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단통법, 국민을 위한 법으로 거듭나야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2024. 2. 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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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연 없는 법 또한 없다. 그런데 법 제정 시의 사연은 잊히고 현재의 잣대로 보면 말도 안 된다고 비난받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스레 사문화하기도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단통법'이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통신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로 식료품비만큼이나 가계 소비지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세계적 경기침체와 더불어 가계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통신비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적 의지는 강할 수밖에 없고 그 이행수단의 하나로 '단통법 폐지'라는 슬로건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정책실현 과정에서 법이 지닌 사연이 현재에도 유효한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절적이고 급진적인 법 폐지만이 정답인지는 의문이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약칭인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기에 앞서 먼저 단통법의 사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통법은 소위 '스팟'이라는 단말기 유통방식으로 유리한 가격정보를 가진 소수의 소비자만 차별적 보조금으로 이득을 보고 정보 비대칭 상황에 놓인 대부분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차별을 당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새누리당 120명, 새정치민주연합 85명 등 총 213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법이 추구한 선의는 투명하고 공정한 휴대폰 유통환경을 만들어 자율경쟁을 촉진하고 차별을 제거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단통법 시행 이후 공시 지원금과 선택약정할인을 통해 차별을 우려하지 않게 됐고 특별한 혜택을 찾아다닐 필요 없이 전국 어디서나 투명한 조건하에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모든 관심은 투명성보다 법이 허용한 단말기보조금이 최대 얼마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획일적인 법정한도 내의 보조금을 지급받은 대다수 국민은 '호갱'이 된 반면 '성지'를 찾은 소수의 국민은 스마트한 소비자로 나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고가 첨단 단말기 중심의 소비패턴이 고착화하고 주요 국산 제조업체들이 연이어 사업을 접으면서 단말기 시장의 경쟁상황도 변화했다. 한편 가계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계부담 완화 차원에서 주요 소비지출 항목인 가계통신비 부담의 완화요구는 더욱 커졌다. 단통법을 시행한 지 10년여 만에 법의 명암이 드러나면서 정책환경도 변화한 것이다.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그른 것이 무엇인지 구분해 현재의 정책수요에 알맞은 방향으로 법제를 개선할 때가 됐다. 단통법의 성과나 한계, 폐지의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충분히 살피고 보완책을 마련하거나 폐지를 논의하는 것이 옳다.

단통법 제정 당시 의도한 입법목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율경쟁을 촉진하고 단말기 유통의 투명성을 증진해서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쟁 촉진 차원에서 보조금 금액이나 한도에 대한 규제는 철폐해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단말기 유통시장의 투명성 및 소비자 후생의 증진을 위해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방안은 강화해나가야 한다.

전 국민이 획일적 조건으로만 단말기를 구입하도록 법이 강제하는 것은 자유경쟁 시장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소비자의 적극적인 협상 여하에 따라 조건이 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법제는 다양한 가격이 보장되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경쟁은 활성화하면서도 열위에 있는 소비자가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통법 폐지라는 슬로건에 갇혀 정쟁으로 비화시키지 말고 국민적 담론 형성을 통해 경쟁을 통한 휴대폰 가격인하와 다양한 가격조건으로 안심하고 투명하게 국민들이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는 호갱 없는 세상을 만들 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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