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6]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문태준 시인 2024. 2.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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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하경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 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백석(1912~1996)

이 시의 인용은 이숭원 문학평론가의 책 ‘백석을 만나다’에 실린 현대어 정본을 따른 것이다. 백석은 이 시를 1938년에 발표했다. ‘잠풍 날씨’는 바람이 드러나지 않게 잔잔하게 부는 날씨를 일컫고, ‘달재’는 달강어로서 흔히 장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이다. ‘진장’은 오래 묵은 진한 간장을 말한다.

제목을 대하면서 이런 궁금증이 난다. 시인은 무엇을 피하고 또 얼굴을 돌린다는 것일까. 아마도 세속의 지저분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외면한다는 뜻일 듯하다. 시인은 그런 일로부터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죽 늘어놓는다. 좋은 날씨, 가난하지만 맑고 순량한 친구와 그의 새 구두, 매일 한 가지의 넥타이를 매며 그리워하는 사람, 한 달 치 봉급, 멋을 부려 기른 수염, 비싸지는 않지만 입맛을 돌게 하는 생선 음식 등이 그것이다. 백석은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읊어 염속(染俗)되는 것을 꺼렸으니 그에게 속된 것은 눈 밖에 있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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