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투어'가 아이돌그룹·'나PD 예능' 시너지 못 낸 이유 [K컬처 탐구생활]

2024. 2. 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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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영석 '나나투어'로 본 K팝 아이돌과 대중성의 딜레마
완전체 서사 단단한 K팝 아이돌그룹과 제작진 중심 TV 예능 부조화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윤하와 복길이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예능프로그램 '나나투어'에서 세븐틴 멤버들이 제작진 얘기를 듣고 웃고 있다. tvN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첫 공개된 tvN 예능프로그램 ‘나나투어’는 상반기 방송가 기대작이었다. 예능계를 대표하는 나영석 PD와 K팝의 간판 그룹 세븐틴의 만남. ‘대중’이 택한 예능 PD와 강력한 팬덤과 뛰어난 예능감으로 유명한 아이돌. 한자리에 모일 일이 거의 없는 두 마리 사자가 같은 세계관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프로그램에 주목할 이유는 충분했다. 여기에 최대 5,000만 회에 육박하는 폭발적 조회수로 나PD가 연출한 ‘출장 십오야’ 최대 아웃풋을 낸 ‘하이브 야유회 특집’에서 시작된 프로그램 탄생 비화까지. 요즘 말로 ‘다 가지고 태어난’ 프로그램으로 여겨졌던 게 ‘나나투어’였다.

기대가 너무 높았을까. '나나투어'는 공개 후 안방극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대로 출발한 시청률은 최근 1%대로 떨어졌다. '1박 2일’을 시작으로 그간 '꽃보다'·'윤식당' 시리즈, ‘신서유기’, ‘뿅뿅 지구 오락실’ 등으로 승승장구했던 나 PD의 전적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꽃보다' 시리즈에서 보여준 여행 리얼 버라이어티의 답습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일각에선 K팝 아이돌 그룹을 섭외한 게 나 PD의 '무리수'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회당 수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월드 투어를 열어도, K팝 아이돌 그룹은 TV 예능으로 다루기엔 비대중적이라는 방송 업계의 오랜 인식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특정 팬덤만 좋아하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고 보는 탓이다.

예능프로그램 '나나투어'는 K팝 간판 그룹 세븐틴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다룬다. tvN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물론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시청률은 기대를 밑돌았지만, 온라인 반응은 좋았다. 세븐틴이 속한 하이브에서 운영하는 팬 플랫폼 위버스에 올라온 '나나투어' 콘텐츠 누적 조회수는 1억 건을 훌쩍 넘어섰다. CJ ENM 스튜디오 산하 제작사 에그이즈커밍과 하이브가 함께 제작한 데 대해 'TV와 뉴 미디어인 팬덤 플랫폼을 모두 활용한 새로운 예능 실험'이란 평가도 이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나투어’의 예능 실험이 성공으로 기록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긍정적 결과는 대부분 세븐틴이 가진 팬덤의 힘을 기반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나나투어’가 위버스에서 올렸다는 역대 세븐틴 VOD(주문형 비디오) 판매량 1위 기록도 프로그램의 인기보다는 편집된 방송본이 아닌 풀 버전을 따로 제작해 팬 플랫폼에 유료로 판매해 얻은 성과였다.

나영석(오른쪽 여섯 번째)PD와 예능프로그램 '나나투어'를 함께한 그룹 세븐틴. 뉴스1

나PD와 세븐틴이 충분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시너지를 내지 못한 건, 각자의 영역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지 못한 탓이 커 보인다. TV 예능 프로그램은 PD를 중심으로 제작된다. 지금까지 나 PD가 연출해 온 프로그램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자. 여행, 식당, 해외, 게임 등 제작진이 세운 프로그램의 뚜렷한 골조 아래 서로 어울릴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PD '픽' 출연자들이 각자의 위치에 선다.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된 설정과 시나리오 속 출연자들 사이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순간 시청률 그래프도 상승 곡선을 그린다. 다양한 출연자들의 화학작용을 예측하고 조직하고 그들이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판을 촘촘히 까는 것 모두 PD를 주축으로 한 제작진의 기술 영역이다.

아이돌 그룹 콘텐츠의 역학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아이돌 그룹은 이미 그룹 안에 그들만의 서사를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데뷔 9년 차로 '아이돌계의 ‘무한도전''이라고 불리는 자체 예능프로그램 ‘고잉세븐틴’을 보유한 세븐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들은 이미 세븐틴만으로 견고하게 완성된 서사를 가지고 있다. 해당 서사의 단순 활용을 넘어 이를 뿌리로 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건 평범한 새 프로그램 기획안보다 몇 배 이상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흐릿한 이해 속에서 ‘나나투어’는 나 PD 프로그램 특유의 허허실실한 감동과 재미, 세븐틴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 그 어떤 것도 살리지 못했다. 다만 ‘나나투어’가 ‘나영석도 어쩔 수 없네'라는 말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여전히 뜨겁고 매력적인 대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요리할 줄 아는 새로운 예능의 탄생을 이끄는 촉진제로 작용하길 바란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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