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코앞인데" 오리무중 선거구에 지역민들 분통

김진영 2024. 2. 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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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총선 코앞 다가왔는데
선거구 획정 지연에 혼란 가중
지역민들 "참정권 박탈" 분통
예비후보자 "어떻게 표밭 다지나"
전문가 "유명무실 선거법 손봐야"
전남 순천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서동용·소병철 의원 등이 국회에서 선거구 획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지역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지지 정당이 공천해 주는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답답합니다."

전북 김제시에 거주하는 조상식(60)씨는 요즘만큼 정치인들에게 환멸감이 느껴지는 때가 없다. 인구 183만 명의 전북은 지역구가 10개인데, 지난해 12월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9석을 권고한 상태다. 선거구 완전해체 후 재건축해야 할 수준이다. 현재 부안군과 같은 선거구로 묶여 있는 김제시는 이번 총선에서 완주군·임실군과 합쳐질 예정이지만 아직도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았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6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가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하면서 유권자들과 후보들이 느끼는 혼란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략적 유불리를 따지느라 선거구를 선거 목전에야 획정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막기 위해 획기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선거법 있으나마나…'또' 늦장 획정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안 의결 일지

1일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에 따르면 획정위가 이번 총선에서 선거구 조정을 권고한 지역구는 80곳에 달한다. 상한선을 넘어서 분구가 이뤄지는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21곳의 선거구가 통합되고 14곳에선 구역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는 선거일 15개월 전 인구를 기준으로 획정한다.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구와 가장 적은 지역구의 인구 편차 허용 범위는 2대 1이다. 선거구 하한 인구는 13만6,600명, 상한 인구는 27만3,200명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년 전까지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선거구는 결정되지 않았다. 국회는 상습적으로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선거일 전 1년’이라는 법정 기한이 정해진 제19대 총선 때부터 선거 42일 전에 정해졌고 20대 총선에도 42일 전에 선거구가 획정됐다. 21대 총선은 선거 35일 남기고서야 확정했다. 이번에도 국회 논의가 늦어지자 획정위는 세 차례나 "국민의 참정권이 보장되도록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지만 국회는 묵묵부답이다.


지역민들 '참정권 박탈' 호소..정치불신으로 이어져

국회의 임무 방기가 길어질수록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과거 전남 신안군과 함께 선거구가 묶였던 무안군의 경우 2016년 제20대 총선 때 생활권이 다른 영암군과 같은 선거구로 통합됐다. 이번에는 광주 생활권인 나주시·화순군과의 공통 선거구 재편을 권고받았다. 인구 9만 명인 무안군에 거주하는 정총무(59)씨는 "나주시의 인구(12만 명)가 압도적이어서 현 상황에선 나주시에서 출마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며 "권고안대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질 경우 무안군 목소리는 아예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우려했다. 총선에 임박해서야 선거구 획정 논의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정씨는 "인구가 줄어드는 건 수년 전부터 예측된 결과"라며 "국회는 도대체 4년 동안 뭘 했기에 이제와 선거구 획정을 논의한다는 것인지 황당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경북에선 울진군이 선거 때마다 같은 선거구를 이루는 지자체가 달라지는 혼란을 겪고 있다. 현재 영주·영양·봉화·울진 선거구에 속하는 울진군은 과거 영양·영덕·봉화·울진, 이번에는 '의성·청송·영덕·울진 선거구에 편입될 예정이다. 울진군 주민 노용극(55)씨는 “매번 총선 때마다 선거구가 달라져 출마자들은 물론 지지자들도 혼란스러운데 다음 총선 때는 또 안 바뀐다는 보장도 없어 걱정”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선거구가 획정돼 후보 옥석을 가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행정구역 개편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지역구도 있다. 현재 대구 동구갑 선거구는 지난해 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되면서 '동구군위군갑' 선거구로 명칭이 바뀌는데 실제로 군위는 포함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다. 실제 군위군이 편입되는 선거구는 '동구군위군을'이다. 대구 동구 주민 도재상(65)씨는 "동구갑 선거구는 군위군의 투표용지를 받지도 않는데 이름에 군위군이 있어 30년 넘게 근무한 공무원도 혼란스럽다"라며 "선출된 사람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만큼 '대구 동구갑', '군위군ㆍ대구 동구을'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지역 없는 선거구' 논란은 강원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춘천·철원·화천·양구갑’은 선거구가 춘천으로만 이뤄졌음에도 타 지역 명칭이 들어간다. 춘천시는 단독 선거구 요건을 갖췄으나, 주변 지역의 인구가 부족해 강원도 8석 유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철원, 화천, 양구와 묶인 채 갑·을 선거구로 분리됐다. 이번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춘천·철원·화천·양구갑 선거구에 거주하는 춘천시민 장문철(48)씨는 “자신이 투표해야 할 선거구가 어디인지 헷갈리기까지 한 기형적인 선거구는 유권자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며 “지역사회 바람대로 현재 8명인 강원지역 국회의원 수를 늘려 춘천 선거구를 두 개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은 인구 증가로 선거구 분구가 예정된 서구에서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서구는 현재 선거구가 갑·을 2개인데, 갑·을·병 3개로 늘릴 것을 권고받은 상태다. 예비 후보도 난립(1월 31일 기준 20명)하면서 유권자들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선거구가 획정위 권고대로 서구 원도심(갑)과 청라국제도시(을), 검단신도시(병)로 재편될 경우 갑에서 을로 바뀌는 청라에 거주하는 40대 박모씨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선거구조차 정해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라며 "정치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비후보는 "어떻게 표밭 다지나" 혼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선거구 통폐합이 예정된 선거구의 예비후보들 속은 바짝 타들어간다. 전남 영암·무안·신안 선거구에 출마 준비 중인 한 더불어민주당의 예비후보는 "시험 범위 없이 시험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선거구는 해남·영암·완도·진도 선거구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4개 선거구가 3개로 줄어들 것이라 예상되는 경기 부천시도 불확실성이 크다. 특히 지난해 말 선거구획정위안이 나온 이후 광역동을 없애고 일반구를 부활시키는 행정체제 개편이 이뤄지면서 1개 구(원미구)가 3개 선거구로 쪼개지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형편이다. 갑·을·병·정 4곳 중 상대적으로 변화 폭이 클 것이라 예상되는 갑 선거구의 예비후보로 등록한 정재현 전 부천시의원은 "4개 선거구 인구가 16만~25만 명 수준으로 모두 인구 하한선을 초과하는데도 불구하고 선거구가 줄어들게 돼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며 "선거구 획정까지 늦어져 어쩔 수 없이 기존 선거구에 맞춰 지역을 돌면서 획정안이 나오기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4개 선거구를 3개로 축소할 것을 권고받은 경기 안산시 선거구 출마자들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현재는 21대 총선 기준으로 4개 선거구에 예비후보 등록이 이뤄졌다. 국민의힘 소속 한 예비후보는 “현역 의원들은 의정보고회를 열어 지역민에게 다가설 수 있지만, 정치 신인은 그런 기회가 없어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선거구 획정마저 늦어져 신인들은 더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명무실 공직선거법 개정 필요"

전문가들은 유명무실해진 공직선거법에 대한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 의석수 배분 권한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 마련과 함께 법정시한까지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선거구 적용 시점을 차기 총선으로 미루는 등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행 선거법은 인구 비례성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으나, 지역 소멸로 인해 인구 감소 지역의 대표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점을 갖고 있다"며 "소멸 위기 지역 주민들의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농산어촌 지역에 대한 특례 조항 적용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공직선거법을 어겼다고 처벌을 할 수도 없어 현실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국회가 자성해 법을 지키거나 획정 시간을 지키지 않는 의원들을 뽑지 않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주=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목포=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대구= 류수현 기자 yvr@hankookilbo.com
인천=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안산=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춘천=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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