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가져간 엄마가 벌금을? 한국과 닮은 듯 다른 베트남 설 명절 [사이공모닝]

이미지 기자 2024. 2. 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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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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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 창신동의 한 베트남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베트남 노래가 나오고, 베트남 손님들이 북적이는 식당입니다. 베트남이 그리울 때 종종 찾아가는 곳이지요. 이번에 가보니 계산대 옆에 초록색 바나나 잎으로 싼 사각형의 떡이 쌓여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통 음식 ‘반쯩’(Bánh chưng)입니다. 반쯩이 나왔다는 건 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녹두와 돼지고기를 섞은 소를 넣은 네모난 찹쌀 떡인 반쯩은 제사상에 올리는 대표적인 명절 음식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의 송편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반쯩이 반가워 덥석 집어 왔습니다. 칼로 잘라 그냥 먹어도 되고, 겉 면이 바삭해지도록 구워 먹기도 하죠.

베트남 설 명절 음식인 '반쯩'. 녹두와 돼지고기로 된 소를 넣고 만든 찹쌀 떡으로 명절 제사상에 올린다. 베트남 사람들은 "지금까지 먹은 반쯩이 몇 개나 되느냐"는 말로 나이를 묻기도 한다. /이미지 기자

베트남도 우리처럼 설 명절을 쇱니다. 뗏(Tết)이라고 부르지요. 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한 설 명절 기간은 이달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기간을 포함해 2주가량을 쉽니다. 남부에서 북부까지 위아래로 1650㎞에 달할 정도로 긴 지형 때문에 고향 집에 찾아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우리처럼 추석 명절을 쇠지 않아 사실상 설이 유일한 명절인 것도 긴 연휴의 이유로 꼽힙니다.

가족,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두 손 가득 마련해 고향 집을 방문하는 것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대형마트들은 다양한 명절 선물세트를 내놓고, 판촉 행사를 담당할 직원들을 늘립니다. 명절 대목을 노리는 것이지요.

◇명절 부담도 비슷한 베트남

베트남 하노이의 구 시가지에서 설 명절을 맞아 쇼핑하고 있는 사람들. 설 명절에 쓰일 장식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뚜오이쩨 캡처

‘명절 스트레스’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에서는 효(孝) 사상을 기반으로 한 조상 숭배와 가족 간의 우애를 중시하는 문화가 여전히 강합니다. 이 때문에 명절이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이 많지요. 대규모의 명절 대이동이 일어나는 만큼 고향으로 가는 버스나 비행기 표 가격이 뛰면서 지출 부담이 커집니다. 설 명절을 쇠기 위해 고향에 방문하는 비용이 몇 달치 월급에 달하고, 설 명절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소비를 줄이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VN익스프레스는 명절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한 남성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아내와 둘이 합쳐 한 달에 1300만~1400만동(71만5000~77만원)을 버는 그가 설 명절마다 고향 방문을 위해 쓰는 비용은 4000만동(220만원) 가량이라고 합니다. 3~4개월치 월급에 달하는 돈이지요. 물론, 이 중 절반은 베트남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하기 위해 타는 항공권 구입 값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용 부담에도 고향을 방문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장남이기 때문에 (고향에 가지 않으면) 이웃과 친척들이 비난할까 두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직까진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명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연말부터 지출을 줄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업체인 콕콕(Coc Coc)이 작년 1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명절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취미·문화 비용과 외식 비용을 줄이겠다고 답한 사람이 각각 46%, 43%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부담을 알기 때문에 기업들은 설 명절을 맞아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설 상여금을 ‘13번째 월급’이라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올해 명절 상여금 규모는 예전 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호찌민시 노동보훈사회국이 관내 13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명절 상여금은 평균 1230만동(68만원)으로 전년(1288만동)에 비해 4.5%가량 감소했습니다. 작년 실적이 좋지 않아 상여금 규모를 줄인 기업이 많았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변화도 있습니다. “고향에 가느니 돈이나 벌자”며 설 명절 기간 초과 근무를 자청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설 명절에 근무하면 최소 300%에서 390%의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사람을 위해 설 명절에 문을 여는 식당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오토바이 타고 14시간 달려 귀향

오토바이로 고향에 돌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이 함께 그룹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 /브이엔익스프레스

그럼에도 일찍부터 고향 방문을 준비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습니다. 설 명절 한 달 전부터 항공권 구하기 전쟁이 벌어집니다.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와 중부 지역인 꽝빈, 북부 지역인 탄호아 등을 오가는 항공편은 1월 초부터 대부분 매진됐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회사가 정확한 휴무 일정을 알려주지 않아 항공권 예매에 실패했다” “회사가 귀향 버스를 지원해야 한다”는 등의 불만도 제기되지요. 항공편과 버스, 기차 모두 설 명절 기간 운행 횟수를 늘렸지만, 명절 10일 전에는 거의 모든 운송 수단이 매진됐습니다.

마땅한 교통수단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직접 오토바이를 끌고 고향을 찾습니다. 어릴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자란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수백㎞를 오토바이로 달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위험하기도 하지요. 이에 사람들은 ‘귀향 그룹’을 만들어 함께 이동하기도 합니다.

SNS에는 ‘오토바이로 잘라이 가자’는 그룹이 만들어졌습니다. 베트남 중부 잘라이 지역을 고향으로 둔 사람끼리 함께 이동하자는 거죠. 호찌민시에서 잘라이까지 400㎞를 오토바이로 이동하면 12~14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이들은 30~50명씩 모여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는 계획을 짰습니다.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사람이 그룹에 가입했고, 벌써 9팀이 1월 30일부터 2월 8일 사이에 함께 이동하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잘라이 뿐이 아닙니다. 적으면 3000명, 많으면 2만2000명이 가입된 비슷한 그룹이 20여개에 달합니다.

◇세뱃돈 뺏은 부모, 벌금 낼 수도

우리나라처럼 베트남도 리씨(Lì xì)라는 이름의 용돈을 줍니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이지요. 최근 전자 지갑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친척들한테 세뱃돈 받을 QR코드를 자녀에게 부착해주기도 합니다. 8만동(4400원) 정도면 머리핀 3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이 QR코드를 읽으면 전자 지갑으로 세뱃돈을 보낼 수 있는 것이죠. 양갈래 머리에 세뱃돈 보낼 QR코드를 매달고 있는 아이의 뒤통수가 너무 귀여워서 세뱃돈을 안 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베트남에서는 아이가 세뱃돈 받을 QR코드를 넣어 머리핀 같은 액세서리를 제작하는게 유행이다. /VN익스프레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시절, 엄마가 세뱃돈을 보관해준다고 가져갔는데 행방이 묘연하다”는 경험이 공유되곤 하는데, 베트남에서는 큰일이 날 소리입니다. 어린 아이의 세뱃돈을 가져간 부모가 벌금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베트남 헌법은 ‘아동도 재산을 가질 권리와 처분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세뱃돈을 보관해 줄 수는 있지만, 처분 권한은 자녀에게 있는 거죠. 지난 2022년, 자녀의 세뱃돈을 빼앗은 부모에게 최대 3000만동(165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베트남에서도 “이게 옳으냐”며 시끌시끌했었습니다. 물론, 세뱃돈 가져갔다고 부모를 신고하는 자녀가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어린 자녀도 하나의 독립체로 존중하고 이들의 사유 재산을 인정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힘들게 찾아간 고향에선 좋은 일만 있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불화를 겪기도 합니다. “결혼은 안 하느냐” “공부는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괴롭다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명절 기간 폭력 사건과 음주 사고가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지요. 오랜만에 모인 만큼, 서로 아픈 부분은 덮어주고, 덕담만 해야 할 텐데 쉽지만은 않은 일 같습니다.

<사이공 모닝> 구독자님들은 가족들과 즐거운 설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세뱃돈을 자녀에게 맡겨 보는 것도 좋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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