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왜 '총선' 의제가 되지 못하나

조성은 2024. 2.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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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후특위는 입법권 없어 유명무실
거대양당, 정쟁에만 몰두해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정치권은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주요 공약을 발표하며 공약경쟁에 나섰다. 공약은 정당이 무엇을 가장 시급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민생'을 내세운 거대한 약속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기후'다.

몇 년 사이 우리나라 기상 예보에는 '역대급', '역사상'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지난해 남부지방은 상반기 역대 최장인 227일의 가뭄에 시달리다가 총 712.3mm, 역대 최고의 장맛비(6월25일~7월27일)를 맞았다. 지난해 여름엔 국지적 집중호우가 증가하며 오송 지하차도 침수 등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날씨 변화도 극단적이었다. 12월 초엔 전국적인 이상고온을 겪다가 하루이틀사이 서울 기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찾아왔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2023년은 기상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뜨거운 해였다. 세계 곳곳에서 고온과 폭우 등 이상기후가 발생했다. 올해는 지구 온도를 높이는 엘니뇨 현상이 더해진다. 기상학자들 사이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구 온도 기록이 경신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치에서 '기후'는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후위기의 심각성엔 여야 할 것 없이 공감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언급했고, 더불어민주당은 1호 영입인재로 '기후변호사' 박지혜 변호사를 영입했다. 21대 국회는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첫 결의안으로 채택했다. 특별위원회도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회 기후특위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유명무실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형식적으로 특위를 만들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책임과 권한의 범위를 설정하지 않았다"며 "각각의 상임위는 소관 법률과 기관이 명확하게 있다. 반면 기후위기는 여러 정부 부처가 관계돼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상임위만큼 권한과 범위를 줄 수 없다 해도 가령 석탄문제, 석탄 관련된 법령은 특위가 재·개정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에너지 관련 문제를 다루는 등 명확한 아젠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우현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통화에서 "국회의 대표적인 그린워싱(환경친화적으로 위장하는 행위)"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권한이 없는 특위였다. 입법권도 없었고 기후위기와 관련한 구체적인 미션도 없었다. '특위'라고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의원 연구모임과 다를 바 없었다"며 "기후가 쟁점이 될 만한 법안이 있더라도 입법권이 없기 때문에 기후특위 위원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시 자신의 본 상임위에 가서 위원들을 설득해야 하고 양당 간사와 위원장의 합의가 이뤄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기후특위는 상설특위가 아닌 시한이 정해진 특위였다. 21대 국회 개원 후 지난해까지 6차례 회의를 했을 뿐이다. 활동 시한은 21대 국회 말까지 늘렸지만 개점 휴업상태다. 기후특위 소속 또 다른 의원은 통화에서 "국회가 다른 현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인정하면서도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우리나라 유권자의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환경문제를 벗어나 경제·산업사회 등의 다양한 문제라고지적한다.·지난해 4월14일 시민단체들의 '기후정의파업' 모습. /이동률 기자

그러나 국회 안과 다르게 국회 밖은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더가능연구소·로컬에너지랩은 지난해 12월 17개 광역지자체당 1000명 이상, 1만7000명(유효설문조사 인원)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기후위기는 '7대 사회적 도전화제' 중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위기(58.3%)에 이어 두 번째(20.0%)를 차지했다. 전기료 상승 등 에너지위기(7.0%), 개인정보 등 사이버 위기(5.4%), 팬데믹 등 보건위기(3.2%), 북핵문제 등 안보위기(2.6%), 생산량 감소 등 식량위기(1.2%)가 뒤를 이었다.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 또는 정당이 있다면 평소의 정치적 견해나 지지 정당이 다르더라도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각각 62.5%, 60.9%에 달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을 직접 경험할수록 '평소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려하겠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농업·임업·축산업 등에 종사자는 70%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69.8%), 제주(65.8%)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기후위기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낡은 정치'다. 거대양당은 지역주의와 권력투쟁, 정치적 이합집산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환경문제'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통화에서 "기후위기 대응은 경제·사회·산업·일자리·불평등·삶의 질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의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사회에 기후위기는 중요한 이슈다. 선진국들은 '탄소중립사회'로 전환하는 중" 이라며 "RE-100(재생에너지 전기 비율 100%), 탄소발자국 등이 산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제는 수출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 높여야 한다. 이는 산업과 일자리의 문제이자 경제문제"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해당 분야의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 공동위원장은 "불평등 문제, 삶의 안전망과도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다. 그는 "야외 노동자들, 쪽방촌 거주민 등은 기후재난에 매우 취약하다. 2010년대 이후 온열질환 환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계층에 따라 기후위기 체감이 다른 것"이라며 "취약계층이 정치사회적 목소리는 크지 않다. 정치가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는 정치제도와 선거제도의 문제를 지목하며 다당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유럽은 80년대 이후 녹색당들이 생기면서 기후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며 "주로 대통령제가 아니라 다당제를 바탕으로 한 연합정부, 100%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도 기후위기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수 있게 된 이유"라고 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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