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 보험 적용’ 확대에 필요한 것들[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최근 한의약 분야에서 가장 큰 정책적인 이슈는 첩약에 대한 보험적용 시범사업이다. 올해부터 한의원과 한방병원의 첩약에 대한 보험적용 2차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1차 시범사업에서는 월경통, 중풍 후유증, 안면신경마비 등 3개 질환에 보험이 적용됐고, 2차 시범사업에는 요추추간판탈출증, 기능성소화불량, 알레르기비염 등 3개 질환이 추가됐다.
2020년 11월부터 시행 중인 시범사업을 통해 수요자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향상됐고, 국가에서는 첩약을 보험제도 내에서 관리할 수 있는 토대를 시범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다만 대상 질환이 3개로 제한적이고, 첩약급여 일수가 질환의 특성과 무관하게 10일로 한정적이었으며, 한방병원이 참여할 수 없는 점으로 인해 실제 시범사업 참여율은 일반적인 타 사업에 비해 낮았다.
3년간 사용할 예산으로 시범사업 초기에 1500억원을 추계했지만, 결국 4% 정도만 집행될 수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서는 2단계부터 대상 질환과 참여기관을 확대하고, 수가를 조정하는 등의 방안을 포함해 개편된 사업모형을 시행하기로 했다.
1단계 시범사업의 평가 과정에 연구자로 참여하면서, 한국에서 한의약이 제도권 내로 진입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체감했다. 하나의 의료행위가 제도권 내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자료가 필수적인 시대가 됐다. 물론 한의약 분야에서도 이 흐름에 발맞추어 임상 연구와 체계적 문헌분석 등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근거 확충에 노력해 왔다. 하지만 한의약 분야의 표준화된 근거를 개발하는 일이 쉽지 않고, 현실적으로 몇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다.
첫째로는 생산되는 논문의 양과 질이다. 의약 분야의 경우 임상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수행되고 관련 논문들이 생산되고 있다. 출판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잘 고찰하거나, 이미 체계적인 고찰이 이뤄진 논문을 중요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의약 분야는 ‘침(Acupuncture)’의 경우 세계적으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나 첩약 등에서는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나면 연구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인지해 2016년부터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사업을 진행해 2022년까지 30개 질환에 대한 지침 개발을 완료했다. 또 2020년부터 시작된 ‘한의약 혁신기술개발사업’을 통해 추가적인 질환에 대한 지침을 개발하고 있다. 그나마 최소한의 근거를 이 사업들을 통해서 만들고 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연구 그 자체에 있다. 한약과 관련한 연구는 준비부터 쉽지 않다. 의약품 임상연구를 하려면 식약처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한약의 경우에는 승인부터 어려운 편이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약으로 임상 연구를 하고자 해도 식약처는 새롭게 개발되는 신약 수준의 기준을 요구한다.
안전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식약처의 입장도 이해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조치가 국민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한약의 임상적인 근거 확보에 어려움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한번 재고해 봐야 할 것이다.
첩약 보험적용의 2단계 시범사업은 2026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2단계 시범사업이 마무리되는 시기에는 보다 좋은 근거 자료들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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