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이순신 담론’ 단상
일본인도 존경한 이순신, 역사 아닌 신화 경계해야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도 이제 막바지다. 이 영화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완결판이다. 때는 임진왜란 발발 7년이 흐른 1598년 11월 8일 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언에 따라 왜군은 철군을 서두른다. 이순신은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며 왜적을 섬멸하기로 한다. 동아시아 최대 해상전투 노량해전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이순신 3부작’의 첫 작품인 ‘명량’(2014)의 이순신이 용맹한 장수였다면, ‘한산: 용의 출현’(2022) 속 이순신은 지혜로운 장수로, 마지막 작품인 ‘노량’의 이순신은 ‘고독한 리더십’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노량’의 흥행 실적은 저조하다. 이순신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스포일러 때문일까. 500만 관객을 달성하기도 버거워보인다. ‘명량’이 무려 1760만 명을 동원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노량’에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 어떠하랴. 이미 ‘이순신 담론’은 다시 우리 곁으로 부활했다.
‘이순신 담론’을 요즘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이순신 장군 승전지 순례길 프로젝트’이다. 남해안 3개 시·도의 공통사업이다. 부산과 경남, 전남이 연계해 중앙부처에 건의한 이 프로젝트의 총사업비는 1조 원 이상이다. 기본구상은 기존 둘레길과 이순신 장군 승전지 순례길을 연결하는 것이다. 기존 둘레길은 코리아둘레길(남파랑길·부산 경남 전남 90개 코스 1463㎞), 백의종군로(경남 5개 시·군 161.5㎞), 이순신 둘레길(경남 6개 시·군 144㎞), 조선수군 재건로(전남 8개 시·군 500㎞) 등이 있다. 여기에 육상과 해상, 항공의 다중공간에서 접하는 신개념 순례길이 도입된다. 순례길 대상 시·군은 창원 진주 통영 사천 거제 고성 남해 하동 산청 합천 등 10곳이다. 오는 4월 이순신 장군 승전지 순례길 국회포럼이 열린다. 5월에는 남해안 3개 시·도의 이순신 장군 승전지 순례길 걷기 행사도 진행된다. 검토 대상 걷기 구간은 영화 ‘노량’의 배경인 경남 사천과 남해, 전남 순천과 여수, 부산 등지이다. 영화 ‘노량’이 열풍으로까지 이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남해안 3개 시·도가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순신 담론’은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됐을까. 아무래도 근대 이후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나을 듯하다. 먼저 단재 신채호가 이순신을 근대의 공간으로 불러들였다. ‘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전’이다. 그때는 사실상 일본에 국권을 잃은 시절. 1908년 5월 20일부터 8월 18일 자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했다. 300여 년 전 구국의 영웅을 소환했다.
이순신 담론은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기에 정점을 찍었다. 군정기 이후부터다. 국가 차원에서 ‘이순신 성웅화 사업’이 기획·완성됐다. 1962년 4월 28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417회 충무공 탄신기념 제전에 참석했다. 국가 원수급으로서는 처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침내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지시한다. 1967년에는 당시 공보부가 4월 28일을 ‘이충무공 탄신기념일’로 고시했다. 1973년에는 법정기념일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1975년 5월부터 1년간 국무회의 때 장관과 장성을 대상으로 역사학자의 ‘이순신 특강’을 듣게 했다. 전국의 학교마다 이순신 동상이 세워졌다. ‘말에서 떨어진 이순신’ 이야기도 등장했다. 이순신은 신화의 영역이 됐다.
영화도 이순신을 불러들인다. 유현목 감독이 1962년 ‘성웅 이순신’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이순신 역으로 김진규가 출연한 ‘성웅 이순신’(1971), ‘난중일기’(1978)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 이만큼 매력적인 역사적 인물도 드물다. 일본인마저 ‘세계 최고의 명장’으로 이순신에 매료되고 존경했다. 일제의 한 해군 장교가 청일전쟁 이전부터 이순신을 연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진해(지금의 창원시 진해구)에 주둔하던 해군 장병들이 통영 충렬사를 매년 참배하기도 했다. 이는 대체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오남용’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역사가 아닌, 신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일전쟁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의 ‘발언’이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돌아다닌다. 당시 해군 제독 도고가 러일전쟁 직후 만찬에서 했다는 그것. 바로 ‘나는 영국의 넬슨과는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순신에 비하면 하사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도고의 이 발언은 명확한 근거가 없다. 도고가 그렇게 말했다는 주장의 출처가 없다. 심지어 도고와 관련된 자료 어디에도 이런 ‘발언’은 보이지 않는다.
담론이 신화의 공간에서 확대재생산된 결과다. 국가주의가 이를 부추긴 탓이 크다. ‘좋은 게 좋은 것’은 아니다. 열풍과 과잉은 전혀 다른 말이다.
오광수 편집국 경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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