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할 건 AI가 아닌 우리의 탐욕 [삶과 문화]

2024. 2. 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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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발행되는 변호사회보 최근 호 기사를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국내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미국 대형 로펌의 인공지능(AI) 담당 변호사와 대화한 내용이다.

"미래에는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미국 변호사가 "아니다. AI로 무장한 변호사들이 그렇지 않은 변호사들을 대체할 것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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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매달 발행되는 변호사회보 최근 호 기사를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국내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미국 대형 로펌의 인공지능(AI) 담당 변호사와 대화한 내용이다. "미래에는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미국 변호사가 "아니다. AI로 무장한 변호사들이 그렇지 않은 변호사들을 대체할 것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위 대목을 읽고 약간의 씁쓸한 느낌과 함께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과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AI를 둘러싼 문제도,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기술이 도래할 때마다 인류가 겪었던 것들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기시감(旣視感) 같은 것이기도 했다. 결국 AI 문제는 AI 대 인간의 문제라기보다는 'AI를 매개로 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의 문제일 공산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이 AI 문제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벌써 AI, 특히 생성형 AI의 산출물로 인한 법적, 윤리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고,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공지능을 생성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 이후의 현실은 예측 불가라는 전문가들의 견해에서 알 수 있듯이, AI 자체의 특별한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AI 문제'에서는 AI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라는 점은 앞으로 AI 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미로 입구와 몸을 줄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한국과 미국의 법률직역 모두에서 AI 활용에 관해 관심이 큰 것 같다. 미국 연방 대법원장은 매년 연말에 연방 사법(司法) 시스템 전반과 관련된 주요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연방 사법에 관한 연말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존 로버츠 현 대법원장은 작년 12월 31일 발표된 2023년 연말보고서에서 부록을 제외한 총 7면 중 거의 1면 반을 할애해 AI 문제를 언급했고 올해 1월 초 국내 언론에서도 이를 보도한 바 있다.

위 보고서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은 AI를 최신 기술의 최전선으로 규정하면서 AI로 인한 사법 변화의 빛(대중의 사법 접근성을 높이고, 시간과 비용을 단축함)과 그림자(산출물의 진위 논란, 법의 비인간화, 사생활 비밀 침해)를 동시에 언급했다. 나아가 AI의 활용으로 인해 법률가의 업무 방식과 내용에 상당한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발언의 진실성을 판단할 때 말의 뉘앙스, 손과 목소리의 떨림, 억양의 변화, 땀방울, 순간의 망설임, 눈맞춤을 피하는 것 등의 미묘한 차이를 포착해야 하는 사실 판단의 '회색 영역' 때문에 AI가 인간 판사를 대체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비교적 보수적, 유보적 태도를 견지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언급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AI를 사용할 때는 주의(caution)와 겸손(humility)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AI를 둘러싸고 기술에 대한 맹목적 낙관과 극단적 배격 또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현실에서 위 지적은 음미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AI가 급속도로 우리 현실로 침투하고 있는 이때, 어쩌면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미래의 고도로 발달한 AI가 아니라 현재도 우리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는 끝 간 데 없는 탐욕이 아닌가 싶다.

우재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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