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법률안 거부권과 ‘마리 앙투아네트’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자 2024. 2. 5.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자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10개월 동안 무려 9개의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거부권 행사의 빈도와 그 내용을 살피면 우리 헌정질서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이미 대통령 배우자는 여권 인사에 의해서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되며 여러 권세가를 쩔쩔매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 의결을 거쳐 정부로 이송된 법률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말한다.

그런데 헌법상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기관이다(제66조 제4항). 따라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에 근거하고 있으나(제53조 제2항), 제한적·예외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으로 봐야 한다. 법률집행기관인 대통령이 법률안 그 자체를 거부하며 법률제정권자인 국회와 극단으로 대결하는 행태를 우리 헌법이 모범적·원칙적 상황으로 설계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라는 특별정족수를 충족하면서 ‘전과 같은 의결’을 해야만 비로소 해당 법률안을 법률로 확정할 수 있다(헌법 제53조 제4항). 이러한 법률 확정요건은 여야가 팽팽히 대립하는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는, 사실상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에 버금가는 매우 엄격한 잣대가 된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거부한 법률안 중 법률로 확정된 것은 전무하다. 따라서 현재 우리 헌법현실에서 법률안 거부권을 남발하는 것은, (졸속입법을 국회 스스로 재성찰케 하는 긍정적 계기를 유도하기보다는) 권력분립을 훼손하고 독재를 획책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소극적 입법권자로 대통령을 등극시켜, ‘행정권자인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법률 정립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구축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극히 삼가야 할 예외적·비상적 조치로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억제되어야 할 법률안 거부권을, 과감히 거듭 행사해 온 대통령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민주적 법치국가에서는, 그 누구도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다. 모든 통치기관은 민심을 두려워하며 법의 정신을 좇아 자신을 주권의 재물로 봉헌해야 한다. 설사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이 비합리적이고 배우자의 인권이나 자신의 권한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에 기대어 국회와 맞서는 것을 우선하면 안 된다.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과정과 정부의 집행과정을 통해서 법률의 비합리성이 교정·완화되도록 애쓰고, 필요하다면 위헌법률심판·권한쟁의심판 등과 같이 헌법이 예정한 원칙적·통상적·중립적 방법으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대의기관과 민심을 존중하는 것이며, 입법·행정·사법의 기능을 보장·분립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어이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을 거부코자 한다면, 대통령은 국회의 뜻을 헌법정신에 따라 받들기 어려운 형편과 부족한 자신의 집행 능력을 먼저 성찰·고백하고 법률안 거부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며 국회에 사과와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적 최소정의를 확인하는 데 급급한 사법관료의 법정이 아닌, 헌법적 최대정의를 독촉하는 주권적 법정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이는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대통령 마음대로가 아닌 ‘이의가 있을 때’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는 방식으로만 할 수 있음을 명백히 한 헌법 제53조 제2항의 취지를 통해서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헌법 제1조 제2항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다가온다. 법률은 무시하고(법률이 정한 특별감찰관은 임명치 않고) (배우자의 범죄 의혹을 규명하려는) 법률안을 거부한 대통령을, 농민·노동자 그리고 이태원의 영혼들과 손잡고 처단할 주권적 법정의 서막이 열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모든 것은 주권자의 인내에 달렸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