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반려 생활의 역학

2024. 2. 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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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견엔 끝이 없다동거력 7년 차면 어지간히 다 안다고 큰소리칠 만도 하지만, 역시 사람은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수리에게 배운다.

언니가 빵을 사서 나올 때의 흡족한 표정,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가 빵을 먹을 때 자신에게 주어지는 간식 등이 수리의 뇌에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강력하게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사람도 개도, 영원한 완성형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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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견엔 끝이 없다

동거력 7년 차면 어지간히 다 안다고 큰소리칠 만도 하지만, 역시 사람은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수리에게 배운다. 새로울 게 있을까 싶은데도, 어제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오늘의 수리는 또 다르다. 그것을 발견하는 나도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다.
[이미지=언스플래시]
수리는 거울에 비친 ‘우리’를 알아볼까?
산책 코스가 바뀌면서 수리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특히 오피스텔 건물을 지날 때 반복하는 행동이 있다. 대형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랐다가 곧 얼음이 되어 상대(?)를 뚫어져라 한참 쳐다본다. 내가 “저 못생긴 강아지는 누구야?” 하고 말을 걸면 그제야 몸을 돌리고 느린 걸음으로 자리를 뜬다. 수리는 유리에 비친 개가 자신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물은 자기 인식 능력이 없단다. 하여 거울에 비친 모습과 자기를 동일시하지 못한다고. 유리나 웅덩이 같은 데 고인 물에 반사된 자신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개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진 못해도 거울이 주는 정보는 확실히 안다는 것이다. 거울이 있고, 그 앞에 개가 서 있고, 개 뒤에 사람이 손에 간식을 들고 서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개는 거울을 통해 맞은편에 ‘웬 개’가 있고, 그 뒤의 사람 손에 자신의 최애 간식이 들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 개는 거울 속으로 뛰어드는 게 아니라, 몸을 돌려 사람한테 달려가 간식을 달라고 한다. 개가 거울에 비친 자신은 몰라도, 거울에 반사된 사람이 자신의 뒤에 서 있고 그의 손에 간식이 있다는 정보는 정확히 인지한다는 소리다.
미국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교수는 이를 두고 “개들이 이해 못 하는 것은 자기 몸과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이건 어떨까? 내가 수리를 안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내가 자신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알 테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나라는 건 알아볼 텐데, 그 품에 안긴 건 누구라고 생각할까?
‘사람’과 ‘기분’에 얽힌 기억은 오래간다
[이미지=언스플래시]
새로운 발견은 또 있다. 평소 나는 수리와 산책하는 중간 가게에 들르는 일이 거의 없다. 잠깐이기는 해도 불안도가 높은 수리를 길가에 묶어 놓기가 안 내켜서다. 얼마 전 집을 며칠 비울 일이 있어 친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수리를 돌봐 주었다. 언니가 가고, 다시 나와 수리의 산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평소 그냥 지나치던 빵집 앞에서 수리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 행동이 계속 반복되었고 언니와 통화 중에 이상하다며 그 이야기를 하자, 언니가 ‘천재만재 수리’라며 깔깔거렸다.
알고 보니 빵순이인 언니가 산책 중에 두어 번 빵집에 들어가 빵을 사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 길을 나와 사오 년 다녔는데, 언니와 고작 두어 번의 경험으로 빵집을 기억하고 지날 때마다 내게 ‘빵 살 거야?’ 하고 물었다는 게 의아하기 짝이 없다. 개의 기억력은 2분이라고 한다. 다만 이는 단기 기억이고, 반복 학습에 의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주목할 것은 ‘연상 기억’이다. 경험한 사실에서 얻은 감정과 느낌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것은 아주 오래, 어쩌면 개의 평생을 함께하는 기억이 될 수도 있단다.
수리의 경우는 이랬을 것이다. 언니가 빵을 사서 나올 때의 흡족한 표정,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가 빵을 먹을 때 자신에게 주어지는 간식 등이 수리의 뇌에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강력하게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사람도 개도, 영원한 완성형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함께 살면서는 더욱 그렇다. 서로에 영향을 받고 조금씩 변하면서 살아간다. 올해 수리와 나 사이엔 어떤 새로움들이 피어날까.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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