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32] 호남 의병 명문가
병무청에서 민주당 의원 3명 집안을 ‘병역 명문가’로 선정하였다. 세계대전(世界大戰)의 조짐이 보이는 요즘에는 이런 집안들이 돋보인다. 조선 시대에도 난리가 났을 때 전사하거나 공을 세운 집안에 대해서는 특별히 보상하였다. 그 보상은 ‘명문가’라는 타이틀이었다. 전남의 강진, 해남에 사는 원주 이씨들이 호남의 명문가로 대접받았던 배경에는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에서 왜구들과 싸우다가 전사한 원주 이씨 이남(李楠·1505~1555)이 있다.
당시 왜구들 6000~7000명이 70여 척의 배에 타고 쳐들어와 해남의 달량성을 몇 겹으로 에워싸고 공격하였다. 대규모 병력이었다. 달량성은 해남의 북평면 해안가의 언덕에 있었던 자그마한 성이었다. 무장현감을 하다가 퇴직해서 강진군 금당리의 집에서 쉬고 있던 이남. 무과 출신이기도 했던 이남은 이 소식을 듣고 칼을 챙겨 달량성으로 달려갔다. 급하게 집안의 하인들과 젊은 장정들 몇십 명을 소집하여 데리고 갔을 것이다. 해남 현감 변협(邊協)이 인솔하는 수백 명의 관군과 합세하여 왜구들과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였다.
이남은 죽고 살아남은 변협이 보고서를 제출한 내용이 명종실록에 남아 있다. 현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퇴직해서 책임이 없었던 당시 50세의 전직 수령이 전투에 나아가 전사한 사실은 조정에서 크게 회자되었다. 이남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5명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셋째 아들 이억복은 무과의 고위직인 종2품 함경도 병마절도사까지 올라갔다. 그 배경에는 의병으로 전사한 아버지 이남의 희생이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다. 의병 명문가로 업그레이드된 이억복의 아들들은 한 등급 더 높았던 집안이었던 옥봉 백광훈의 딸, 석천 임억령의 손녀와 혼사를 한다. 장흥 사자산의 정기를 받은 옥봉은 전국구 명성이 있었던 시인이다. 석천은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 일대의 16세기 호남가단(湖南歌壇)을 이끌던 좌장이었다. 무과 집안의 강직함과 칼이 학자 집안의 먹물, 선풍(仙風)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계기였다.
외할아버지 옥봉 밑에서 자란 외손자 이빈(李彬)이 왕희지의 필세와 닮았다고 하는 명필이다. 이빈의 아들 이담로 대에 와서 지금의 월출산 남쪽에 백운동원림(白雲洞園林)을 조성하였다. 포석정처럼 유상곡수의 시설을 갖추었던 백운동원림은 호남 풍류의 원형이다. 백운동을 연결 고리로 해서 다산(茶山) 정약용의 차맥(茶脈)이 이담로 후손인 이한영(李漢永)의 ‘백운옥판차’로까지 이어진 집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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