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제 경쟁력 높여라… 日의 담대한 ‘10조엔 대학 펀드’
역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29명 중 과학 분야는 총 25명으로 세계 5위다. 21세기 이후만 계산하면 19명으로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많다. 일본이 노벨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 세계 대학 순위는 매우 낮다. 2024 더타임즈 세계 대학 순위에서 100위 내 일본 대학은 도쿄대(29위)와 교토대(55위) 두 곳밖에 없다. 미국 대학들이 수십 곳인 것과 비교된다.
일본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일본 대학들이 뒤처졌다는 인식으로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담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바로 ‘10조엔(90조원)’이라는 대학 펀드를 만든 것이다. 이 펀드는 일본 대학들의 연구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보조금을 제공하는 걸 목표로 시작됐다. 미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풍부한 기금에서 오는 만큼, 일본 대학들에도 버금가는 지원을 하자는 취지다. 2020년 기준 일본 게이오대의 기부금은 870억엔(7830억원), 도쿄대 기부금은 190억엔(1710억원)에 불과했다. 하버드대(66조원)·예일대(55조원) 기부금 총액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기금이었다. 일본의 10조엔 펀드는 정부 예산으로 조성됐고 2021년부터 과학기술진흥기구(JST)가 금융기관 등에 운용을 위탁했다. 여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국제연구우수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을 지원한다. ‘국제연구우수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은 기금의 투자수익률에 따라 2024년부터 최대 25년간 연간 수천억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대학 실적은 6~10년마다 평가된다.
펀드의 운영수익 목표는 연간 3000억엔(2조7000억원)이었다. 하지만 JST 자료에 따르면 2023년 3월까지 첫 1년간 604억엔(5400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예상과 달리 험난한 출발을 했다. 기금의 운영수익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계획이기 때문에 대학을 안정적으로 지원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10조엔 펀드’는 대학 경쟁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운 계획인 것만은 틀림없다.
일본 정부는 젊은 연구자와 새로운 분야 연구를 지원하고 대학 개혁을 촉진하기 위해 10조엔 펀드를 설립했다. 펀드 지원을 받은 대학들이 더 나은 시설과 교원 보수, 연구 환경을 갖춰서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유치할 것으로 기대한다. 작년 4월까지 보조금을 받기 위해 국립대 8곳, 사립대 2곳이 지원했다. 문부과학성이 구성한 전문가 패널이 현장 조사와 서류 심사 등을 통해 평가했다. 최종 후보로 도쿄대, 교토대, 도호쿠대 등 3곳이 선정됐고, 이들을 대상으로 현장 실사를 한 결과 산학연계 활동이 활발한 도후쿠대가 대규모 정부 기금 지원 첫 번째 후보로 뽑혔다. 도후쿠대는 구조개편 등 전문가 패널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공식 지정될 예정이다.
일본의 10조엔 대학펀드는 대학당 연간 수백억엔을 25년 동안 장기적으로 지원해 국제적으로 우수한 경쟁력을 갖는 소수의 대학을 육성하고자 한다. 재정지원을 소수의 대학에 집중적으로 하면 대학 간 격차가 더 커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국제적으로 매우 명성 높은 다수의 대학을 보유한 일본이 될 것이다.
풍부한 재정 투입은 명성이 높은 대학이 되기 위한 충분 조건은 아니지만 필수 조건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글로컬 대학 30′ 사업을 통해 비수도권 대학 중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3조원 투입을 진행 중이다. 대학 재정지원 규모에서 일본과 비교하여 매우 적다. 일본처럼 소수의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대학을 오랜 기간 지원하는 재정지원도 필요하다.
일본과 같은 규모의 대학펀드 조성을 위해 한국의 재정 결정 관계자들의 대학지원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기대해 본다. 대학 발전 없이 국가 발전은 이룰 수 없고,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대학이 없는 선진국은 없기 때문이다. 작년 말 한·일 산학협력학회 공동 워크숍 참석차 일본에 갔다가 일본 전임 회장으로부터 대학 지원을 위한 10조엔 펀드 이야기를 듣고 일본이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러웠다. 우리도 대규모 대학 지원 펀드를 만들 수는 없을까.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황유원의 어쩌다 마주친 문장] [5] 낯섦과 삶
- [태평로] ‘북한강 살인’에서 본 불안한 징후
- 두 살배기 아기와 믹서기 다루기의 공통점?
- [기자의 시각] 경찰 대공수사, 주말에는 마비되나
- [카페 2030] 수능 끝나고 첫 계획이 아르바이트라니
- [산모퉁이 돌고 나니] 여전히 가을은 아름답다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84] 일론 머스크의 ‘Vox Populi’
- [유석재의 돌발史전] 내달 재개통하는 교외선, 일제의 美 함포사격 방지용?
-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21] 혈투 예고하는 미·중
- 서울·강원 등 주소지 거듭 옮기며 병역 기피한 30대 男...실형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