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남극의 소리
남극에 머물러 좋은 점을 꼽으라면 필자는 두 가지를 뽑는다. 첫째는 자연의 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고요함과 둘째는 벌레가 없다는 점이다. 남극이라 해서 미생물까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육지에 있을 때처럼 날벌레나 기어다니는 벌레는 없다. 만약 기지 안이나 주변에서 발견된다면 외래종 유입에 따른 비상 상황으로 반드시 벌레를 잡아 박멸하고 표본 처리해 국내 연구자에게 분석을 의뢰해야 한다.
남극에 처음 와서 느낀 점은 조용하다는 점이다. 물론 기지가 바쁘게 돌아갈 때는 작업을 위해 운행하는 중장비 소리, 우리 생명 유지를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발전기 소리 등으로 생각만큼 조용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해가 지지 않는 여름 밤이라 기지 일과 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물에서 벗어나 기지 앞 부두 및 바닷가 갯바위 위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기지 영내를 벗어나 사람이 만든 시설이 전혀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적막한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고요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가만히 앉아 귀가 그 고요함에 적응하면 남극이 결코 조용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꽥꽥 거리며 해빙 위를 지나가는 아델리펭귄의 울음소리, 웨델물범이 낑낑대며 기어가는 소리, 보이지 않는 해빙 밑에서 날 것 같은 깊은 울림의 얼룩무늬물범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되면 저 펭귄 무리 중 누군가가 바다에 뛰어들면 곧 물범에게 잡아먹힐 운명임을 소리로 예측해 볼 수 있다.
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전혀 소리가 없을 것 같았던 쌓인 눈이 녹는 소리도 들린다. 뽀드득 하면서 무언가 갈라질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살짝 눈이 주저앉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남극을 생각해보면 춥고 바람이 세고 하얀 눈으로 뒤덮인 광경을 대개 떠올린다. 그러기에 남극을 체험하는 시설의 대부분은 이런 추위와 눈으로 느끼는 남극을 재현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시각과 촉각으로만 남극을 느끼게 되지 싶다. 아직 남극에서 여름을 살고 있어 이런 평온한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백야 기간 남극은 소리로 접해도 충분할 가치가 있는 고요 속에 자연의 화성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극지연구소 격인 독일의 알프레드베게너연구원(AWI)은 극지방 기후변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2년 동안 남극과 북극에 설치한 수중마이크로 해저 환경과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녹음한 극지방 소리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해뒀다. 춥고 하얗다고만 느끼던 극지를 이제 소리로도 접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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