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디알로고] 개교 30년 만에 신흥대학 세계 1위 “나는 ‘아시아 최고 대학’ 꿈을 파는 사람”
“중국 대학들이 교수 빼가려 해도 실패
돈보다 연구시설, 연구문화 앞선 탓
박사후 연구원 유치하려 파격적 대우도
대학 자체 수익원 만들어 자율성 확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인 ‘타임스 고등교육(THE)’은 지난해 7월 개교 50년 이하 세계 신흥대학 평가에서 싱가포르 난양공대(NTU)가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포스텍이 각각 10위, 14위를 기록했다. 난양공대는 1991년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모델로 설립된 이공계 대학이다. 그보다 20년 먼저 개교한 KAIST는 신흥대학 기준 마지막 해인 2021년 THE 평가에서 4위를 차지했는데, 그해 1위도 난양공대였다.
난양공대는 이미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는 난양공대가 세계 공대 평가에서 14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칭화대(9위)를 이어 2위였다. 네이처지가 2020년 처음 발표한 신흥대학 평가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 1위인 중국과학원대가 6개 도시에 있는 연합 대학인 점을 고려하면 단일 대학으로는 단연 세계 1위인 셈이다.
인구가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 대학이 어떻게 30년 만에 세계 경제 대국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호텍화(Ho Teck Hua·63) 난양공대 총장은 지난달 24일 싱가포르에서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준 결과”라며 “중국이 우리 교수를 빼가려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난양공대의 뛰어난 연구 조건은 돈을 많이 준다고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호 총장은 싱가포르국립대(NUS) 수석 부총장을 지내다 지난해 2월 난양공대 제5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우수 교수 유치하려면 협업 문화가 필수”
–난양공대는 이제 세계 최고 대학들과 경쟁하는 위치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최근 해외에서 인력을 빼가려는 시도가 많다고 들었다.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경제적 보상을 잘해줘야 한다. 두 번째는 세계적인 연구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은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연구 문화이다. 최근 정치적 혼란으로 홍콩에서 외국인 교수들이 많이 빠져나가자 그곳 대학들이 우리 교수들에게 5년간 엄청난 돈을 약속하며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도 단기간에 그치고 다른 두 조건은 충족하지 못했다. 난양공대 교수들은 별 영향이 없었다.”
–연구 문화가 어떻길래 교수들이 돈에도 흔들리지 않는가.
“대표적인 예가 우리 학교에 유치하고 싶은 교수가 있으면 해외에 있을 때부터 싱가포르 연구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난양공대에 오기 전부터 우리 교수들과 같이 연구하면서 서로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에 오려는 한국 교수들도 이렇게 연구비 신청을 많이 한다.”
–그래도 최근에 난양공대에서 다른 나라로 자리를 옮긴 교수도 있지 않나.
“지난 2년 동안 홍콩으로 빠져나간 교수가 2명 있다. 그들은 상위 10%가 아니라 30%에 해당하는 연구자였다. 최상위 연구자가 아니어서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았다. 그보다 더 젊고 유망한 연구자들이 들어오면 된다. 우리는 가치관이 맞는 사람을 원하지, 무조건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사람은 잡지 않는다.”
◇”박사 연구원에게 전폭적 지원, 교수 선택권도”
–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높이려면 교수와 함께 우수한 박사후연구원(post doctoral researcher·포스닥)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난양공대가 이 점에서 특히 성과를 거뒀다고 들었다.
“좋은 연구중심대학이 되려면 포스닥이 중요하다는 것은 100% 맞는 말이다. 난양공대는 2018년부터 ‘총장 포스닥 펠로십’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이 2년 간 포스닥 연구원에게 연봉을 8만싱가포르달러(7975만원)씩 제공하고, 첫해에는 10만싱가포르달러(9900만원)의 별도 연구비도 지원한다. 프로그램을 실시하자마자 우수 논문이 급증하는 획기적인 도약이 일어났다.”
–뛰어난 박사급 연구원을 유치하려면 경제적 유인책 외에 다른 노력도 필요하지 않나.
“세계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최고 수준의 교수들을 유치하는 것이다. 대학원생이나 박사급 연구원들은 인터넷에서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세계적인 학술지에 낸 논문의 저자들이 어느 대학에 있는지 검색한다. 나도 그렇게 지도 교수를 찾았다.”
–포스닥과 교수를 연결하는 방법도 남다르다고 들었다.
“다른 대학에서는 교수가 같이 일할 포스닥을 선발하지만, 우리 포스닥 프로그램에서는 거꾸로 포스닥이 지도 교수를 선택한다. 뛰어난 교수진을 확보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목표는 박사급 연구원이 난양공대에 와서 연구 시설과 문화를 접하고 결국 우리 대학 교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평생교육이 대학의 주요 역할 될 것”
–싱가포르와 한국 모두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신입생이 줄고 있다. 난양공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좋은 질문이다. 싱가포르의 전통적인 학부 교육 모델은 남학생이라면 한국과 같이 4년 배우고 2년 군대를 다녀와서 취업하는 것이다. 과거엔 24~25세에 취업해서 30년 한 직장에서 일하다가 55세에 은퇴했다. 지금은 다르다. 은퇴 나이가 70세로 늘면서 45년 일하고, 그 사이 직장도 8~9번 옮긴다. 당연히 대학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일하는 기간과 직업의 종류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교육해야 한다는 말인가.
“30년 일하던 시대에 4년 대학 교육을 했다면, 45년 직장 근무라면 산술적으로 6년은 배워야 한다. 기술 발전에 발맞추기 위해 2년 더 대학에서 새로운 직업에 맞는 교육을 받는 것이다. 엔지니어로 사회에 나갔다가 기술 컨설턴트로 이직하려고 다시 대학에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교육하는 것이다. 앞으로 일반 학부생과 재교육 학생 비율을 6 대 4로 맞출 계획이다. 재교육 석사과정은 대학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직업에 맞는 능력을 키우려면 교육 프로그램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 기술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 대응하기 힘들 텐데.
“대학 교과과정은 기초 과목과 전공과목, 관심사 과목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이 다양한 직업이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다시 대학에 온 학생은 기초 과목보다 전공, 관심사 과목을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대학 곳곳이 세계적 기업들의 기술 시험장
–싱가포르는 기업 친화적인 국가로 유명하다. 난양공대 역시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들었다.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이 기업에서 발전하도록 어떤 지원을 하나.
“대학의 발명을 사업화하는 전략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대기업이 장기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난양공대는 롤스로이스, 휴렛팩커드(HP), 알리바바, 현대자동차를 포함해 200여 기업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 연구비로 우수 교수를 유치하고 그 결과가 싱가포르와 기업 모두에 이익이 돌아간다.
두 번째는 특허 같은 지식재산권(IP)을 직접 창출하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난양공대는 2000여건 이상의 지식재산권을 출원했다. 이를 기업에 이전한다. 마지막으로 교수와 학생들이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을 만든다. 대학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총장 말대로 난양공대는 대학 전체가 전 세계 기업들의 기술 시험장이 됐다. 영국 롤스로이스는 전 세계 29개 대학과 협력하는데 난양공대 연구소가 가장 규모가 크다. 공대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기술 이전에서도 성과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글로벌 학술정보 기관인 클래리베이트는 전 세계 100대 혁신기업과의 기술 이전 건수에서 난양공대가 7위였다고 발표했다. 앞선 순위는 모두 미국과 중국의 연구기관들이었다.
–지식재산권이 사업화되면 교수는 어떤 보상을 받나. 교수나 연구원이 다른 곳보다 보상을 많이 받나.
“정부와 대학, 발명자가 3분의 1씩 보상을 받는다. 다른 곳보다 발명자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국가 차원에서 대학의 지식재산권이 사업화돼서 기업이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최근 기술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세계 최고 대학들과 경쟁하는 공대로서 어떤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
“우리가 아주 잘 하는 분야는 우선 지속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에너지 전환과 자원 순환 기술에서 여러 스타트업들이 나왔다. 난양공대는 재료과학 분야에서도 아시아 1위로 평가받았다. 지능형 모빌리티(운송수단)도 중요하다. 한국의 현대차와 많은 협력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과 데이터과학이다. 최근 논문 피인용 횟수가 10만회를 넘는 세계적인 AI 과학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곧 발표할 예정이다.”
–언급한 기술들은 다른 대학들도 모두 관심을 보이는 분야들이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제조업 기반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들을 아시아 환경에 맞게 현지화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싱가포르에서 기술 표준을 만들어 인구가 많은 베트남과 태국, 인도네시아로 확장하는 식이다. 제조업 기반이 없다는 지적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주한 기업 연구소들이 기술을 시험해 상용화에 큰 도움을 준다. 내수 시장이 작다는 한계도 중국의 광저우와 산둥 지방의 협력업체들과 손잡고 극복하고 있다. 기술 개발과 시험, 상용화에서 시장까지 모두 확보한 것이다.”
◇”대학 스스로 재정 확보해서 자율성 높여야”
–난양공대는 한국의 KAIST를 모델로 삼아 설립됐는데 30년 만에 세계에서 더 인정받는 대학이 됐다. 비결은 무엇인가.
“난양공대가 세계 수준의 공대로 발돋움하면서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와 인재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나는 우수한 연구자들이 싱가포르에 올 수밖에 없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그것은 바로 돈보다 아시아 최고 대학을 만드는 꿈이다. 목적이 있으면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옳은 일을 하면 더는 돈을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우수한 교수들을 유치해 급성장했다. KAIST도 역량이 있지만 아시아 1위가 되려면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해야 하는데 아직은 언어의 제약이 있다.”
–대학이 발전하려면 재정적 지원도 중요하다.
“난양공대는 국립대학이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지금은 정부 보조금과 학생 등록금을 합해 7억싱가포르달러(6978억원) 정도이다. 학교는 최근 재교육 석사과정을 통해 2억싱가포르달러(1993억원)라는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었다. 이를 앞으로 5억싱가포르달러(4984억원)까지 늘리고 싶다. 현재 대학 예산 중 정부 보조 같은 외부 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85%인데 장기적으로 60%, 40%로 낮추고 싶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앞서 조선비즈 인터뷰에서 후발 주자인 난양공대가 KAIST를 앞선 이유를 묻자 “정부가 대학에 돈을 몰아주고 간섭을 안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난양공대가 자체적으로 평생교육을 확대해 수익원을 창출한 것도 정부가 간섭하지 않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처음으로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해 대학에서 난리가 났다. 싱가포르 정부도 난양공대에 대한 지원을 무한정 늘릴 수 없지 않나.
“싱가포르 정부는 대학에 기부한 금액에 대해 같거나 1.5배 규모로 매칭펀드(대응자금)를 지원한다. 지난해 5000만싱가포르달러(498억원)를 기부받고 정부에서 매칭펀드로 7500만싱가포르달러(747억원)를 받았다. 목표는 1년에 1억싱가포르달러(996억원) 이상을 모금해 정부 매칭펀드까지 2억5000만싱가포르달러(2492억원)를 조성하는 것이다. 나는 난양공대의 꿈을 팔아 전 세계 기업들에서 기부금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평균적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한다. MIT가 엄청난 기부금을 받은 이유는 세계 최고 대학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이 난양공대가 아시아 최고 대학이라고 자랑스러워하면서 기부하기를 바란다.”
☞호텍화(Ho Teck Hua)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제5대 총장 겸 석좌교수인 인공지능(AI) 전문가이다. 인공지능 싱가포르(AISG)의 창립 회장과 싱가포르 공학한림원장도 맡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전기공학과를 수석 졸업해 대학원에서 컴퓨터와 정보과학을 전공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으로 유학을 가서 의사결정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과 와튼스쿨 교수를 거쳐 2015년 싱가포르국립대(NUS) 교수로 부임해 지난해까지 연구부총장, 수석부총장을 역임했다. 2017년에는 싱가포르의 국가 AI 연구개발 프로그램인 AISG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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