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티스트 권현진 개인전 ‘Pierced Body’…고장과 작동 사이 불어 넣은 숨 [전시리뷰]

이나경 기자 2024. 2. 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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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 자체가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dia)'라는 말.
지난 4일 종료한 안양시 동안구의 독립예술공간 ‘아트 포 랩’에서 권현진 미디어 아티스트는 자신의 첫 개인전 ‘☒☒☒ : Pierced Body’를 열었다. 이나경기자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으로 세상을 구분한다. 지지직 거리는 화면의 TV 스크린, 계속해서 잡음(노이즈)이 담기는 카메라는 흔히 말하는 ‘내다 버려야 할’ 고장 난 기기들이다.

권현진 작가는 우리 모두가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으로 구분되는 사회에서 무언가의 가치와 의의 그리고 유용성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에 의문을 던지는 예술가다. 그가 던진 두 번째 질문. 미디어(기기) 너머의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4일 독립예술공간 아트 포 랩 에서 막을 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 ‘☒☒☒ : Pierced Body’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매개체로서의 기기를 파손함으로써 생명력을 입증해냈다.

권현진 작가가 자신의 작품 ‘프레임’(2023) 앞에 카메라를 통해 빛이 깜빡거리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나경기자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현대인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미디어(대중매체)를 예술에 접목한 ‘미디어아트’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매개체 모든 것이 소재다.

권현진 작가는 이미지 재생 기기를 드릴과 레이저로 절단하며 그 행위에서 발생한 우연한 이미지를 실험한다. 스포츠 중계, 뉴스를 보여주는 TV 스크린, LED 화면,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노트북, 갈수록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스마트폰 카메라 등 일상의 모든 것이 재료다.

‘☒☒☒ : Pierced Body’에서 그의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그가 한 실험의 결과물을 지켜보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관통된 몸’이자 ‘구멍 뚫린 기기’를 통해 그는 무엇을 드러냈을까.

권현진 작가의 개인전 ‘☒☒☒ : Pierced Body’에 전시된 그의 초창기 작품 ‘one mouth, one Monitor’(2011). 이나경기자

‘one mouth, one Monitor’(2011)를 마주하며 처음 드는 감정은 ‘당황스러움’이다.

마치 방금이라도 문서 작업을 수행하는 데 활용됐을 것 같은 흔하디 흔한 노트북. 그런데 모니터의 화면 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고 그 주위로는 마치 계란 프라이의 흰자처럼 검정색 화면이 펼쳐져 있다. 검정색이 아직 닿지 않은 모니터 구석자리의 남겨진 일부 공간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10여년 전 독일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하던 그는 “내 입으로, 내 목소리로 직접 말해보고 싶다”란 생각에 모니터에 입을 냈다.

관람객은 모니터 액정 너머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작품을 즐겼다. 아트포랩 제공

재밌는 것은 그 후에 벌어진 일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갈수록 관통 행위로 인해 스크린이 어둡게 나타나는 검정 구간이 넓어졌다. 처음에는 구멍 근처에 얇은 띠처럼 까맣게 보이던 구간은 갈수록 넓어져 지금은 모니터의 대부분을 덮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기기의 ‘몸체(body)’에 구멍을 냄으로써 숨을 불어 넣게 됐다. 영상의 재생 기기라는 수단으로 존재하는 모니터는 인간에 의해 관통되고 파손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그렇게 그는 고장과 작동 사이 시공간을 벌어 놓으며 지연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끝내 영상을 볼 수 없게 되더라도 이를 고장이라 볼 수 있을까요.” 작품을 통해 권 작가가 드러내는 반문이다.

모니터에 언뜻 비친 영상은 입을 벌리고 끊임없이 말을 하는 작가 본인의 모습이다. 그 속에 뚫린 구멍은 모니터로 닫혀 있던 모니터 너머의 세상을 관객이 자신의 눈과 입, 귀로 ‘직접’ 보고, 말하고, 들을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권현진 작가의 작품 ‘Monitor Wors’(2016) 시리즈 중 일부. TV 스크린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 모니터 너머로 기기의 내부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나경기자

‘Monitor Wors’(2016) 시리즈에선 피부와 혈관이 드러난 모니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one mouth, one Monitor’(2011)가 완전히 관통된 기기라면 ‘Monitor Wors’(2016) 시리즈는 ‘닫힘’과 ‘열림’ 사이의 중간이다.

마치 병원에서 신체 일부의 엑스레이를 보는 것처럼 LED 화면 너머로 이를 구성하는 조명기기나 TV 스크린 액정 너머 초록색 기기판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에게 미디어를 보여주는 매체는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그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 위로 작가는 창문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 같은 파란 바다나 끊임없이 모래가 자글자글한 사막의 모습을 영상으로 내보냈다. 하드웨어에 네모난 구멍을 뚫은 행위는 그 위에 소프트웨어로 재생되는 영상에 변형을 가져왔다.

권현진 작가가 자신의 작품 ‘프레임’(2023) 앞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빛이 일렁이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벽에 나타난 황토색의 사막의 모래산 모습과 달리 카메라에는 무지개 빛 모습이 덧대여져 보인다. 이나경기자

권 작가가 초·중반기 모니터 작업에 주력했다면 최근엔 카메라의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공간을 조작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특히 ‘프레임’(2023)에선 관객에게 기기를 통해 눈으로 보고 있는 현실 너머의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불어 넣었다.

권 작가는 “카메라 조리개의 공간을 어떻게 조정하는 지에 따라, 빛을 어떻게 조정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현상이 우리 눈에 포착되는데 이러한 현상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미디어로 둘러 쌓인 세상에서 이를 ‘뚫는’ 관통의 행위 끝에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엇일까. 권 작가는 “꼭 무언가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매체에 대한 권 작가의 실험 정신이 내디딜 다음 단계가 기대되는 순간이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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