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은 ‘말의 힘’을 신봉하나
국가 지칭 땐 과도한 제재 펼쳐
경제 발전 선전 ‘광명론’도 노래
말한 대로 이뤄질까 민감 반응
최근 중국 당국은 ‘말이 가진 힘’을 신경 쓰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에 종종 등장하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거나 “목표를 1만번 말하면 현실이 된다” 같은 말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과 경제위기 등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문구가 떠오른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중국은 올 들어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국내 e스포츠 리그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중계를 돌연 중단했다. 2018년부터 LCK의 공식 중국어 중계 서비스를 제공해온 중국 온라인 게임 플랫폼 후야가 지난달 시작한 2024 LCK 스프링 정규리그 중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일이 한국 e스포츠팀인 젠지를 둘러싼 최근 논란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젠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만 행사 관련 게시물을 올렸는데, 대만을 ‘국가’로 지칭해 중국 LoL 커뮤니티에서 불만이 나왔다. 이후 젠지는 곧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SNS에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무결성’을 단호히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밝힌 게 문제가 됐다. 영토의 무결성은 ‘영토완정’(領土完整)을 번역한 말로 ‘나라를 완전히 정리해 통일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대만 통일과 관련해 무력 사용까지 불사한다는 의미로 영토완정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를 단호히 지지한다고 하니 안팎에서 논란이 증폭된 것이다.
결국 두 번째 게시물도 내려갔지만 논란의 핵심은 영토완정이라는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논란의 시발점에 불과했던 대만의 국가 표기를 빌미로 중계를 끊은 것은 이 문제에 중국이 얼마나 민감한지 보여준다.
어쩌면 중국은 대만을 계속해서 국가로 호칭하면 정말로 대만이 독립적인 국가가 돼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에 이런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춘수 시인의 ‘꽃’과 비슷하게.
황당한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조건 완화, 비자 수수료 감면 등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강조하면서도 이런 일이 이어지니 억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연례 중앙경제공작회의를 통해 “경제선전과 여론지도를 강화하라”며 “중국 경제의 광명론을 노래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공산당은 자국 언론 매체들에 경제 발전 성과를 적극 선전하라는 내용의 보도지침을 내린 것으로도 전해졌다. 각종 위기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광명론을 노래한다고 경제가 살아나겠느냐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 역시 말이 갖는 힘을 경시하지 않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티베트 속담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요즘 들어 티베트자치구 명칭을 ‘티베트’(Tibet)에서 ‘시짱’(Xizang·西藏)으로 전환해 부르는 작업도 펼치고 있다. 각설하고, 속담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왠지 중국의 현재 상황이 겹쳐 보인다. 광명론을 노래해서 경제위기가 없어지면 정말 걱정이 없을 것 같기도 한데, 혹 비가 올 때까지 계속된다는 ‘인디언 기우제’가 되지는 않을지.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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