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투표소엔 나이 든 흑인뿐이었다… ‘대관식’ 바이든, 절반의 성공
열세 지역 공들였지만 기대 못 미친 투표율
청년층 열기 시들… 본선 세력 대결 먹구름
3일(현지시간) 오전 10시 30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주도 컬럼비아 시내 하이엇 공원 체육관. 집권당인 민주당 공식 대선 후보 경선 문을 처음 열어젖히는 역사적인 날이었지만 투표소는 한산했다. 진행요원까지 합쳐 체육관 안팎 여남은 명이 모두 흑인이었다.
비슷한 시간 인근 그린뷰 공원 투표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0여 분간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역시 흑인 일색이었고, 말 거는 족족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고 대답했다는 것도 두 곳이 같았다. 흑인 남성 노먼 무어(60)는 “선거일이 다가오면 투표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우리(흑인)에게는 (바이든 말고)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압승 안겨 준 ‘약속의 땅’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경선 투표에서 전체 표의 96.2%를 차지, 압승을 거뒀다. 나머지 후보인 진보 성향 작가 메리앤 윌리엄슨, 딘 필립스 민주당 하원의원(미네소타주)은 각각 2.1%, 1.7%를 얻는 데 그쳤다.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 유권자 10명 중 9명이 백인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죽을 쒔던 바이든 대통령에게 역전의 토대를 만들어준 곳이 사우스캐롤라이나였다. 이번 경선에서도 압도적 지지로 바이든 대통령을 밀어준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 비율은 26%에 이른다.
대선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이길 가망이 거의 없는 공화당 우세 지역임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공을 많이 들였다. 올 들어 직접 두 번 방문했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세 번 보냈다. 그의 관심사는 경선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흑인을 눌러앉힐 수 있을지였다. 전국 흑인 유권자를 상대로 메시지를 전하고 그 메시지가 통하는지 시험하는 게 바이든 캠프의 목적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끝까지 참여 독려, 그러나
득표율만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대관식’이 거행된 셈이지만, 투표율까지 따지면 ‘절반의 성공’이다. 애초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터줏대감인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 득표율이 70%만 넘으면 성공이라 했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투표 참여자 규모인 13만1,870명은 클라이번 의원이 바란 15만 명을 밑돌았다. 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맞붙은 2016년 당시 37만여 명, 바이든 대통령과 샌더스 의원이 경합한 2020년 53만여 명에도 한참 모자랐다.
물론 조건 영향도 있다. 대선 후보가 사실상 정해져 있었던 만큼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흑인 집단의 세대 분화
흑인 유권자의 세대 분화도 감지됐다. 2, 3일 이틀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난 흑인 중장년층과 청년층 간 세대 차이가 느껴졌다. 기성세대는 인종 차별을 해소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찰스턴 ‘국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박물관’에서 만난 흑인 여성 헤이즐 카를로스(77)는 “바이든이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레거시(유산)를 잘 이어 가고 있다”고 칭찬했다. 여전히 흑인 집단이 정책 대상일 필요가 있다는 게 전제였다.
그러나 청년층은 훨씬 개인적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해리스 부통령 유세장에서 만난 대학생 에이시아 리(20)는 “흑인을 위한 투표를 염두에 두고 투표소에 나가는 이가 우리 연령대에 많지는 않다”고 했다. 찰스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만난 전 연방정부 관료 테리 하워드(68)는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상당수가 학자금 빚이 있어서 탕감 정책이 불발된 데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유권자가 양극화한 상황에서 대결에 이기려면 핵심 지지자들을 결집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팽팽한 구도에서 전통적 지지층인 흑인 지지 세력이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컬럼버스·오렌지버그·찰스턴(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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