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도 OK…‘인간 탱크’ 만들어줄 방탄복
머리·몸통에 팔·다리까지 온몸 감싸
10m 거리서 쏜 7.62㎜ 총탄에 안 뚫려
무릎 등에 관절 장치로 ‘민첩성’ 향상
전기 안 쓰는 무동력 부품·경량 장점
#1993년 10월3일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출동을 준비한다. 유엔 구호 식량을 가로채는 현지 군벌 핵심 인물들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작전은 군벌 근거지 격인 건물을 급습하는 데 성공하며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하지만 군용 차량을 통한 압송 도중 현지 무장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특수부대원들은 모가디슈 곳곳에 고립된다. 결과적으로 하루 사이 대원 19명이 사망한다. 세계 최강 미군이 예상치 못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미국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줄거리다.
영화에서 특수부대원들은 교전 중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총탄을 맞는다. 조끼처럼 생긴 방탄복을 제대로 갖춰 입었다고 한들 방어할 수 있는 부위는 상반신뿐이었다. 쏟아지는 총탄 앞에 팔이나 다리 등 몸 다른 부위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탄복이 개발됐다. 중세 기사의 갑옷처럼 온몸을 보호하면서도 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착용감까지 높인 방탄복이다. 군인이나 대테러 임무 경찰관의 전투력과 생존성을 향상시킬 방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 ‘AK-47’ 근거리 사격 막아내
최근 과학전문지 뉴아틀라스 등은 독일 방위산업체인 멜러 프로텍션이 캐나다 생체역학 기술 기업인 마와시 사이언스 앤드 테크놀로지, 프랑스 대테러 경찰과 함께 전신 방탄복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엑소 엠 장갑 외골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방탄복의 가장 큰 특징은 착용자의 온몸을 총탄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확실히 감싸는 데 있다. 머리와 상반신은 물론 팔이나 다리 등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부위까지 모두 덮는다. ‘인간 탱크’ 같은 모습이다.
신체는 급소뿐만 아니라 어디든 총탄에 맞으면 상처가 생긴다. 이러면 고통과 출혈이 발생한다. 빨리 달리기 힘들어지고, 총을 정확히 겨냥해 사격하기도 어려워진다. 착용자의 온몸을 방어해 그런 문제가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엑소 엠 소재는 매우 질긴 특수 섬유와 광물을 주재료로 한 세라믹이다. 이를 통해 총탄이 몸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엑소 엠은 7.62㎜ 구경 총탄을 막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10m 앞에서 맞아도 뚫리지 않는다. 7.62㎜ 총탄은 옛 공산권과 제3세계에서 많이 사용하던 소총인 ‘AK-47’에 들어간다. 개발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현재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의 무장 세력이 AK-47과 그 파생 소총을 개인 화기로 애용한다. <블랙 호크 다운> 속 무장세력도 AK-47을 손에 쥐고 있었다.
■ 평소 운동능력 99% 그대로
엑소 엠이 주목되는 이유는 전신 방탄복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엑소 엠의 경우 방탄 능력과 함께 착용자에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뛰어난 착용감을 갖추고 있다.
방호용 장비는 대개 방어 부위가 넓어질수록 착용자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중세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이다. 온몸을 덮은 갑옷은 기사를 충격에서 최대한 지킬 수 있었지만,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민첩한 운동 능력은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엑소 엠은 다르다. 멜러 프로텍션은 설명자료를 통해 “엑소 엠의 척추, 허리, 고관절, 무릎, 발목 부위에 관절 기능을 하는 부품이 장착돼 있다”며 “착용자가 평소 운동 능력의 99%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두꺼운 겨울 외투나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입었을 때보다도 팔다리를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멜러 프로텍션이 인터넷에 공개한 영상을 보면 엑소 엠 착용자가 계단을 편하게 걸어 올라가는 모습이 묘사된다. 무릎을 구부리고 펴는 각도 역시 엑소 엠을 착용하지 않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
■ 전기 쓰지 않고 작동
엑소 엠은 전기를 쓰는 부품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엑소 엠은 착용자의 신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체 중량을 분산하는 구조를 띠는데, 그런 기능은 전기 모터가 아닌 무동력 부품에서 발휘된다. 무동력 부품이란 엑소 엠에 내장된 티타늄 재질의 튼튼한 금속 기둥이다. 착용자의 어깨에서부터 척추, 허리, 다리까지 이어지는 티타늄 기둥이 단단한 나무줄기처럼 버티고 서서 엑소 엠 전체 중량의 70%를 감당한다.
수년 전 러시아에서도 유사한 전신 방탄복을 개발했지만, 당시 제품은 전기 모터로 동력을 만들어 중량을 경감하는 방식이었다. 배터리가 들어갔다는 뜻이다. 전기는 전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자원이다. 발전기와 석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멜러 프로텍션은 “엑소 엠은 충전이 필요 없어 외딴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엑소 엠의 정확한 총중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엑소 엠 중량의 70%를 티타늄 기둥이 감당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착용자가 실제 짊어질 중량은 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엑소 엠이 보급되면 총탄 세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장에서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병사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어서 향후 전투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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