건기구(WHO)의 2015년 결정과 2022년 세계보건기구총회(WHA)의 만장일치 결의안 등 국제 흐름에 맞춰 특별법을 제정하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희귀질환관리법이나 장애인복지법으로 충분하다고 해명하는데, 여기 해당하는 환자는 전체의 1% 미만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환자들의 치료, 교육, 차별과 뇌전증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 진료에의 지원은 이제 미룰 일이 아닙니다.
뇌전증 환자 및 관련 단체들은 올해 '뇌전증의 날' 사흘 뒤인 15일 국회에서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 통과를 위한 공청회를 연다고 합니다. 20대 국회에서 김세연 의원, 21대엔 남인순, 강기윤 의원이 법안을 상정했는데 이번에는 제발 처리하기를 빕니다. 총선 두 달 앞이라고 미루지 마시고···.
뇌전증은 한때 간질 외에 '전간(癲癎)'으로도 불렸는데, 이것의 일본어가 '덴칸(てんかん)'이고,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는 것을 '땡깡부리다'고 하는 게 여기에서 왔습니다. 코메디닷컴에서 여러 각도로 분석한 결과, 뇌전증의 국가적 범사회적 관리에 맞서는 것은 '땡깡'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저희 코메디닷컴은 뇌전증에 대해 전력을 다해 진실과 현황을 보도하겠습니다. 환자와 가족의 눈물을 방치하며 저출산 대책을 얘기하는 것, 이들과 동고동락하는 의료진의 목소리에 귀닫으며 필수의료 지원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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